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첫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서 내 의무를 다하자는 생각이었어요. 막상 입을 열고 마주하고 나니 나아지네요."

2년 만에 인터뷰를 통해 언론과 만난 이병헌은 담담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동안의 개인적 부침을 뒤로 하고 19일 개봉하는 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 제작 (유)내부자들 문화전문회사)'로 관객들과 대면하는 그는 '역시 이병헌'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명불허전 연기로 탄성을 자아낸다.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내부자들'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언론인 등의 뒷거래를 쫓는 검사와 건달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회의원 장필우(이경영)와 자동차회사 회장 오현수(김홍파) 사이에서 그들을 돕는 정치 깡패 안상구(이병헌)는 비자금 파일로 거래를 해 보려다 나락으로 떨어진 후 조용히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20여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악역의 진수를 보여준 그는 20대부터 40대까지 한 인물 속에 다양한 캐릭터를 드러내며 톱클래스급 연기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해보였다.

▲영화를 본 이들의 반응이 '이병헌이 연기로 뭔가 보여주기 위해 작정하고 나왔다'는 평가가 많더라.

"뭐든 이를 악물고 하면 오히려 잘 못 한다. 게다가 극중 상구는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인물인데 온 몸에 힘을 주고 하면 오히려 못할 것 같았다. 그저 자유롭게 놀아보자는 느낌으로 연기했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워낙 첨예해서 상구까지 쉴 틈없이 가면 작품이 너무 빡빡해질 것 같았다. 돗자리가 펼쳐졌고 한바탕 놀자는 생각으로 했다."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작품이 복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극중 상구가 조직폭력배 출신이라는 점이 영화 '달콤한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도 있는데.

"안상구는 보다 '현실에 발 붙은 깡패'로 인간미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숨어지내며 복수를 계획하지만 늘 날이 서 있진 않다. 홀로 라면을 끓여먹으며 처량맞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지점이 때로 웃음을 자아낸다. 생각해보니 실제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도 그럴 것 같았다. 24시간 복수만을 위해 사는 인물보다는 극중 안상구처럼 현실감있는 캐릭터가 더 공감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데뷔 후 처음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 부분도 그렇고 애드리브가 많은 지점을 보면 이전 작품에 비해 큰 도전이었을 것 같다.

"원래 나는 대본에 충실한 편이라 애드리브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현장에서 그때 그때 아이디어를 상당히 많이 냈다. 영화 속 대사도 그렇고 화장실 유머를 연상하게 하는 몇몇 장면도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차용된 장면이 많다. 전라도 사투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 보자는 목표였다. 극중 상구가 이미 상경한 지 20년이 넘는 인물이라 너무 과하지 않게 쓰면서도 어느 첨예한 순간에는 진한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느낌으로 주력했다."

▲검사 역 조승우와의 서로 주고 받는 호흡도 긴장감있으면서도 유쾌하게 그려졌다.

"좋은 배우라는 얘기는 종종 들었지만 이번에 처음 함께 하면서 정말 실감했다. 영화 촬영 전 파트너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 조승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헤드윅'을 보러 갔는데 '뭐 저런 배우가 다 있나'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깜짝 놀랐다. 촬영 현장에서도 역시나였다. 내가 애드리브를 하면 그도 질세라 받아치고 서로 주고 받는 호흡이 굉장히 좋았다. 인간적으로도 그렇다. 이 영화가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를 생각해보니 사람이 남았더라. 좋은 친구를 한 명 얻은 것도 큰 수확이다."

▲원작이 워낙 유명한 웹툰이라 과연 영화로 어떻게 구현될지 제작단계부터 화제작이었다. 선택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나?

"연출자 우민호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는데 굉장히 재밌게 읽었고 과연 이걸 쓴 감독은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증이 일었다. 개인적으로도 20여년의 연기 생활 동안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한국 영화에 비리를 소재로 한 스릴러가 많은데 이런 종류의 영화가 많다는 건 사회에도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출연한 작품이지만 이런 영화는 궁극적으로는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병헌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작품 선택이 일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다. 이번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하나의 도전이었나?

"영화를 선택할 때 사실은 즉흥적이다. 그 때의 느낌이 오는 것, 재미있는 것을 선택한다. 새로우면서 마음을 울리면 최고의 작품이겠지만 늘상 새로움만을 찾지는 않는는다. 그 때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게 정답인 것 같다."

▲근 몇년간 할리우드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는데 앞으로는 어떤가?

"우선 순위를 정하라면 당연히 한국이다. 할리우드는 여전히 벽이 있는 시장이다. 내년 개봉하는 두 작품(영화 '미스컨덕트' '황야의 7인')에서는 그저 동양인 배우로서의 역할이 아닌 '배우 이병헌'이 보이는 캐릭터를 맡긴 했지만 언어와 역할에 있어 동등한 입장이 아닌 핸디캡을 지니고 시작하는 느낌이다. 할리우드는 내게 주어진 부수적인 선물인 것 같다. 다만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해볼 때까지는 해보자는 생각이다."

▲그래도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며 자리잡은 동양인 배우로서 개척자라는 생각도 들 것 같다.

"희망적인 것은 이제 그들(할리우드 스튜디오)도 '동양인 이병헌'이 아닌 '배우 이병헌'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제안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미스컨덕트'에서 함께 한 알 파치노는 내겐 아이돌 스타 같은 인물이다. 그런 배우와 함께 영화를 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꿈같은 일이다. 하지만 부담은 가지지 않으려 한다.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는 순간 굳어버릴 것 같다."

▲그동안 아들이 생기는 등 개인적인 변화도 많았다. 아버지 이병헌은 어떤가?

"마음에 이전에 없던 뭔가가 생긴 것 같은 신기하고 먹먹한 느낌이다. 그런 상태를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전에 없던 무엇인가가 마음을 두드리는 느낌이 있다."

▲'내부자들'로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앞으로 활동 계획을 어떻게 잡고 있는지 궁금하다.

"배우로서 모든 영화가 다 잘될 수는 없고 그것에 연연하면 앞으로의 발전은 없을 것 같다. 그저 당시의 최선을 다 하면 된다. 내년에는 한국 작품 1~2편, 할리우드 작품 1~2편 정도로 관객들과 만나보자는 게 지금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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