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구. 사진=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기자]여진구. 아직 스물도 채 안 된 배우가 자신의 이름 석 자만으로 성인 배우 못지않은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는 케이스가 또 있을까? 초등학교 시절 아역 으로 데뷔, SBS 드라마 '자이언트(2010)' '무사 백동수(2011)'를 거쳐 MBC '해를 품은 달(2012)'의 김수현 아역으로 포텐을 터트린 그는 스크린에서도 신인상을 휩쓴 '화이(2013)' '내 심장을 쏴라(2014)'로 주목받으며 영화계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살아온 햇수보다 많은 30여편 넘는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그의 연기에는 또래답지 않은 깊은 여운과 진중함이 묻어있다.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여진구는 영락없이 앳된 티 가득한 소년이었다. 마지막 고교시절을 장식할 친구들과의 수학여행에 한껏 들떠 있고, "운전면허를 따서 드라이브해보는 게 소원"이라는 그에게서는 장난기 속에서도 총기어린 분위기가 읽혔다.

여진구. 사진=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그런 그가 설경구와 함께 투톱으로 나선 영화 '서부전선(감독 천성일 제작 하리마오픽쳐스)'은 1953년 7월 휴전협정을 앞두고 남한군 장남복(설경구)과 북한군 탱크병 김영광(여진구)이 대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두 남자의 뭉클하면서도 코믹한 호흡에 더 집중했다. 영화 속 여진구는 전우들이 모두 사망하자 홀로 탱크를 지키며 북으로 돌아가려 고군분투하는 소년병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의 상황이 너무나도 이해가 가서 끌렸어요. 전쟁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집에 가고픈 마음이 얼마나 컸을지 마음으로 전해져서 더 많이 끌렸던 것 같아요. 전작 속 캐릭터가 좀 어둡고, 내성적인 성격이 많았다면 이번 캐릭터는 실제 저와 가장 많이 닮아있어요."

영화 속 여진구는 '탱크 집착남'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전우들이 떠난 탱크에 엄청난 애정을 쏟는다. "나중엔 실제로도 정이 들어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탱크'를 넣어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탱크에 대한 영광이의 집착은 결국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생각해요. 꼭 살아 돌아가기 위해 탱크를 지키는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왔어요."

여진구. 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무려 29년 나이 차이가 나는 설경구와의 호흡은 "더할 나위 없었다'"고. "(설)경구 형님이 보자마자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셨어요.(웃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영광과 남복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살벌하게 싸우기도 하고, 남과 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좋아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틱틱거리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정이 드는, 독특한 그들만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고요."

연기 스타일에도 변화를 줬다. 전작의 여진구가 모든 상황을 100% 예측하고 움직이는 주도면밀한 '준비형'이었다면 이번에는 촬영장에서 그때 그때 느낌에 집중했다.

여진구. 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기를 해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고, 제가 군대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색하게 준비하는 것보단 '그냥 그 인물이 돼 보자'는 생각이었달까요? 이전에는 나 아닌 다른 인물을 새로 만들었다면 이번엔 나 자체를 영광이에게 맞춰봤어요. 감정선도 정리하기보다는 투박해보일지라도 느끼는 그대로 표현해봤고요."

이런 의도 속에 촬영장에서는 애드리브도 적지 않게 구사했다. "사실 저는 현장에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엔 가벼운 느낌으로 그때 그때 생각나는 애드리브를 시도해봤어요. 예를 들어 초반에 수류탄을 잘못 던져 영광이 앞으로 떨어지자 깜짝 놀라 몇번이나 다시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 애드리브였거든요. 운 좋게도 그런 장면을 살려주셔서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 됐죠"

짧지만 로맨스도 등장한다. 북에 두고 온 첫사랑 소녀 옥분(이수빈)과의 이별이 그려지는 회상 장면에서는 소년의 순수함이 묻어난다. "영광이가 정말 순진무구해 보였으면 했어요. 첫사랑 옥분이가 똑부러지는 여학생이라면 영광이는 순박하기도 하고 좀 어리바리하기도 하죠...그런 풋풋함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여진구. 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실제로도 어리바리한지를 물어보니 "그렇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평상시 행동은 영화 속 영광이와 비슷해요. 뭔가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의욕은 불타지만 행동은 잘 안 따라주는 편이죠(웃음)...그다지 어른스럽지 않아요."

그래도 연기만큼은 가장 집중하고 싶은 영역이라고. "어릴적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연기도 그 중의 하나였어요. 본격적으로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건 중학교 때 SBS '자이언트'라는 작품을 통해서였죠. 제가 뭔가에 집중하면 굉장히 파고드는 성격이라 연기를 안했으면 아마 사고 많이 치고 다니는 학생이었을 거예요."(웃음))

이제 열 아홉.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 여진구'는 어떤 모습일까? "음...남자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정신없이 까부는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좀 얌전한 편이지만 장난기도 많고 철없이 굴 때도 많아요. 10월 초에는 대학 수시 면접에 응할 생각이에요. 전공은 연극영화과로 생각하고 있고요, 제가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해서 조금 걱정되긴 해요."(웃음)"

대학에 들어가면 뭘 하고 싶은지를 물으니 바로 "치맥"이라고 답한다. "치킨과 맥주, 막걸리와 파전, 곱창에 소주 같은 환상 궁합이라는 음식을 맛보고 싶어요. 면허도 딸 수 있으니 드라이브도 가고 싶고, 캠퍼스 커플도 해 보고 싶어요."

몇 달 남은 10대의 끄트머리는 가장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며 특유의 환한 웃음을 보인다. "10대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평범한 여진구든 배우 여진구든 몇달 남은 10대의 추억을 많이 남기고 싶어요. 아직은 모든 게 재밌고 새로운 청춘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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