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전경. 사진=삼성물산 제공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삼성물산이 최근 주택 시장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2~3년간 아파트 공급에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던 삼성물산은 다시금 ‘래미안’ 브랜드를 앞세워 과거와 같이 아파트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일부 브랜드 선호도 조사서 래미안이 왕좌 자리 내줘

21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부동산 앱인 ‘다방’이 발표한 2020년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설문조사에서 삼성물산의 래미안은 1위 GS건설의 ‘자이’와 2위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에 밀려 3위를 차지했다.

국내 1위 기업이라는 ‘삼성’의 명성에 걸맞게 삼성물산의 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은 2000년 출시 이후 근 이십년간 거의 모든 기관의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부동의 1위 명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2017년부터 부동산114나 브랜드스탁 등 일부 조사 기관의 순위에서 자이가 래미안을 제치고 1위에 오르는 변화가 일어났다.

2017년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기관의 조사에서 부동의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1위를 휩쓸던 삼성물산 입장에서 최근 2~3년간 래미안이 1위에 위치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계속적으로 나온 것은 ‘적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철옹성 같은 래미안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랫동안 침체됐던 부동산 시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4년 최경환 부총리의 ‘빚내서 집 사라’ 발언과 맞물려 주택 경기 부양 정책에 나섰고,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주택시장은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대형 건설사들도 2010년대 초반 중동을 중심으로 한 해외 건설 시장에서 수주를 따내기 위해 최고가 공사비를 해외 발주처에 제시하는 ‘묻지마 수주’로 지나친 출혈 경쟁을 벌이다 실적이 크게 악화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부동산 부양 정책에 호응하듯이 대형 건설사들은 2014~2015년부터 리스크가 큰 해외 시장 비중을 줄이고, 분양금 회수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 확보가 가능한 국내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아파트 분양에 나섰다.

삼성물산이 2015년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된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통합 재건축)’ 조감도. 사진=삼성물산 제공
◇2015년부터 래미안은 주택 사업 수주 ‘정중동’

이와 달리 오히려 삼성물산은 2015년부터 국내 주택 시장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삼성물산은 2015년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통합 재건축 수주권(래미안 원베일리)을 따냈지만 같은 해 서초 무지개 아파트 재건축 수주전에선 GS건설과 수주 경쟁에서 패해 해당 아파트가 ‘서초그랑자이’로 재건축 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서초동 삼성 타운 인근의 서초 우성1·2·3차와 신동아·무지개를 포함한 5개 단지를 한꺼번에 재건축해 ‘독수리 5형제 래미안 단지’로 건설할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서초 우성 1·2·3차의 경우 삼성물산이 수주를 따내 나란히 래미안 리더스원,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S,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로 재건축 됐지만 승리를 자신하던 무지개 아파트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삼성물산은 서초신동아 재건축 수주전에서도 발을 뺐고, 수주권은 대림산업에게 돌아갔다.

여기에 삼성 오너가 개인 신변 문제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역시 2015년부터 격변을 맞았다. 2015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던 해다.

당시 무리한 삼성물산 지분 구조 정리 작업으로 삼성 오너 일가에 대한 국민감정이 나빠졌고,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민원이 많은 주택사업 부분을 축소할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현실화 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삼성물산이 래미안 브랜드를 중견 건설사인 KCC건설에 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마저 2017년 국정 농단 사태로 구속되면서 삼성물산은 사실상 B2C 시장인 국내 주택 시장에서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실제로 2015년 이후로 올해 초까지 삼성물산은 재건축 시장에서 아예 신규 수주를 중단했다.

이처럼 분양 물량을 크게 줄이면서 대중을 상대로 한 래미안 아파트의 노출도 역시 확연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모든 기관의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던 래미안의 위치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삼성물산이 재건축 수주를 따낸 신반포15차 재건축 단지인 ‘래미안 원 펜타스’ 문주 전경. 사진=삼성물산 제공
◇5년만에 재건축시장 복귀전인 신반포15차서 승리…여세 몰아 반포3주구 도전

그러다가 이재용 부회장이 2018년 출소를 한 데 이어 삼성물산의 지배구조 재편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공교롭게도 올해부터 삼성물산은 국내 주택 시장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 4월 신반포15차 수주전에 뛰어들며 5년만에 재건축 시장 귀환을 선언한 삼성물산은 지난달 23일 시공사 선정 조합원 투표 결과 126표를 득표하며 22표에 그친 호반건설과 18표의 대림산업을 압도했다.

‘래미안 원 펜타스’로 재건축 되는 신반포15차에서 삼성물산의 압승을 통해 여전히 반포 재건축 시장에서 ‘래미안’의 선호도가 압도적이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조사 기관의 브랜드 선호도 조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조합원의 시공사 선정 결과는 실제 자기 재산의 가치를 끌어올려 줄 수 있는 건설사 브랜드를 결정하는 바로미터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의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가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점에서 리서치 기관의 브랜드 선호도 조사 결과보다 조합원 시공사 선정 투표 결과가 브랜드 선호도 우열을 비교하는데 있어서는 더 의미가 클 수 있다.

여세를 몰아 삼성물산은 최근 반포3주구 재건축에도 뛰어들었다. 현재 진행 중인 반포3주구 수주전에서도 삼성물산의 자신감은 드러난다.

경쟁사인 대우건설은 새 재건축 단지 네이밍으로 ‘트릴리언트 반포’를 제안했다. 삼성물산과의 수주 경쟁에 뛰어들면서 대우건설의 원래 브랜드인 ‘푸르지오’를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

이에 반해 삼성물산은 래미안은 재건축 단지명을 ‘구반포 프레스티지 바이 래미안’로 발표하며 원 브랜드인 래미안을 고수했다.

이는 반포 지역의 래미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만큼, 굳이 대우건설과 같이 아예 새로운 ‘제3의 브랜드’를 새로 만들 필요 없이 기존의 래미안 브랜드만으로도 수주를 따내는데 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나온 결정으로 보인다.

현재 재건축 시공사 수주전이 진행 중인 반포3주구 사업장에서 삼성물산이 제안한 단지명인 ‘구반포 프레스티지 바이 래미안’ 투시도 전경. 사진=삼성물산 제공
특히 기존의 래미안 브랜드 아파트가 래미안이 주로 단지명 앞에 위치했다면 이번 반포3주구 사업장의 경우 래미안 브랜드를 단지명 앞에 위치시키지 않고, 단지명 끝에 바이 래미안으로 달면서 역설적으로 래미안 브랜드를 더욱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최근 5년간 재건축 시장에서 신규 래미안 브랜드 아파트가 나오지 않은 만큼, ‘바이(by) 래미안=래미안에 의해 지어졌다’는 신호를 삼성물산이 시장에 더 확실히 각인시키고자 하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래미안은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조사 기관 중에서 가장 큰 국가고객만족도조사와 능률협회 조사에서 올해까지 20년간 연속 1위를 지켜오고 있는 국내 최고의 아파트 브랜드”라며 “앞으로도 삼성물산은 강남 재건축 시장과 같이 철저하게 수익성 높은 지역에만 아파트를 공급하는 선별 수주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을 사로잡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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