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한전 사장·정재훈 한수원 사장, 격전지인 사우디·체코 방문

한국, 미국과 원전 수출 실무그룹 구성 제3국 원전진출에 공동대응

한전이 UAE 바라카 지역에 건설완공한 원전.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한국의 원전수출 열기가 뜨겁다.

UAE 바라카에 원전을 건설완공한 한국전력의 김종갑 사장이 지난 2일 사우디를 방문해 알 술탄 사우디아라비아 왕립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장을 직접 면담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 16일 체코 프라하에 도착해 체코 전력공사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17일 신규 원전 예정지인 두코바니로 이동해 부지를 둘러보며 신규 원전 개발대표와 만났다.

한국은 에너지전환 정책을 펼치며 해외 시장을 국내 원전 산업의 돌파구로 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발전설비가 과다 건설됐다며 작년 말 8차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며 신규 원전을 건설할 예정이었던 신한울 3·4호기, 영덕 천지 1·2호기, 삼척 원전 1·2호기 건설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던 7월 24일 전력예비율이 7.4%에 달해 산업부의 결정이 옳았음을 입증했지만 한국 원전산업의 구성원인 대기업과 중견, 중소기업은 유력한 판로가 끊어져 경영난에 봉착한 상황이다.

산업부가 원전 해체 사업 육성, 업종 전환 지원 정책을 내놓았지만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에 원전 해외수출이 난관에 봉착한 국내 원전 을 달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종갑 한전 사장과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사우디로, 체코로의 원거리 출장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김종갑 한전 사장(가운데)과 태종훈 한전 해외원전사업처장(왼쪽)이 알술탄 왕립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 원장(오른쪽)과 사우디 신규원전 사업수주를 위해 양사간 협력방안을 협의하는 모습. 사진=한전 제공

◇ 글로벌 원전 시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당분간 과점

원전은 수주가 확정되면 조 단위의 사업이 이어진다. 단지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만 끝나지 않고 원자력 발전소 유지보수 서비스, 원자력 연료 조달, 기술인력 교육, 원자력 규제 관련 컨설팅 등도 팩키지로 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프랑스·한국 등이 원전 수출에 매달려 온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강자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러시아는 외교력을 바탕으로 헝가리·방글라데시·인도·터키 등에 원전을 수출했고 중국은 내수 시장 중심으로 원전산업을 육성 중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4월 터키에 200억달러(22조4940억원) 규모의 원전 건설을 시작했다. 2023년에 완공 예정인 터키의 원전은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인 로자톰이 수주했다.

로자톰은 1300억달러(146조원) 규모 33개의 신규 원전을 주문받은 상태로 알려졌으며 방글라데시·인도·헝가리에서 12개의 원전을 건설 중이다.

원전산업이 융성했던 프랑스가 지난 10년간 단 2개의 원전을 수출한 사실을 놓고 볼 때 로자톰의 실적은 러시아가 원전 수출의 절대강자라는 점을 말해준다.

러시아는 외교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원전을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는 헝가리 원전 수출을 위해 헝가리 정부에 116억달러(13조원)을 빌려주는 대가로 원전 건설 외 연료 공급과 원전 운영권을 추가로 수주했다.

러시아는 방글라데시에 2.4GW 원전을 건설해 방글라데시 전체 발전용량의 15%를 차지했다.

방글라데시는 냉전 시절 러시아(구 소련)으로부터 다액의 원조와 무상 경제협력을 받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로스톰의 방글라데시 원전 수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원전 수출도 거침이 없다.

터키는 지난 8일 중국과 함께 유럽과 인접한 트라세 지역에 3번째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스탄불과 마르마라 지역의 높은 전력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트라세 지역에 원전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으며 설계 연구 후 부지를 확정짓겠다고 터키 정부는 발표했다.

중국은 영국의 힝클리포인트 원전에 부분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아르헨티나의 원전 건립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중국은 내수 시장에 치중하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원료와 기술을 수출하는데 눈을 돌리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신규 원전 유치를 위해 체코 두코바니를 방문한 정재훈 한수원 사장 일행. 사진=정재훈 사장 페이스북 발췌

◇ 한국, 미국과의 연대로 원전 산업 돌파구 마련하나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공세에 맞서 미국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모양새다.

산업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안전위원회, 외교부 등 한국 정부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미국 에너지부와 함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를 개최했다.

이 위원회에서 한국은 산업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원자력안전위원회·외교부 관계 인사가, 미국은 에너지부·국무부·원자력규제위원회·NSC 국장급 인사 등 총 5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원전 수출과 관련, 한미 간 협력이 양국 기업의 제3국 원전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국제 비확산,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기여할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한미 양국은 ‘고위급위원회’ 산하에 원전수출 실무그룹을 두고 제3국 원전 수출을 위한 협력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형 원자로 APR 1400이 미국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됐고, 한국이 원전을 수출할 때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전 수출과 관련된 한미의 협력 수준은 ‘원전수출 증진 실무그룹’을 구성하고 ‘양국 수출통제체제 비교 편람 작성’과 ‘세계 원전시장 분석 공동연구’ 등 기존 공동연구 추진 현황을 점검하며, 신규 사업으로 원전 수출을 위한 한미간 협력 방안에 대해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만큼 향후 원전 수출에 한미가 공동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최근 터키에 대한 미국의 무역 보복이 원전 사업을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게만 줬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있다. 미국과 협력하면 그만큼 원전 수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게 이익이다.

미국도 원전에 필요한 양질의 부품 등을 구하기 위해 한국 원전 산업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한미 원전 수출 협력 방침이 한미 양국에 이익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원전 수출에 대한 한미의 협력이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원전 시장의 지각변동으로 실제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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