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주민 협상 진행 중…임시처리장 확충이 당면 과제”

박종운 동국대 교수 “수용성도 없고 이미 기술적으로 늦어”

방사능 폐기물이 든 드럼. 사진=방사능폐기물관리공단 제공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을 마련하기 위해 겪는 산고가 길어지고 있다. 산업부는 본격적인 부지확보에 나서지 못한 채 관리정책 마련에 급급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이 바로 영구저장시설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15일 파악됐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열과 방사능준위가 높은 폐기물을 말한다.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일종으로 한국의 경우 사용후 핵연료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원자력발전에 쓰이는 우라늄 핵연료는 4년 정도 사용하면 더 이상 발전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연료로 바꿔줘야 한다. 이때 교체돼 나온 우라늄 핵연료를 사용후 핵연료라고 부르는데 이는 높은 열과 방사능을 가지는 물질로 바뀌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특별히 관리해야한다.

사용후 핵연료가 대부분인 고준위 폐기물은 반감기가 20년 이상인 알파선을 방출하는 핵종이기 때문에 500m 이상 지하 깊은 곳에 묻어 처분해야 한다.

핵연료 손상기간 중에 방생된 폐수지나 폐필터 등 중준위 폐기물은 100m 지하에 처분하고 중준위에 포함되지 않은 잡고체, 폐수지, 폐필터 등 저준위 폐기물은 지하 깊은 곳이나 지상시설에 처분하면 된다.

그만큼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이 위험하며 이를 처분하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장이 꼭 필요함을 의미한다.

산업부에 따르면 사용후 핵연료는 현재 1만5000톤 가량 존재하며 2030년 3만톤 수준으로 증가 한다.

이인호 산업부 차관은 작년 8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사용후 핵연료는 사람과 10만년 정도 격리가 필요한데 현재 1만5000톤 수준에서 2030년 3만톤 수준으로 증가해 관리 비용이 엄청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밝혀 탈원전 정책의 당위성 가운데 하나를 사용후핵연료 관리비용 증가에서 찾았다.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의 외부 모습. 사진=원자력환경공단 제공

◇ 늘어나는 사용후 핵연료에서 탈원전 이유 찾은 산업부, 고준위 방폐장 마련에 ‘안간힘’

산업부는 방사능폐기물관리기금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한 예산을 확보한 상태다.

산업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9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 방사능폐기물관리기금편에 따르면 내년 요구된 예산은 △사용후 핵연료 관리기반조성 30억3300만원 △방폐물 관리기술개발 56억4600만원 △원전해체 방폐물 안전 관리기술개발 35억9800만원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확보 18억원이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기반조성 사업은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수립, 관리현황 및 기술조사, 중간저장 기반구축, 영구처분 기반구축, 지식관리시스템 구축 사업 등 5개로 세분된다.

원자력환경안전공단이 수행하는 이들 사업은 고준위 방폐장이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크다는 이유로 보다 성과있게 추진하기를 요구받았다.

이 가운데 사용후 핵연료 관리현황과 기술조사 사업과 중간저장 기반구축, 지식관리시스템구축 사업은 2019년 대부분 마무리될 전망이다.

영구처분 기반구축 사업의 경우 통합관리시설 예비안전성 평가와 시각화 자료개발 사업비가 반영돼 1억2400만원 가량 증액돼 5억2800만원이 요구됐다.

특이할 점은 사용후 핵연료 관리방안 수립 예산이 전년에 이어 2019년에도 20억원이 요구됐다는 점이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를 위해 요구된 이 예산은 재검토 실행기구 운영에 3억7600만원, 이해관계자 논의체 운영에 14억7900만원, 기본계획작성 TF 운영에 1억4500만원을 요구해 사용후 핵연료 관리기반조성 사업비의 67% 가량을 차지한다.

산업부가 56억4600만원을 요구한 방폐물 관리기술개발사업은 중심사업이 사용후핵연료관리기술개발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고준위 방폐장 관련 예산으로 분류된다.

세목으로 5개 사업이 있는데 사용후 핵연료 저장용기 중성자 흡수소재 개발, 건조장치 개발, 대용량 중소로 사용후 핵연료 운반용기 개발 등이 진행된다.

원전해체 시 발생되는 다양한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사업인 원전해체 방폐물 안전 관리기술개발에도 35억9800만원이 요구됐다.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신사업으로 원전해체산업 육성을 앞세워 새로 마련된 이 사업은 2022년 고리1호기가 본격적으로 해체되며 발생할 다양한 원전해체 방폐물을 안전하게 처분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작년부터 진행된 사용후 핵연료 관리시설확보 사업에 산업부는 올해 1억8000만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작년 1월 정부가 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발표하며 2017~2021년 중에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절차에 착수하기로 결정한 뒤 마련된 이 사업은 부지적합성 조사방법 개발 용역에 1억7500만원, 자문에 500만원을 요구했다.

