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수술을 받은 고 최종현 회장(가운데)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에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제공
[데일리한국 이정우 기자] SK그룹 창업주인 고(故) 최종현 회장이 별세한 지 오는 26일로 20년을 맞는 가운데,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이 다시금 조명 받고 있다.

SK그룹은 이달 24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최 회장의 20주기 행사를 열고, 고인의 뜻을 기릴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최 회장의 20주기 행사에는 각계각층의 인사 500여명이 참석한다.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들고, 석유에서 섬유까지 SK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경영인이다.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을 상용화해 한국이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최 회장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꿈을 치밀한 준비(지성)와 실행력(패기)으로 현실화한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 회장은 1973년 당시 ‘선경’(현 SK)을 세계 일류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섬유회사에 불과한 SK를 원유 정제와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을 아우르는 회사로 키워내겠다던 최 회장의 포부를 두고 당시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한 꿈”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특유의 준비와 실행력을 바탕으로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고, 1984년 북예맨 유전 개발 성공, 1991년 울산 파라자일렌(PX) 제조 시설 준공 등을 통해 SK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 회장은 또한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설정하고,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를 감행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최 회장은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해 마침내 이동통신 사업에도 진출했다. 최 회장이 당시 8만원대 수준에 불과한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한다고 결정하자 주변에서는 최 회장의 결정을 만류하고 나섰다고 한다.

이 때 최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며 “나중에 회사가치를 더 키우면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최 회장의 경영 철학과 혜안으로 현재 SK그룹은 재계 서열 3위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 회장의 ‘경영 DNA(유전자)’는 장남인 최태원 현 SK그룹 회장이 계승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2011년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그룹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버지인 최 회장이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한 이후 이른바 ‘2차 오일쇼크’로 반도체 사업을 철수한 것을 두고 ‘아버지의 꿈’을 이루게 됐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최태원 회장은 아버지인 최 회장의 경영 DNA를 계승해 취임 당시(1998년) 매출액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의 SK그룹을 현재 매출액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 재계 서열 3위의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고 최종현 회장(왼쪽)이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제공
최 회장은 인재 양성 철학도 남달랐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를 키우겠다는 신념 아래 사재를 들여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고 가난한 청년들을 조건 없이 유학 보냈다. 또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을 통해 청년들에게 당시 서울 집 한 채 가격보다 비쌌던 해외 유학비용과 생활비를 지원했다. 재단은 현재까지 3700명에 달하는 장학생을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740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다.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최 회장의 남다른 투지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최 회장은 전국경제인협회 회장 시절인 1997년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경제 살리기를 호소하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1997년 9월에 산소 호흡기를 꽂고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모습은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생에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경제 살리기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최 회장은 1998년 8월26일 69세의 일기로 삶을 마쳤다.

최 회장은 화장(火葬)이 드물었던 당시에 화장을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최 회장의 유언은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울림을 줬고, 국내 화장 장묘문화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유지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하기도 했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업적과 경영 철학을 기리기 위해 숲 조성 사회적 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임직원이 모은 기부금을 전달하고, 약 16만5000㎡(5만평) 규모의 숲을 조성하기로 했다.

SK그룹은 또한 14일부터 최 회장의 업적과 그룹 성장사를 확인할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열고, 24일에 워커힐호텔에서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연다.

벌거숭이였던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인재의 숲’으로 변한 모습. 동그라미 안 사진은 고 최종현 회장과 고 박계희 여사가 1977년 인등산에서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 사진=SK그룹 제공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