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서] '여자를 울려'에서 강진희 역 맡아 열연
"10년 만에 찾아온 기회, 실감 안났다"
"신인상? 생각만으로도 숨 막혀"

‘여자를 울려’에서 강진희 역 맡아 열연한 한이서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저에게 '여자를 울려'는 구하기 힘들다는 산삼이에요. 저는 이 산 저 산 다 다니는 심마니고요. 오늘도 수확을 하지 못해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오르기 힘들다는 명산을 올라갔어요. 그곳에서 기대 없이 평상시처럼 열심히 찾았을 따름인데, 진짜 산삼을 찾은 거죠."

[스포츠한국 조현주기자] 10년의 기다림이었다. 오디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무뎌질 만도 했지만 늘 간절했다. 배우 한이서(30)는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심정으로 기회를 기다렸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꾸준하게 단련했다.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기회가 주어졌다. 그의 노력은 하늘도 감동할 정성이었다.

한이서는 MBC 주말극 '여자를 울려'(극본 하청옥·연출 김근홍 박상훈)에서 정덕인(김정은)의 남편인 황경철(인교진)과 불륜에 빠지고도 당당한 철없는 부잣집 막내딸인 강진희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극 초반 경철을 가지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안하무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욕을 한 바가지로 얻어먹었지만 퇴장할 때는 경철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리며 막힌 속을 확 뚫어줬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게 힘들잖아요. 단순히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불륜은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구역이었어요. 관련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시사성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찾아보면서 도움을 받았어요.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아 하는 진희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저도 노력했죠."

불륜 앞에서 당당했던 진희를 연기하면서 한이서는 부릅뜬 눈에서 힘을 뺄 수 없었다. 갖지 못한 사랑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조바심 내기 일쑤였다. 그는 "방송을 보면서 놀랐다. 어떻게 눈을 저렇게 희번덕거렸는지 모르겠다"고 웃어보였다.


"처음에는 화난 사람의 표정을 많이 떠올렸어요. 그런데 회가 거듭될수록 화보다는 경철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자꾸 덕인에게 집착하는 경철을 보면서 섭섭하기도 하고 불안함과 조바심이 커졌어요. 그런 많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쌓아갔어요. 그렇게 화를 내고 독한 연기를 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미친 듯이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머리가 띵하기도 했고요. 정말로 제 감정을 곧이곧대로 쏟아냈어요."

학교 앞 밥집 아줌마인 정덕인과는 반대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진한 메이크업과 화려한 치장을 했다. "평상시에는 전혀 입지 않는 옷"이라서 불편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강진희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덕인과 반대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타이트한 옷도 많이 입고 굽도 높은 걸 신었어요.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 많이 신경 썼어요. 스타일리스트랑 대화도 많이 하고 회의도 많이 했죠. 살면서 앞으로 이렇게 힘줄 일이 있을까 싶어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극 속의 캐릭터와 혼연일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0년의 무명시절을 보낸 그에게 '여자를 울려'는 당연히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단역과 영화들을 거쳤지만 좀처럼 기회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때문에 캐스팅이 확정되고 촬영을 하면서도 불안감은 엄습했다.

"불안했어요. 처음에 제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에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그 과정서 상처를 받아서 기대할 수가 없었거든요. 촬영이 들어가서도 실감을 못했어요. 그런데 전작인 '장미빛 연인들'이 끝나고 '여자를 울려' 예고가 나오니까 실감이 나더라고요. 드디어 제대로 무언가 한 것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10년의 무명 시절을 겪었지만 한이서가 배우를 꿈꾼 것은 그 이전이다. 중학교 3학년 당시 부모님과 우연히 본 연극에 꽂힌 그는 처음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꾸준하게 배우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연말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도 싫었지만 연기대상을 보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나는 꾸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오랜 기간 한 우물을 파면서 배운 건 있어요. 조급함은 독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재밌고 즐기면서, 이 자체에 감사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힘든 시간 가장 도움이 됐던 존재는 바로 가족이었다. 그는 "부모님은 늘 묵묵히 응원해줬다. 힘들 때마다 좋은 말씀으로 나에게 깨달음을 주셨다"면서 "부모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아닌 부모님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고 절절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에게 혹시 '신인상을 기대하느냐'는 말은 던지니 갑자기 벅찬 표정을 지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는 그는 "'여자를 울려'를 통해 배운 것이 많다.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사실 연기생활을 하지 못할 때는 나도 상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은 많아요.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촬영하고 대단한 선배들이랑 작품을 하니까 이 자체만으로도 좋더라고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이 작품을 한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워요. 너무 오랜 기다림 끝에 한 작품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품이 될지 모르겠지만 빨리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고 싶어요. 너무 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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