경주에 위치한 중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의 모습. 사진=원자력환경공단 제공
◇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 논의

산업부에 따르면 고준위 방폐장에 관한 논의는 2004년 12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53차 원자력위원회는 국민적 공감대에서 사용후 핵연료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의결했다.

2008년엔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이 제정됐으며 이듬해엔 방사성 폐기물 관리기금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설립됐다.

2011년 8월엔 사용후 핵연료 관리대안 수립과 로드맵 연구가 수행됐고 다음해 8월엔 사용후핵연료 정책 포럼 운영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이 있었다. 11월엔 2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공론화 계획을 의결했으며 2013년 10월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2015년 6월엔 사용후 핵연료 관리에 관한 권고안이 정부에 제출됐다. 2016년 7월엔 6차 원자력진흥위에서 고준위 방폐물관리 기본계획이 의결됐다.

고준위 방폐물관리 기본계획은 과학적인 부지조사와 민주적 방식에 의한 부지선정에 약 12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정했다.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 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시설을 하나의 부지에 단계적으로 확보해 나가겠다고 결정했다.

2016년 11월에 고준위 방폐물 관리절차법이 입법을 위해 국회에 제출됐고 2017년 1월엔 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이 발표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준위 방폐장 논의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2017년 5월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관련 논의를 민주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 준비단’을 올해 5월 11일 출범시켰다. 당초 9월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활동이 2개월 연장됐다.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에 대한 논의가 민주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문제는 시작된 지 14년이 흐른 지금에도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겉돌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꾸려져 주민 참여하에 운영되고 있다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 준비단’은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고준위 방폐장 재공론화를 수행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설치에 대한 주민 동의나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사업지 선정은 한참 뒤에 일어날 일이라고 산업부 관계자는 전했다.

산업부 원전환경과 관계자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 준비단의 활동을 비유하자만 조사하기 전에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 ‘조사 설계’하는 것”이고 밝혔다.

지하 사일로로 옮겨지는 방사능 폐기물. 사진=연합뉴스
◇ 지지부진한 고준위 방폐장 건설 논의, 한수원, 원자력환경공단 ‘각자도생’

사정이 이렇다보니 원전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원전 폐기물을 임시로 저장해오던 건식저장고를 하나 더 설립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월성원전은 중수로로 사용후 핵연료가 하루 단위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 관계자는 “급한 것은 월성원전”이라며 “월성원전 내에 임시저장고인 건식 사용후 핵연료 저장장치를 추가로 하나 더 짓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를 다루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상위부처에서 아직 결정된 바가 없으니 활동할 것이 없다는 논리다.

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산업부에서 재검토 준비단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원자력환경공단은 그 부분에 대해 관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월성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고가 미국처럼 영구 저장시설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 매체 C&EN에 따르면 폐기된 미국 원전들이 남긴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이 영구처분 장소가 없어 고준위 방폐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원전지역이 사실상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이 되고 있다.

우리가 건식저장고라고 부르는 캐니스터엔 가동중 혹은 폐기된 원전의 일차저장시설인 수조에서 보관하고 꺼낸 사용후 핵연료가 보관돼 있다.

미국의 경우 고준위 방폐장을 유카 산맥에 계획 중인데 주민수용성이 낮아 진행이 더디다. 원전사업자들은 불가피하게 캐니스터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는데 현재 추세를 반영하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캐니스터에 시멘트를 덧씌워 영구처리장화할 수 밖에 없다고 C&EN은 전했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창의융합공학부 원자력에너지전공)는 “현재 기술로는 선택지가 없는 데 공론화로 의견 모아봐야 결정할 게 없다. 공론화는 입시같이 정시냐 수시냐 그런 선택지가 있을 경우나 가능한 것이다. 좁은 땅에서 주민수용성도 없어 많이 늦었다고 본다”며 “고준위 폐기물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재검토한다며 대책을 내 놓지 못하는 한국의 원전 정책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고준위 방사능폐기물 해결책 없이 계속 원전을 짓고 실현성 없는 기술개발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대책은 현재 기술로 하는 것이니 막연한 미래기술로 하는 게 아니다.”며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실효성 있는 정책방향을 만들어 가이드할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의 전경. 사진=원자력환경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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