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리딩뱅크 유지’나 ‘1등 은행 수성’ 같은 경쟁은행 간 실적 싸움 탈피

DLF 사태 영향 실적 위주 경쟁 기조서 탈피 '고객 중심 경영'으로 자기반성

‘비대면 서비스’ 대세, 지점·직원 수 감축 ‘긴축 경영’…은행권 ‘경영 화두’

‘1등 은행’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수장들. 허인 국민은행장(사진 왼쪽)과 진옥동 신한은행장. 사진=각 사 제공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은행권이 2020년을 맞아 ‘고객 보호’를 은행의 최우선 경영 기조로 내걸었다.

그간 ‘압도적 리딩뱅크 지위 유지’나 ‘1등 은행 수성’과 같은 경쟁은행 간 실적 싸움에서 탈피해 소비자 중심의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는 지난해 은행권을 뒤흔든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인한 천문학적 손실을 고객들에게 입힌 여파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 간 실적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시중은행들이 DLF를 무리하게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사태가 일어난 데 대한 반성인 셈이다.

여기에 은행 서비스가 기존의 전통적인 지점 창구를 통한 대면 서비스에서 갈수록 모바일을 통한 비대면 서비스로 옮겨가면서 지점 수와 직원 고용을 최대한 ‘타이트’하게 운영하는 긴축 경영도 올해 은행권 경영의 주요 화두가 될 전망이다.

◇ 국민은행 “은행 평가 ‘윤리경영’으로” vs 신한은행 “1등 은행, 수익 규모로 정해지지 않아”

13일 은행권 등에 따르면 그간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1등 은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던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2020년 신년을 맞아 나란히 실적 위주 경쟁이 아닌 고객 중심 경영을 신년 경영 모토로 내걸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서로 상대방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나란히 경쟁 은행을 겨냥해 ‘압도적 격차’ 등의 자극적인 용어를 써가며 ‘리딩뱅크 경쟁’을 2019년 경영 기조로 내세웠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2019년 연초 “국민은행은 피, 땀, 눈물로 1등 은행 자리를 되찾았다”며 “크고 강한 국민은행을 만들어 경쟁자와의 ‘압도적인 격차’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윤 회장은 “올해 KB금융그룹을 압도적인 리딩 금융그룹으로 만들겠다”며 “금융혁신을 주도하는 1위 금융그룹으로 위상을 공고히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윤 회장은 KB금융그룹 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은행에도 ‘압도적인 리딩뱅크’를 주문하며 국민은행이 1등 은행 경쟁에서 앞서나가는데 있어 가장 큰 키를 쥐고 있음을 강조했다.

신한은행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해 연초 당시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은 “수이치온(秀易治溫)의 의미를 마음에 품고 ‘초격차 리딩뱅크’를 향해 힘차게 전진해 주시기를 당부한다”고 주문했다.

2017년 국민은행에 내준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하는 것이 2019년 가장 중요한 목표임을 내세운 것이다.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전경. 사진=신한은행 제공
이에 반해 2020년 올해 연초 두 은행들의 경영 기조는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올해 은행 영업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고객중심의 정도영업 정착’을 내세웠다. 지난해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한 ‘압도적 격차’나 ‘1등 은행’ 등과 같이 경쟁은행을 겨냥한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를 위해 허인 행장은 은행 성과 평가 기준을 고객 중심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허 행장은 “2020년 은행 성과평가 기준을 크게 바꿔 고객의 자산을 지키고 늘려 드리는 ‘고객가치’ 부문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윤리경영’ 부문의 평가 비중을 큰 폭으로 상향했다”고 설명했다.

허 행장은 “이렇게 과거 수십 년간 운영해온 은행 평가체계의 근간에 변화를 준 이유는 고객의 선택이 생존을 좌우하기 때문”이라며 ‘고객 만족’이 올해 경영 기조의 최우선임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진옥동 신한은행장도 올해 경영 기조에서 ‘리딩뱅크’ 얘기가 빠지고 그 자리에 ‘고객’이 우선시됐다.

진 행장은 “1등 기업, 좋은 회사에 대한 기준이 변했다”며 “수익이나 규모의 크기가 아닌 착한 기업, 차별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 진정한 1등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리딩뱅크 경쟁’을 가장 먼저 내세우던 경영 기조가 확연히 바뀐 것이다.

진 행장은 “미국의 경우 과거에는 기업의 존재 목적에 대해 '주주이익 극대화'만 강조했지만 오늘날엔 첫 번째가 고객이고, 다음 순서로 직원, 거래기업, 지역사회, 주주를 언급된다”며 “신한은행의 경영이념도 이와 많은 부분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진 행장은 올해 신한은행의 최우선 경영기조로 ‘고객’을 내세웠다.

