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방만경영’인가, 키움투자의 ‘투자판단 미스’였나

키움투자자산운용의 투자금 회수를 둘러싼 한국전력과의 분쟁이 치열한 법정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

지난 2016년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전력공사의 석탄가스화 사업에 대한 방만경영 의혹이 여전히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당시 석탄가스화 사업 추진의 일환으로 한국전력공사의 합작사로 설립된 ㈜켑코우데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한 유상증자를 실행했는데, 사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증자에 참여한 투자사들이 금전적 손실과 함께 사기 피해를 호소한 바 있다. 이후 투자사 중 한 곳이었던 키움투자자산운용(대표 김성훈)은 한국전력공사 측을 상대로 투자금 회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은 당시 자사의 매우 아쉬운 투자 판단이 투자 실패로 이어졌다는 사실 역시 드러남과 동시에 1심 패소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정부는 국내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G7) 수준으로 진입시킨다는 취지의 선도기술개발사업인 일명 ‘G7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G7 프로젝트는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이어졌는데, 당시 정부는 이 프로젝트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석탄가스화 복합발전(Integrated Gasification Combine CycleoIGCC)’ 개발을 채택했다.

이는 석탄가스화 사업으로도 불리며 석탄을 고압ㆍ고열로 기체화함으로써 생성되는 석탄가스를 통해 전력과 합성천연가스를 얻고, 석탄 연료에 따른 온실가스를 포집·재활용할 수 있다.

석탄가스화 사업을 통한 전력생산비용 절감 및 온실가스 감축 등의 효과로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이 개발돼 추진되고 있었다.

김영삼 정부는 석탄가스화 사업의 G7 프로젝트 과제 채택에 이어, 한국전력공사(이하 한국전력)를 해당 사업의 주개발자로 참여시켰다. 이 석탄가스화 사업은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었던 만큼, 당시 정치권과 산업계, 언론 역시 추진 경과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관련 정책이 이어졌는데, 당시 한국전력은 유럽 회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해외기술을 도입해 석탄가스화 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그러면서 지난 2011년 4월 한국전력과 독일의 우데(UHDE GMBH)사는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7월 양사는 ㈜켑코우데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한국전력은 켑코우데의 설립에 약 114억원을 출자했고, 약 45%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켑코우데는 국내외 석탄가스화 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자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공정설계와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수수료를 받아 이익을 창출하는 수익구조를 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석탄가스화 사업의 진전은 지속됐다. 지난 2013년 말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의 공동연구 추진단 구성 용역수행 지시에 따라 켑코우데와 포스코, 남부발전 등의 회사가 석탄-합성천연가스 품질기준 공동연구를 완료했다.

또 2014년 말과 2015년 초, 정부는 인도와 필리핀 등의 국가와 정상회담을 가지며 양국 간 석탄가스화 사업 협력을 제안하는 등 해외 석탄가스화 사업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였다.

마치 ‘탄탄대로’와도 같았던 석탄가스화 사업에는 지난 2015년 여름 오늘날의 잡음의 발단이 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켑코우데는 라이선스 선급금과 회사운영비 등으로 출자금이 소진돼 가자, 금융기관에서 약 22억원을 차입해 운영자금의 조달에 나섰다.

사실 켑코우데는 설립 이후 IGCC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해 사업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부채가 늘어나자 2015년 초 주주사를 대상으로 4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세웠지만, 이마저도 산자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런데 당시 일부 투자사들을 중심으로 켑코우데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협의를 해왔는데, 키움투자자산운용도 이들 중 하나였다.

물론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은 투자에 앞서 켑코우데의 석탄가스화 기술에 대해 현장 실사를 통한 사업평가와 동시에 업무계획과 사업설명 등의 철저한 검토를 거쳤다.

이어 2015년 8월 키움투자산운용 측은 켑코우데와 사이에 21억 4000여만원 규모의 신주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켑코우데는 유상증자금으로 은행 차입금을 상환했고 나머지 자금을 다시 회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

정치권 지원사격에도… ‘투자판단 미스’, 패소 원인 됐나

2015년 말 켑코우데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사들에게 다소 불편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전력이 2015년 12월 29일자로 석탄가스화 사업부를 폐지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켑코우데에 파견 및 겸직 근무를 하고 있던 한국전력 소속 직원들이 복귀했고, 석탄가스 사업과 관련된 부서는 축소·변경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업계에서 잡음이 일자 결국 한국전력 측은 켑코우데의 운영 방안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밝혔다.

