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늘.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아니 아니, 아니에요."

인터뷰 도중 작은 칭찬에도 손사래를 치며 예의 환한 웃음을 짓는 이 배우에게는 소년의 순수함과 청년의 패기가 함께 묻어난다. 연말이면 '내가 신념과 초심(初心) 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를 돌아본다'는 그는 사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지난해와 올해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도 같은 날(18일) 개봉한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 (주)루스이소니도스)와 '좋아해줘'(감독 박현진 리양필름(주)) 두 편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그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시종일관 유쾌했다. 그는 윤동주 시인과 그의 동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동주'에서는 윤동주 역을, 세 커플의 각기 다른 사랑법을 다룬 '좋아해줘'에서는 청각장애인 천재 작곡가 이수호 역으로 각각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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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동주'에서는 스크린에서 처음으로 다뤄지는 윤동주 시인을 연기하는 압박감이 컸다고 들었다.

압박감은 극복하거나 견뎌냈다기보다 그냥 '안고 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어떤 걸 해도 윤동주 시인을 연기한다는 부담감이나 중압감은 사라지지 않더라. 대본보다 평전을 먼저 읽었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관객들에게서 '저건 아니잖아'란 말만 듣지 말아야지란 생각으로 연기했따.

▲ '동주'에서 윤동주와 송몽규가 논둑길을 걸으며 서울로 떠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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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에서 윤동주의 어머니가 떠나는 아들을 보며 눈물을 닦으시는 부분이 있다. 촬영할 때 마치 진짜인 것처럼 마음이 아렸다. 아마도 이후 펼쳐질 윤동주의 삶이 보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 ▲ 영화 윤동주를 있게 한 것이 8할이 열등감이라는 내용이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올 것 같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윤동주 시인의 팬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책꽂이에 각각 다른 버전별로 꽂혀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그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존경한다는 이유로 내가 무의식 속에 '윤동주'란 존재를 거대하고 천사같고 한결 흠도 없는 대단한 이미지로 만들어놨더라. 그런 면에서 그가 신춘문예도 떨어지고 원하는 대학에도 가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좋게 보였다. 내가 이미지만으로 만들어놨던 윤동주라는 '사람'의 삶을 대본에서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했다.

강하늘. 사진=
▲ 윤동주 시인을 국민시인으로 만든 게 열등감이라면 강하늘을 여기까지 오도록 만들어준 건 뭘까 부담감인 것 같다. 고교시절부터 연기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항상 내 능력 이상의 것이 주어졌다.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갑작스레 주연이 주어지면서 나는 어떤 순간에도 잘해야만 했고 실수도 없어야 했다. 나를 눈여겨 보는 이들이 있었고 '뭐 하나만 걸려 봐라 '하는 시선도 있었다.

▲ 질투하는 시선도 있었나보다.

없지 않았다. 당연히 있을 법한 부분이고.(웃음) 문제는 내가 잘하면 시기받는 것도 당연한데 능력 밖의 것이 자꾸 주어지는 상황에서 잘해야 하는 부분이 어렵더라. 돌아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해야할 것만 많았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부담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게 때로 힘이 되기도 하고. ▲ 윤동주 시인을 어떻게 그리고 싶었나 이준익 감독님이 어떤 작품을 만들 때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감독이 의도를 부여하는 건 다른 의미의 폭력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연기도 비슷하다.윤동주라는 사람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한다, 또는 어떻게 느껴져야 한다는 의도를 빼려고 했다. 그건 관객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미건조할 수 있지만 최대한 나의 의도는 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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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드라마 '몬스타' '엔젤아이즈' '상속자들'에서도 그렇고 '동주'에서도 대부분의 장면에서 교복을 입는다. 유독 교복과 인연이 깊은데 혹시 교복 광고라도 들어왔나

교복을 입고 찍은 작품이 기억 나는 것만 해도 벌써 여섯 작품이다. 그런데 교복 광고가 들어올만한 몸은 아니다. 교복 모델을 하려면 슬림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몸도 아니고 얼굴이 커서 안 된다. 하하

▲ 같은 시기 다른 느낌의 두 작품이 개봉해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남다르게 당황스러웠다.(웃음) 이 상황에서 현명한 선택이 뭘지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만 하고 있으면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이 상황도 즐기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열심히 촬영했고, 이제는 두 작품 모두 내 손을 떠났다. 관객분들이 좋은 작품을 선택해주시리라고 생각한다.

▲ '좋아해줘'는 트렌디한 영화지만 청각장애인 역할이라 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처음부터 청각장애라는 설정에 꽂혔다. 청각장애를 지닌 분들이 어떤 특징이 있을까 고민해 실제로 반영하려 했는데 쉽지 않더라. 예를 들어 극중 수호는 구화(상대방의 입술과 몸짓을 보고 의사소통하는 방법)를 하는데 그러려면 시선이 항상 상대방의 입술을 바라봐야한다. 실제로 그렇게 찍으니 스크린에서는 어색해 보이더라. 그래서 결국 현실과는 다르게 영화적 허용을 주자는 쪽으로 선회했다.

▲ '진지한 청년'이라는 스스로의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얘길 너무 많이 듣다 보니 별로 안 좋은 것 같더라. 굉장히 고마운 일이지만 내게 다가서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계시더라. 예를 들어 나는 인터뷰할 때도 같이 재밌게 어울리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좀더 편안히 얘기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다.

▲ 두 작품 모두 촬영장이 무척 재미있었다고. 무대 연기만 할 때 '영화 현장은 재밌을 거야'라고 생각한 지점이 있었는데 막상 맞닥뜨려서는 흥행에 신경쓰게 되더라. 점점 그런 걱정을 하게 되면서 재미를 잃었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다시금 재미를 찾았다. '아 내가 생각한 게 이거였는데' 싶었다. 사실 내 인생 목표는 즐기면서 살자는 것이다. 그게 어찌 보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책임감있는 말이기도 하다.

▲ 이전 인터뷰에서 '나에게 이상은 힘이다. 예술관과 신념을 꺾지 않고 싶다'는 말을 들려줬다. 지금도 그런가..

그런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연말과 연초에는 계획을 세우곤 한다. 누구나 첫 마음이 있지만 살면서 조금씩 뿌얘지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 아직까지는 내 생각이 변질되지는 않은 것 같다. 뭐든 좀더 고민하면서 해 나가려고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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