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배우 박정민은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 (주)루스이소니도스, 18일 개봉) 속 송몽규와는 같은 듯 다른 모습이다. 먼저 행동하기보다는 한 템포 천천히 생각을 곱씹듯 얘기하는 지점은 다르지만 아직 분출하지 않은 화산처럼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는 점은 비슷하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했듯 70여년 전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흑백의 스크린 속에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강하늘)와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의 빛나던 청춘을 담아낸 '동주'는 스스로에게는 "나를 바꾼 영화"라고 자신있게 전하는 그에게는 차분하면서도 단단해진 자신감이 묻어난다.

박정민.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송몽규 선생은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인물이잖아요. 관객들 중 열에 한 명 정도 알까말까한 인물이고 영화에서도 처음 다뤄지는 인물인데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본을 보면서도 자기 검열을 자연스럽게 많이 했죠. '과연 이런 말을 하셨을까?' '이런 지점은 실제 인물에 위배되는 건 아닐까?'하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액션 사인이 나기 전까지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스스로는 '고민이 많았다'고 하지만 박정민이 스크린에서 탄생시킨 송몽규는 거침없고 자유분방하면서도 명석하다. 생각이 많은 윤동주와는 반대로, 송몽규는 일제강점기 '행동하는 지성'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본 유학시절 거침없이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송몽규의 모습은 그런 캐릭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라는 마음에 대해 공감해보려고 했어요.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어쩌면 어리석다고도 할 수 있겠죠. 어린 청년 한 사람이 시대의 부당함을 고치고 싶어 목숨을 거는 지점이 말이죠. 사실 바로 이해가 되진 않았어요. '얼마나 한스러운 시대였기에 중국까지 넘어가 군사 훈련을 받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가졌을까'하는 마음에 뭉클해지기도 했고요. 아무나 감히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잖아요. 존경스러웠어요."

박정민.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송몽규'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뜨거움이 느껴진다는 그는 실제로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윤동주와 송몽규의 고향인 북간도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북간도에 가서 기대만큼 대단한 영감을 얻진 못했지만 촬영 중간중간 당시 걸었던 거리와 풍광 등이 생각나 도움이 됐어요. 그 곳의 분위기 같은 게 몸에 스며들었다고 할까요? 어린 나이에 조국의 독립을 꿈꿨던 이들의 삶이 가깝게 다가왔어요."

박정민.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한 달이라는 짧은 촬영기간 동안 촬영지가 강원도 고성, 경북 합천, 전남 고흥, 소록도 등 전국 팔도였어요(웃음) 스태프들 인원도 많지 않아서 한 곳에서 찍고 버스로 이동하고, 내려서 짐 풀고 또 찍고 하면서 마치 유랑극단같다는 생각도 했죠. 촬영을 마친 밤이면 (강)하늘이랑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고민하며 매일같이 술잔을 기울였구요. 촬영하면서 이렇게 재미있었던 경험도 처음이에요."

유쾌한 듯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동주'를 만나기 전 배우로서 그는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수차례 고민과 회의를 거듭해왔다고. 고려대 재학중 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입학한 박정민은 이후 연기를 하고 싶어 다시 같은 학교 연기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저는 하고 싶은 건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에요. 연출을 전공하다 배우가 되려고 연기과에 들어가면서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이 언젠가부터 '욕심'과 부담감으로 변질됐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렇게 연기에 대한 알 수 없는 목마름과 부담을 느끼던 시기 만난 '동주'는 그에게 하나의 작품을 넘어 인생관을 선물했다.

"송몽규 선생을 만나기 전의 박정민과 지금의 나는 굉장히 달라졌어요. 시대적인 고민을 하는 부분도 그렇고 평소에 공부하는 분야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부분도 그렇죠. 무엇보다 내 일을 하는 데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어요"라는 것.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물으니 연기관이 바뀌었다고.

"조급하고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하려 했고, 결과에 급급하고 과정을 잊었더 지난 5년이 하나 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어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우선 아름다워야 떳떳할 수 있겠다는 걸 배웠죠. 언젠가 (황)정민이형처럼 연기 잘 하는 성공한 배우가 된다면 뒤를 돌아봤을 때 떳떳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매 작품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여전히 투정도 부리고 있지만 이제는 내가 이 일을 하는 소중함을 알겠어요. 그저 안경잡이 모범생이었던 내가 이준익 감독님같은 분도 만나고 주연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한 감사함도 생기고 역사 공부도 재밌게 하게 됐어요. 지금의 행운을 행복하게 즐기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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