당시 한국전력 측은 켑코우데가 추진하던 국내 사업의 잇단 중단 소식과 함께, 이는 국제 화석연료 가격의 하락에 따른 석탄가스화 사업의 경제성 저하 등 부정적 시장 전망 그리고 감사원의 켑코우데의 수익성에 대한 회의적 판단, 산자부의 한국전력에 대한 국내 석탄가스화 사업 추진의 반대 등이 원인이 됐다는 취지의 검토 결과를 내놨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한국전력 측이 키움투자자산운용와 켑코우데 간 신주인수계약 당시 석탄가스화 사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숨기려 했다거나 키움투자 측을 기망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연합)

이후 2016년 6월 한국전력 측이 석탄가스화 사업에 대한 후속조치로 켑코우데에 대한 일시적 휴면화 및 긴축경영 등 선언하자, 유상증자에 투자한 자금을 날려버릴 위기를 직감한 투자사들은 단순한 불편한 기색을 넘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키움투자자산운용은 한국전력 측에 켑코우데의 현안에 대한 재무적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은 투자에 나설 당시 한국전력 및 켑코우데 측으로부터 석탄가스화 사업을 문제없이 지속적으로 영위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해당 사업이 주무부서의 일부 반대 의견으로 전체적인 사업 계획마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 사업설명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한국전력 측은 “합리적 경영방안을 강구 중에 있으며 사업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취지의 막연한 답변을 내놓는가 하면, 켑코우데 측은 한국전력의 결정사항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은 켑코우데에 신주인수계약을 취소한다고 통지했다. 이어 한국전력과 켑코우데를 상대로 해당 계약으로 납입한 21억 4000여만원을 반환하는 동시에 공동불법행위 등으로 인해 자사가 입은 손해에 준하는 금액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은 재판 과정에서 신주인수계약 당시 산자부의 반대로 인해 켑코우데가 석탄가스화 사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력 측이 이를 숨긴 채 산자부의 동의 및 지원을 받아 사업이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자사를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이 주고받은 항의와 해명은 법적분쟁으로 번졌고,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당시 곽대훈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국전력의 방만 경영과 산자부의 일관성 없는 에너지 정책이 민간투자자들에 큰 손실을 끼쳤음에도 서로가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곽 의원은 “공공기관이 민간투자가에게 진실을 숨긴 채 투자를 받자마자 회사 문을 닫아 버렸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며 “국정감사를 통해 민간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상하고 한전의 재발방지 약속과 성과급 반납 등 후속조치를 이끌어 내겠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곽 의원의 의지와는 달리 지난해 11월 법원은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의 청구사항 모두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한국전력이나 켑코우데가 신주인수계약 당시 석탄가스화 사업의 시장성이 악화되거나 산자부 등이 사업 추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숨기는 등 키움투자자산운용을 기망하려는 의도의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은 신주인수계약이 이뤄지기 전 석탄가스화 사업에 대한 산자부의 의견을 수렴할 기회가 있었고, 해당 사업에 대한 산자부의 입장을 한국전력 측으로부터 전해 듣고 충분히 인지한 채 투자사들과 대응책을 논의하기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석탄가스화 관련 사업이 현재까지도 국내에서 진행 중이며 켑코우데 역시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 등으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거나 지난해 초 남해 IGCC 타당성 조사용역 관련 유럽 현장실사를 다녀오는 등 석탄가스화 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시도가 지속되고 있는 점에 비춰봤을 때 한국전력과 켑코우데가 투자사들을 기망할 의도가 없었다고 바라봤다.

다시 말해 이 사건 1심 재판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원인이 한국전력 및 켑코우데의 방만 경영 또는 산자부의 오락가락한 정책의 문제뿐만 아니라,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의 투자 판단의 부족에 있었을 가능성 역시 높다는 의미였다.

투자자산 전문가들이 모인 회사로서 다소 굴욕적인 판결에 키움투자자산운용 측은 곧바로 항소했고, 현재 이 사건 항소심 재판이 더욱 치열한 법정공방으로 진행되면서 향후 결과에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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