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책임은 이사회, 주총에서 결정될 문제…금융사에게만 100% 책임은 과하다"

"금감원, 사전에 제도 정비못한 책임…당국이 CEO 인사 영향시 '관치금융' 나쁜 선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해외연계금리 파생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최고경영진(CEO)에게 중징계를 내린 조치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3일 윤석헌 금감원장 결재를 통해 DLF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에 대해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 처분을 확정했다. 또 다른 DLF 판매 은행인 하나은행에 대해서도 상품 판매 당시 하나은행장을 맡고 있던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 대해 같은 중징계 조치를 했다.

금융당국이 중징계 이상의 조치를 내릴 경우 해당 임원은 연임이 불가능해지고, 제재 확정 이후 3년간 금융권 취업이 불가능해진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실상 연임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이번 금감원의 중징계로 연임이 불투명해졌다. 손 회장은 지난 6일 회장 임기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자진 사퇴’가 아닌,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 등으로 대응할 것을 예고했다.

◇ 금감원, 손 회장 ‘사퇴’ 압박 위해 1년전 비번 도용 사건도 들쳐내

금감원은 우리은행 영업점 직원이 고객의 휴면계좌 약 2만3000개의 인터넷·모바일뱅킹 비밀번호를 무단 변경한 사건을 내달 제재심의위원회에 올리기로 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우리은행 고객 비번도용 사건은 2018년 7월에 벌어진 일로, 일부 직원이 당시 시점에서 1년 이상 거래가 없는 휴면계좌의 비밀번호를 임의로 활성화시켜 새로운 거래실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벌인 일이다.

우리은행은 자체 감사를 통해 이를 적발하고 같은 해 10월 금감원에 자진 통보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금감원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던 금감원이 우리은행의 자진 통보 시점에서 1년 이상이 지난 올 2월에 갑자기 이를 다시 문제 삼아 제심위를 연 것은 다분히 손 회장의 ‘자진사퇴’를 이끌어 내기 위한 ‘망신주기’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금감원은 라임펀드 손실 사태 건과 관련해서도 우리은행을 겨누고 있다.

금감원은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판매액이 3259억원인 우리은행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고, 14일 실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금감원이 실사 결과 발표와 동시에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일정 정도의 징계 조치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문제는 금감원 역시 비번도용이나 DLF·라임 사태 등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데 있다.

문제가 된 상품을 판매한 금융사들 외에도 감독 당국인 금감원 또한 손실 발생 가능성이 큰 고수익 금융상품에 대한 안전장치나 리스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놓지 않은 채 금융사에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오버'라는 지적이다.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고, 만만한 은행에만 책임을 떠 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얘기다. 은행장에게 연임 불가의 중징계를 내린다면, 윤석헌 금감원장도 물러나는 게 순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금융당국 제재, CEO 인사에 영향 줘선 안 돼…임원 인사는 이사회 권한”

윤석헌 금감원장이 DLF 사태와 관련해서 전결 처리로 금융사 CEO에 대한 중징계를 내린 것도 '권한 남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금감원은 DLF 사태에 대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의 징계를 위해 이들을 '관리자→행위자'로 바꾸고,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을 적용해 중징계를 내렸다.

내년 3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에 이어 ‘1순위’ 하나금융 회장 후보로 꼽혔던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도 차기 하나금융 회장직에 도전하기 위한 입지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지배구조법의 경우 중징계인 문책경고까지 금감원장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윤석헌 금감원장이 이를 이용해 손 회장과 함 부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고 볼수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상급기관이자 감독업무위탁자인 금융위원회가 이번 DLF 사태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에 의해 사실상 소외됐다는 ‘금융위 패싱’ 논란도 일고 있다.

지난 10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금융위가 DLF 사태에서 ‘패싱’됐다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윤석헌 금감원장의 ‘파워'에 금융사는 꼼짝 못하고 있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간의 불협화음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게 금융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 등 금융사 인사 문제는 이사회 이사들과 주주들의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문제”라며 “DLF 사태를 이유로 금감원이 중징계를 내린 결과로 손 회장의 연임이 불가능해진다면 ‘관치금융’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금융 감독당국이 해야 할 일은 리스크가 높은 금융상품에 대해 철저한 안정 장치 마련과 피해를 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책 마련”이라며 “금감원이 금융사 CEO의 인사권을 빌미 삼아 징계를 일삼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이어 “DLF 등으로 손실이 발생했다고 해서 금융사로 하여금 특정 상품을 판매 금지하는 것도 금융감독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라며 “금감원이 해야 할 일은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성을 최대한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사진 왼쪽)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DLF 판매 당시 하나은행장)이 머리를 맞댄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도 “금감원은 감독 당국으로서 사전에 미리 제도를 정비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DLF나 라임펀드 등은 고수익을 얻는 대신, 소비자 역시 손실 발생 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안고 투자에 들어가는 상품”이라며 “이처럼 리스크가 높은 상품에서 손실이 났다고 책임 소재를 100% 금융사 측에 돌려 중징계를 내린 금감원의 조치는 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특히 금감원의 이번 조치로 은행 등이 ‘안전지상주의’ 일변도로 나아가 고객들에게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경영행보가 위축될까 우려된다”며 “이러한 금감원의 중징계로 인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폭넓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소비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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