진 행장은 “가장 먼저, 고객이 중심인 은행이 돼야 한다”며 “최상의 서비스로 고객 서비스 개념을 다시 한 번 가다듬고, 금융소비자보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 DLF 사태 영향 실적 위주 경쟁 기조 벗어나 고객 중심 경영으로 자기 반성 나서

이처럼 1등 은행 자리를 놓고 매년 연초부터 상대방을 겨냥해 자극적인 어조로 새해 경영 기조를 내세웠던 대형 은행들이 2020년에 분위기가 완전 새롭게 바뀐 것은 지난해 은행권을 뒤흔든 DLF 사태에 따른 은행권의 자기반성이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DLF 불완전판매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손실을 안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은행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다.

‘DLF 사태’의 주범인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수장들. 지성규 하나은행장(사진 왼쪽)과 손태승 우리은행장. 사진=각 사 제공
1등 은행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 이번 DLF 판매로 인한 고객 손실 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DLF 판매 자체에 대해선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이들 은행들도 일제히 고객 중심 경영을 올해 경영 기조로 내세웠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치매성 질병을 앓고 있는 80대 고령자에게도 DLF를 판매하는 등 불완전판매를 한 것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대형은행 간 과열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중은행은 사기업이지만 예·적금 등 국민 개개인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인 만큼, 안정적인 경영도 중시되는 등 공적인 가치를 일반 사기업보다 사회적으로 더욱 요구받는다.

그러나 은행들이 실적 증대를 통해 은행 간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손실 위험성이 높은 금융상품을 무턱대로 고객들에게 판매, 이번 DLF 손실 사태가 일어나자 은행들의 영업 관행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이번 DLF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경우, 올해 경영기조를 공식화 하는 행장 명의의 은행 별도 신년사를 생략하고, 모그룹인 우리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신년사로 은행 신년사를 대신했다.

DLF 불완전판매 사태에 대한 ‘원죄’를 짊어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에는 고객들의 항의가 쏟아질 수 있어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형국이다.

◇ ‘비대면 서비스’ 대세 속 지점 수·직원 수 줄이는 ‘긴축 경영’…올해 은행권 ‘경영 화두’

한편, ‘은행 간 경쟁’이 아닌 ‘고객 중심 경영’에 이은 올해 또 다른 은행권 경영 화두는 ‘긴축 경영’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통화 정책이 저금리 기조를 보이면서 은행권의 주 수입원인 예대 마진에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 하다는 것이 올해 주요 은행장들의 전망이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앞으로 저금리, 저성장의 터널이 길어지고 금융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옥동 신한은행장도 올해 전망에 대해 “저금리/저성장 기조 속에서 은행업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고 우려했다.

핀테크 활성화 및 인터넷은행의 성장세 등으로 모바일 금융 거래가 더욱 활발해 지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은행 창구 영업의 역할이 축소되는 현상도 올해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허 행장은 “ 제3 인터넷 뱅크 같은 새로운 경쟁자의 지속적 출현, 그리고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같은 경쟁환경의 도래는 은행업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근본적인 혁신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은행권은 지점 수와 직원 수를 ‘컴팩트 화(化)’ 하는 비용절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허인 국민은행장도 “극한의 업무 효율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비용구조 개선 노력 등은 이제 더 이상 ‘특단의 조치’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적정 수익성이 확보돼야 점포망과 인력규모 유지 등이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전경. 사진=KB국민은행 제공
이는 올 한 해가 ‘긴축 경영’의 기조가 지속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특히 은행 수익성 개선에 있어서 인원 수 감축과 지점 통폐합 등 ‘긴축 경영’ 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많지 않다.

이에 대해 조보람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해외 투자자 및 주주들은 한국 은행업종의 비용구조를 장기간의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지적해왔다”며 “유연성이 적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나라 은행들에 대한 외부의 평가였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그러나 2013~2014년부터 저효율 지점 통폐합 및 ATM 축소, 희망퇴직 단행 등 은행들의 비용절감 노력이 시작됐다”며 “이는 구조적 한계라는 국내 은행권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으며 향후 개선에 대한 희망 및 방향성을 제시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올 한해 은행권은 ‘고객 중심 경영’과 ‘긴축 경영’이라는 양날개의 경영 기조로 날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허인 국민은행장도 “극한의 업무 효율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비용구조 개선 노력 등은 이제 더 이상 ‘특단의 조치’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적정 수익성이 확보돼야 점포망과 인력규모 유지 등이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올 한 해 은행권은 ‘고객 중심 경영’과 ‘긴축 경영’의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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