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사진= 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해발 4,000m 이상의 높이에서 바라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저마다의 이유를 가슴에 담은 채 산에 오르고 또 오르는 이른바 '산쟁이'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 제작 JK필름)의 정우는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인 고(故) 박무택 대원을 연기했다. 히말라야 원정길에 죽음을 맞은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2005년 '휴먼원정대'를 꾸려 떠난 엄홍길 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히말라야'는 실화가 주는 감동에 집중했다.

그래서 작품은 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자제한 채 담백함으로 승부했다. 그 중심에 있는 정우 또한 특유의 장난기와 웃음기를 거둔 채 박무택이라는 인물의 발자취에만 초점을 맞췄다.

정우. 사진= 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완성된 작품을 보니 촬영했을 때 좀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아요. 무엇보다 진정성있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요. 유가족 분들이 어떻게 봐주실까하는 마음에 마냥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쉽지만은 않았죠. 그래서 (박무택 대원의) 생전에는 밝고 유쾌한 모습을, 죽은 후에는 뜨거운 감동이 있는 모습으로 온도 차이를 뒀어요."

이미 고인이 된 이를 연기하는 것은 경력 15년차를 맞아 다종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왔던 그에게도 녹록지 않은 선택이었다.

"고인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심적인 압박감이 굉장했어요.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도 많았구요. 특히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는 어떻게 하면 과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평지에서 숨을 거두는 것과 달리 고지대로 올라가면 숨이 가빠지고 감정적으로 격해지면서 호흡이 고르지 못한데 몸은 굳어서 얼어가는 상황이니까요. 숨은 차오르는데 몸은 굳어있는 연기를 하니 나중에는 온몸에 쥐가 나기도 했어요."

정우. 사진= 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산병(낮은 지대에서 고도가 높은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하였을 때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나타나는 신체의 급성반응)'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촬영해야했던 순간이었다. 그가 처음 경험한 '고산병'은 일상적인 활동을 마비시킬 정도로 심각했다.

"머리도 너무 아프고 잠도 하루 1~2시간밖에 잘 수 없는 떠나 상태가 1주일이 넘어가면서 나중에는 서 있기조차 힘들었어요. 어떻게든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싶은데 저때문에 다른 분들도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나중에는 스스로에 대해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정우. 사진= 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그로 인한 부담감도 연기자로서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미안함이 주는 심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어쨌든 팀의 분위기를 흐트릴 수 있는 거니까. (황)정민이 형도 있지만 나도 주연배우로 앞장서서 가고 싶은데 물리적으로 그러지 못하니 답답함의 시간이 많았죠."

그러나 다른 작품이라면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것도 많이 얻었다. "대자연의 광활함에 대해 새삼 매력을 느낀 시간이기도 해요. 한 순간을 보기 위해 힘들게 걸어 올라가서 거기서 오는 성취감이나 상쾌함을 누리는 거죠. 그런 게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느껴지는 감정들과 합쳐지면서 '산쟁이'들을 계속 산으로 부추기는 요인이지 않을까요?"

혼자가 아닌 '우리'라서 가능함을 알게 한 시간도 경험했다.

"산사람들의 우정이나 의리는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작품을 통해 크게 얻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 '혼자 있었으면?'이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자연스럽게 '절대 못 했을 거다'라는 답이 나온다는 점이에요. 위험한 상황도 여러번 겪으면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한 작품을 완성하고자 했던 마음이 없었다면 절대로 가능할 수 없었던 프로젝트죠. 인생도 아마 그런 것이지 않을까요?"

사실 배우가 아닌 일상인으로서의 정우는 낯가림도 심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시간도 걸리는 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억지로 빨리 친해지려고도, 밀어내려고도 하지 않는 편이에요. 모든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게 제가 가진 생각이죠. 연기에 있어서도 그래요. 저의 기존의 색깔을 버릴 생각은 없어요. 호불호가 있겠지만 정우라는 배우는 이 세상에서 저 하나니까요. '히말라야'라는 작품이 제게 그랬듯, 억지스러움이 아닌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연기생활이든 삶이든 꾸려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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