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 '극비수사' 200만 돌파하며 성공적 컴백
김윤석-유해진과 작업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잠시라도 쉬면 도태되는 느낌! 차기작 준비도 척척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충무로에서 감독들의 조로(早老) 현상은 오랫동안 제기돼온 문제다. 할리우드나 외국에서 60~70대 유명 감독들이 쉼 없이 작품을 찍어내는 것과 달리 우리 나라에서 50대를 넘어서 1년에 한 작품씩 내놓는 감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전국 2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극비수사’(제작 제이콘컴퍼니)로 저력을 다시 입증한 곽경택 감독(50)은 우리 영화계에 보배 같은 존재다.

‘극비수사’는 1978년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실제 사건, 사주로 유괴된 아이를 찾은 형사 공길용(김윤석)과 도사 김중산(유해진)의 33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곽감독은 당시 시대상과 향토색을 제대로 살리면서 수사물 특유의 재미,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터뷰 장소인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기자를 맞은 곽감독은 우연한 기회로 영화의 소재를 찾은 에피소드부터 털어놓았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전작들 시나리오 작업할 때 다음 작품 소재를 찾고 있었는데 공길용 형사를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선생님은 부산에서 공직 생활 마치고 제주도에서 살고 계셨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괴사건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때 김중산 도사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됐어요. 령에 관한 부분은 제가 두 번째 작품 ‘닥터K'에서 다뤄 관심이 많았는데 형사와 도사의 합작 수사라는 점이 정말 매력적으로 들리더라고요.”

‘극비수사’는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 김윤석과 유해진이 빚어내는 케미스트리(화학작용)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일반적인 수사물에 나오는 정의감 넘치는 영웅형 인물들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이를 찾는 모습이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곽감독은 두 사람의 연기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을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어요. 김윤석씨한테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다행히 재미있게 읽어 생각보다 빨리 긍정적인 답이 왔어요. 중산 캐스팅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해진씨는 서민적인 외모가 마음을 이끌었어요. 촬영 내내 두 사람에게 주문을 한 게 별로 없어요. 윤석씨는 정말 촬영 전 ABC를 다 준비해 오더라고요. 제가 디렉션을 줄게 거의 없었을 정도예요. 해진씨는 초반 어려운 감정신을 한번에 해내는 걸 보니 믿음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믿고 맡겼죠. 두 배우에게 고마운 게 정말 많아요.”

곽감독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완벽한 조연 캐스팅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 실력파 연기자들을 적재적소를 배치해 영화를 더욱 생동감 넘치게 만든다. ‘극비수사’에서도 낯설지만 신선한 얼굴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곽감독 영화를 통해 서태화 김광규 등 좋은 배우들이 많이 배출됐다. 캐스팅 기준은 뭘까?

“조연급 배우들 중 기존 연기자들은 넘 소진된 느낌이에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눈빛을 잃어버리면 쓰지 않아요. 그렇다고 보조출연자를 연습시켜 출연시키는 건 시간이 많이 드니 오디션을 정말 세게 보는 편이에요. 딸이 유괴된 은주 엄마로 등장한 이정은씨(배우 고창석 부인)는 영화를 위해 살을 빼 거의 40킬로그램까지 갔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유반장 역을 맡은 장명갑씨는 부산에서 연극을 하시는 분인데 드라마 ‘친구’ 때 처음 만났어요. 신선함이 아직 살아 있어 또 출연시켰습니다.”

곽감독은 영화에 대한 호평에 감개가 무량한 표정이었다. 전작 ‘통증’ ‘미운 오리 새끼’는 영화적 평가가 좋있지만 흥행이 아쉬웠고 ‘친구2’는 흥행이 됐지만 영화 완성도에 대한 따끔한 지적을 들었다. 그러나 ‘극비수사’는 완성도와 흥행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부진의 늪에 빠졌던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극비수사’ 이후 ‘연평해전’이 흥행세를 이어받으며 오랜만에 한국영화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마지막으로 손을 보면서 욕은 먹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정도로 칭찬을 받을지는 생각을 못했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많이들 한국 영화의 위기를 제기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더 기쁩니다. 사실 최근 우리 영화계는 완성도보다 배급의 파과력이 기준이 되다보니 영화 한편을 보면서 포만감이 느껴지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포만감이 줄어드니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줄어들고요. 감독의 한 사람으로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비수사’의 홍보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서도 곽감독은 벌써 차기작 준비에 한창이다. 이미 시나리오 작업은 상당수 진척되었고 올해 안에 촬영이 들어갈 예정이다. 이외에도 개발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상당수다. 끊임없이 샘솟는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부터 영화를 안 찍고 있으면 왠지 불안해요. 도태되는 것 같고. 이런 습관이 남아있기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작사는 오래전에 폐업했어요. 경영은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영화만 만들고 싶어요. 많은 감독들이 투자사에 있는 젊은 친구들 앞에서 PT를 하는 걸 꺼려하더라고요. 그러나 전 제 자신의 인격에 대한 PT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PT니 상관없습니다. 70대가 되더라도 20대 초반 경영진 앞에서 PT를 할 자신이 있어요. 그만큼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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