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제 목표요? 대체 불가능하게 연기 잘 하는 '여자 사람 배우'요(웃음)"

어떤 질문에도 자신만의 생각을 또렷이 담은 채 답변을 이어가는 문근영에게는 5년만의 드라마 인터뷰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전에 없던 씩씩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근영.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스스로에게도 큰 도전'이었다는 SBS 수목드라마 '마을(극본 도현정 연출 이용석)'을 무사히 마친 때문일까? 아니면 내년에 서른을 바라보는 17년차 배우로서 이제 여유를 갖게 된 때문일까. 어찌됐든 문근영은 드라마의 성패와 관계 없이 자신만의 지치지 않는 날갯짓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장르적인 분위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려고 했는데 끝나고 나니 많이 헛헛하네요. 촬영장 분위기가 유난히 좋아서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무척 즐거웠어요.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우리들끼리는 '엄청난 드라마를 만들고 있어. 독특하고 짜릿하게 만들고 있어'란 생각으로 열정적으로 촬영했는데 그런 현장을 못 간다는 게 못내 아쉽죠."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한 스릴러 드라마 '마을'에서 문근영은 평온한 마을에 벌어진 살인 사건의 관찰자이자 사건 해결에 함께 나서는 인물로 분했다. 10대 시절부터 주인공을 도맡아 온 그이지만 이번처럼 관찰자 시점이 되어 극을 끌어간 경험을 처음이다.

문근영.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장르물에서 등장인물이 너무 부각되면 사건을 쫓아가는 시선이 분산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연기 톤을 되도록 밋밋하게 보이게끔 다운시켰죠. '문근영의 연기가 너무 평이하다'란 평가가 나오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도했던 부분은 잘 이뤄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그에게 그저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전체 드라마의 판을 보고 조율할 수 있는 첫 시험대이기도 했다.

문근영.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작품을 넓게 보는 시야가 생겼어요. 그동안 항상 내 캐릭터 이끌어가는 데 바빴는데 이번엔 한 걸음 뒤에 서서 드라마 스토리 전체를 봐야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보였어요. 특히 저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과 다 한번씩 만났거든요. 그럴 때 리액션을 어떻게 해야 하고 상대배우의 호흡을 어떻게 읽어내는지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그는 "배우마다 연기하는 스타일, 호흡법, 연기에 있어서의 '장식'이 모두 달라요. 드라마 촬영 시스템이 낯선 연극 배우 선배님들도 계셨구요. 하나 하나 호흡을 맞추면서 저도 각자 다른 '결'을 어떻게 읽어내는지를 알게 됐죠"라며 진지한 눈망울을 반짝인다.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짬밥'을 무시하진 못하겠더라구요(웃음) 촬영장에서 보이는 게 점점 많아져요. 이젠 후배들을 챙기기도 하구요. 저보다 나이 어린 스태프들도 꽤 있으니 제가 나서서 가르쳐주기도 하게 되더라구요"라며 '나이듦'과 함께 달라진 모습이 재미있다고도 전ㅎㅏㅆ다.

멜로가 없어 아쉽지는 않았는지를 물으니 "장르물은 장르물다워야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본격 장르물을 지상파에서 한 건 처음이었는데 마니아들에게 '잘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으면 했어요. 대중적이진 않더라도 우리의 새로운 시도가 의미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거든요. 드라마하면서 '웰메이드'라는 얘길 들을 때마다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속사포처럼 많은 얘기들을 빠르게 쏟아내는 그는 어느덧 데뷔 17년차다. 열 세살에 영화 '길 위에서'로 데뷔, KBS 2TV '가을동화'(2000)으로 전국을 울렸던 그도 어느새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다.

"스스로를 돌아볼 땐 대견하기도 해요. 그저 재미있어서 연기를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성인이 돼서 직업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데 감사할 일이죠. 물론 저보다 잘하고 뛰어난 배우들을 보고 열등감이나 질투심이 들 때면 욕심이 생겨 힘들기도 해요. 그런데 고민이 많아지면 지치더라구요.(웃음) 하지만 저는 여전히, 연기를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만 스물 한 살 나이에 연기대상(SBS)까지 거머쥐었던 연기생활 내내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

"20대 내내 방황기였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란 고민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나는 이미 식상한 것 같은데, 제 나이 또래의 다른 여배우들을 보면 신선하고 풋풋하다는 생각에 더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했구요. 지난해 영화 '사도'를 끝내고 나서도 연기가 힘들다는 생각에 사실 그만둘까도 고민했어요. 그 때 처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라는 걸 해 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일을 해와서 그런지 내가 다 이끌어가야 한단 생각에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하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엄마와 친구들과 속깊은 대화를 하면서 '아,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구나'란 걸 새삼 알게 됐죠"

이제는 다시 '씩씩한 문근영'으로 돌아왔느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웃는다.

그는 "영화 '사도'를 찍을 때 이준익 감독님이 '너는 문근영이야. 자신감 가져'란 얘길 해주셨어요. 그 안에 되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는 동안 외모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가 바꾼다고 바뀌어지는 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나름대로 발버둥도 치고,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이것 저것 많이 했죠. 시간이 지나고 나니 굳이 내 이미지를 벗으려고 애쓰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아닌가 싶었어요. 남들이 봐 주는 '이미지'와 별개로 나라는 배우가 있는 거고,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갈테고 언젠간 내가 더이상 어리지 않음을 인지하는 시간이 오겠지' 싶었죠"

그래서 이제는 '대체 불가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다.

"작은 역할도 상관없어요. 저는 '여배우'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 조금 반감이 있는데 '여자배우'가 아니라 연기 잘 하는 '여자 사람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예쁘고 아름다운 배우보다 연기를 잘 하고 싶거든요. '사도'에서 만난 송강호 선배에게 언젠간 연기로 대적하고 싶다고도 얘기했어요.(웃음) 예전에는 어리고 소심해서 내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마냥 기다리는 건 바보같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연기에도 내가 좀더 욕심을 내고 움직여야 해요"

연기 이야기가 나오자 쉴 틈 없이 얘기를 꺼내놓는 그에게 그럼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를 물으니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멜로 영화"라고 답한다.

"사랑따윈 필요 없어'란 영화를 10년전에 찍었는데 그땐 사랑을 몰랐던 것 같아요.(웃음) 이젠 좀 알 것 같구요. MBC '여명의 눈동자'나 SBS '모래시계'에서처럼 깊고 진한 멜로가 나오는 작품을 꼭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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