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인간미 넘치는 영조역 열연
유아인은 감정에만 자신을 내던지는 훌륭한 배우
사춘기 자녀들과의 소통에 대해 반성했지만 아직은 어려워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배우는 두 종류가 있다. 캐릭터를 철저히 분석해 역할에 자신을 맞춰 가며 연기하는 배우와 어떤 캐릭터를 맡든 그 역할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고 와 자기화하는 배우.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 제작 타이거픽쳐스)의 주인공 송강호는 후자의 경우다. 송강호는 항상 어떤 역할을 맡든 자신의 개성을 투영한 살아 숨쉬는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조선 왕조 최고 비극적인 사건을 영화화한 ‘사도’에서도 송강호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영조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관객들의 탄사를 자아냈다.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늦게 얻은 아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보이다가 애정이 실망으로, 더 나아가 분노로 변하는 애증의 감정을 소름 끼치도록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송강호는 러닝타임 내내 감정을 비틀거나 돌아가지 않고 스트레이트하게 밀고가면서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영화 개봉 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모든 질문에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그의 연기처럼 모든 대답은 스트레이트. ‘직진’이었다.

“정공법인 게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사실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는 사건이었지만 대충 알았지 그 내면에 있던 세세한 부분은 몰랐어요. 사료를 바탕으로 실제 있었던 일과 대화를 생생하게 담은 시나리오가 매력적이었어요. 최근 유행하는 퓨전식이 아닌 정공법으로 8일간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뤄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어요. 재미있는 활극은 아니지만 진중하게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작품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출연을 결정했어요.”

사실 이제까지 투박한 소시민을 형상화해온 송강호가 왕을 연기한다는 건 새로운 도전.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신선한 발상으로 평가받으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송강호는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에 자신을 채찍질하고 아들을 몰아붙이다 비극에 다다르는 영조의 모습을 강렬하면서도 인간미 넘치게 소화해냈다. 이제까지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송강호식’ 왕의 모습을 구현해냈다.


“사실 영조의 결정은 처음에는 저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촬영이 진행될수록 그 마음을 조금씩 유추할 수 있더라고요. 태생적인 콤플렉스가 있는데다 형님을 독살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어요. 왕권 정통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들이 모두에게 추앙받는 왕이 되길 원했죠. 그런데 아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얼마나 실망스러웠겠어요? 영화 속 ‘너 일년에 몇 번이나 공부를 하고 싶으냐’는 대사들은 실제 사료에 나와 있는 말들이에요. 그런 영조의 인간적인 고뇌가 들어있는 대사들을 통해 그 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사실 두 시간 안에 오랜 세월을 담다보니 영조의 마음이 자세히 표현되지 않았어요. 만약 사도세자의 비행을 다 담았으면 분명 관객들이 영조의 편을 들었을 겁니다.(웃음)”

송강호는 영화 속에서 후배 유아인과 팽팽한 연기대결로 영화의 몰입도를 증폭시킨다. 유아인도 송강호처럼 현란한 연기기술을 구사하기보다 오직 감정에 충실하면서 직진으로 밀고가 더욱 완벽한 연기호흡을 선보인다. 송강호는 최근 대세로 떠오른 유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애정을 드러냈다.

“정말 훌륭한 배우예요. ‘사도’뿐만 아니라 ‘베테랑’을 보면서 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유아인의 연기가 놀라운 점은 굉장히 테크닉적으로 연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감정에 자신을 내던져요.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전형적인 느낌으로 연기할 수 있었는데 잔재주나 잔기술을 보여주지 않고 정직하게 연기하더군요. 그 나이에 할 수 없는 연기를 했어요. ‘베테랑’ 브아이피 시사에 갔다가 유아인의 연기가 정말 좋아 기분 좋아 뒤풀이에서 새벽 7시까지 있었어요.(웃음)”

송강호도 이제 사춘기에 들어선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아들과 애증의 전쟁을 벌이는 ‘사도’를 촬영하면서 교육방식에 대한 생각을 해봤을 법하다. 그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민망한지 웃음을 터뜨렸다.

“많이 반성했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두 사람의 소통부재가 얼머나 큰 비극을 만들어냈는지 목격하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집에 가면 아이들과 소통을 자주 하지 못합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딸과도 사실 소통을 많이 하지는 못합니다. 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직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송강호는 다작을 하지 않는다. '사도‘는 1137만을 동원한 ’변호인‘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작품. 1년에 두 세편씩 촬영하는 동년배 배우들과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현재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을 촬영 중이다.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회원으로 위촉될 만큼 해외에서도 명성이 높은 만큼 해외 진출도 고려해볼 만하다.

"일부러 작품을 적게 찍은 건 아니에요. 영화를 시작한 지 20년이 됐는데 지금까지 해온 작품 수를 따져 보니 1년에 1.1편 정도를 촬영했더라고요. 다작을 훌륭하게 해내는 배우들을 보면 부럽더라고요. 저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올까 하며 감탄할 때가 많아요. 제가 다작을 할 성향이 아닌 것 같아요.(웃음) 해외 진출은 그다지 욕심이 없어요. 해외 유명 영화제에 나가 보면 우리나라 영화가 정말로 경쟁력이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훌륭한 영화를 만든다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리우드나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글로벌한 건 아니에요. 우리 영화를 잘 찍어 해외에서 인정받는 게 진정한 글로벌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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