전도연. 사진=쇼박스 제공.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사실은 두 번이나 거절했던 작품이에요. 그런데도 몇 년에 걸쳐 다시 제게 제안이 오는 과정을 보면서 마치 계속해서 제 옆에 있는, 꼭 해야만 할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인연'이란 게 있나봐요."(웃음)

영화 '남과 여'(감독 이윤기 제작 영화사 봄)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띄엄띄엄 여백의 미가 있지만 두 남녀주인공의 사랑은 절실하고 뜨겁고, 간절하다.

전도연. 사진=쇼박스 제공 .
핀란드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된 두 남녀가 몇달 후 서울에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각각 가정이 있는 이들의 사랑을 담았다. 외피는 '불륜'이라 칭할 수도 있지만 작품 속 두 남녀의 사랑은 서로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는 모습을 섬세한 호흡 속에 담아내고 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전해오는 이유는 아마도 천천한 흐름 속에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사랑의 결을 의미심장하게 그려낸 덕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멜로 퀸'으로 불리는 전도연이 있다. 데뷔 25년을 훌쩍 넘긴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인 그가 여전히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머리로 분석하기보다 마음과 몸으로 부딪치며 얻어내는 그만의 뜨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남과 여'에서 자폐아를 둔 어머니이자 핀란드에서 운명처럼 조우한 건축가 기홍(공유)과 사랑에 빠지는 상민 역으로 분한 그는, 여전히 불태우고 싶은 열망을 오롯이 마음에 담고 있는 배우다.

"이윤기 감독의 정서나 감성을 워낙 좋아했어요. 전작 '멋진 하루'를 찍은 것도 그 이유가 컸고요. 그런데 '남과 여'를 처음 제안받았을 땐 '하녀'를 찍은 이후였는데 사실 좀 부담이 됐어요. 시나리오의 수위가 좀 세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몇 년 후 다시 제게 돌아오는 걸 보며 '아 이건 내가 꼭 하고 넘어가야겠구나'란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전도연. 사진=쇼박스 제공.

그렇게 시작된 '남과 여'는 멀고 먼 북유럽의 핀란드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나, 실제로도 핀란드는 마치 동화 속 나라처럼 몽환적인 느낌이었어요. 그 곳에서 촬영하고 온 사실도 꿈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실제로 거리에서 동양인을 한 사람도 마주칠 수 없다는 점도 상민과 기홍이 서로에게 집중할 이유가 됐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극중 상민이 기홍과의 인연을 맺고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을 꿈처럼 느끼듯, 제게도 그런 곳이었어요."

전도연이 분한 상민은 안정적인 삶의 조건은 갖췄지만 자폐성향이 있는 아이와, 자신에게 건조한 남편, 새로울 것 없는 일 사이에서 조금은 지친 듯한 일상을 보내는 인물이다.

전도연. 사진=쇼박스 제공 .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겉으로는 잘 굴러가지만 상민은 실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여자가 아니었고, 뜨거움을 모르고 살아가던 사람이죠. 열정은 잃은 채 삶에 대한 고단함을 안고 살던 그가 기홍을 통해 사랑을 알게 되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는 상민의 성장 과정처럼 느껴졌어요. 이전엔 전혀 알지 못했던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것 말이죠."

눈빛 하나, 손짓 하나로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은 사실 감정을 많이 소진시키는 작업이다. 그래도 '배우 전도연'은 여전히 그런 역할에 많은 매력은 느낀다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는 뭔가 나를 다 바쳐야하는 작업에 끌려요. 나는 되게 뜨겁고 감정적인 사람이라 다양한 감독님들을 만나 내가 소모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도 제 안에 열정이 많이 남아있어서겠죠."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을 잡아내는 지난한 과정이 즐거웠던 이유는 처음으로 멜로 호흡을 맞춘 공유 덕분이라고 공을 돌린다.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어요. 사람이 전해오는 따뜻함에 조금씩 매료됐다고 할까요? 너무나 배려심 넘치고, 자신의 할 바를 세심하게 해 내는 모습에 제가 극중 상민으로 느낄 수 있도록 최상의 파트너십을 보여준 것 같아요."

여배우로서 무르익은 연기력을 보여주는 시기에 상민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점도 새삼 고맙다. "처음으로 아이나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원하는 걸 알게 된 인물은 마치 알에서 깬 듯한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아, 이 여자가 그동안 참 외로웠구나'라는 공감도 하게 됐고요."

극중 상민처럼 다시 한번 자신 안의 열정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지난해 개봉한 영화 '협녀' '무뢰한'에 이어 '남과여'까지 달려오면서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그이지만 올해는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무려 11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인 케이블TV tvN 드라마 '굿와이프'가 그 작품. 미국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전도연은 변호사 역으로 올해 여름 시청자들과 만난다.

"오랜만의 TV 드라마에 사실 많이 떨리기도 하지만 궁금함이 컸어요.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법정 소재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달까요? 여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결정에 큰 몫을 했고요."

'익숙하고 편한 것'을 넘어선 도전과 행보로 전도연을 계속 이끌어가는 힘은 뭘까?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많은 사람을 만날 일이 없기도 하고, 저 또한 익숙한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각기 다른 감정의 결을 포착하는 걸 좋아해요. 여전히 궁금하고요. 그래서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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