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히말라야'서 엄홍길 대장 역 열연
흥행엔 초연하지만 스태프 위해 잘되었으면
촬영장에선 카리스마 배우,집에선 평범한 아빠

사진=김지수인턴 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잘 우려낸 사골 국물 같다면 맞는 표현일까?

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 제작 JK필름)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황정민은 순도 100% 진정남이었다. 가식은 전혀 없었다. 모든 말 한마디에 진심이 배어 있었고 온몸에서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2015년 초 '국제시장'으로 1426만명, 여름에 '베테랑'으로 1314만명을 동원하며 '쌍천만 배우' 반열에 오른 슈퍼스타의 우쭐함은 전혀 없었다. 연기란 높은 산을 묵묵히 오르는 구도자의 느낌이 더욱 강했다.

사진=김지수 인턴 기자 multimedia@hankooki.com
'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망한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등산에 나선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원정대의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 황정민은 아끼던 후배 박무택(정우)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네팔 현지 촬영을 통해 생사를 오가며 온 국민을 감동시킨 뜨거운 우정을 재현했다. 황정민이 고생을 안 한 작품이 없지만 '히말라야'는 말 그대로 '결정판'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면서 스크린에서 들려오는 황정민의 거친 숨소리가 관객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단 한번도 쉽게 가는 작품이 없다고요? 저는 작품은 여유롭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죽느니 사느니 부닥치고 산 넘어 산이야 관객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냥 쉽게 가는 작품은 체질상 안 맞아요. 정말 이번 작품에서 유일하게 바랐던 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하게 촬영을 마치는 것이었어요. 네팔 촬영 현장은 잠시 한눈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좁은 길인데 짐을 든 야크도 지나가야 하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죠. 극한의 환경이었기에 제가 솔선수범할 수밖에 없었어요. 매일 가장 촬영 먼저 나와 준비하고 고산병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독려해야 했죠. 선배여야 했고 대장이어야 했기에 더욱 외로웠던 촬영 현장이었던 것 같아요."

'히말라야'는 잘 알려진 대로 제작자 윤제균 감독이 2005년 MBC 다큐멘터리 '아! 에베레스트'를 보고 감동받아 시작된 프로젝트. 실제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주는 감동을 어떻게 뛰어넘는지가 제작 당시 당면과제였다. 황정민도 역할을 수락한 후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실화를 뛰어넘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단다.

사진=김지수인턴 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저도 다큐멘터리를 봤기에 중압감이 있었어요. 관객 분들이 돈 내고 영화를 볼 텐데 다큐멘터리와 다른 뭔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러다 강원도 영월에서 3분의1 정도 촬영했을 때 심산 작가가 쓴 ''엄홍길의 약속'을 읽었어요. 그때 생각이 정리되더라고요. 실화를 안고 가야지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뭔가 찝찝했는데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이 영화는 산악 영화가 아니에요. 사람에 관한 영화죠. 우린 전문 산악인이 아니에요. 아무리 짐을 지고 멋지게 산을 올라간다 해도 한계가 있어요. 사람에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니 더욱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히말라야'는 16일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경쟁작 '대호'를 앞섰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대호'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쌍천만 배우'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황정민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이미 흥행에 일희일비 하지 않은 고수의 느낌이었다.

"흥행에 대한 조바심은 없어요. 배우 초년병 때부터 훈련이 많이 돼 있기 때문이에요. 신인 때 관객이 없어 연극 공연을 못한 적도 있어요. 두세 달 개고생을 해서 준비했는데 관객이 두세 명이 와 자존심이 상해 공연을 못한다 말해 선배들한테 맞기도 했어요. 또한 관객이 정말 많이 들어 못 보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한 적도 있죠. 제 영화가 항상 잘 된 건 아니에요. 아시잖아요?(웃음) 2015년 운 좋게 두 영화가 정말 잘됐어요. '히말라야'도 잘 되면 좋죠. 특히 고생한 스태프들을 위해 미친 듯이 잘되면 좋겠어요. 그러나 현재는 관객의 선택을 기다려 볼 수밖에 없어요."

황정민은 촬영장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지만 가정에선 10살 된 외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매일 아침 스쿠터로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밤 중에 배고프면 동네 삼겹살 집으로 몰려가 온 가족이 고기를 구워 먹고 아내 없을 때 아내가 금지한 라면을 아들과 몰래 끓여 먹는 삶의 소소한 재미도 즐길 줄 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최근 VIP 시사회장에 왔던 아내와 아들의 반응을 들려주었다.

"아내는 '국제시장'보다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국제시장'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거든요. 아이도 '국제시장'을 보다가 "아빠 언제 끝나"라고 물어서 민망했는데 이번에는 훌쩍훌쩍 울며 재미있게 보더라고요. 일년 사이 정말 많이 큰 거죠.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사인 받아 달라 해 다 받아줬지요. 요즘 공연 '오케피' 준비도 하느라 바빠졌는데 아들이 아빠를 잘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쿨하게 키우려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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