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 평온하지만 해풍이 머금은 소금기와 치열한 사투

무인이 원칙, 완성되면 육지에서 통신망 통해 원격조정

서남해상풍력의 해상변전소. 사진=안희민 기자
[부안(전북)=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잔잔한 바다, 맑은 하늘…. 여름철 흔치않은 동풍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전날 한반도를 스쳐간 태풍 쁘라삐룬의 흔적인 듯 해무가 옅게 시야를 가렸지만 그 때문인지 해수면은 더욱 신비롭게 비쳐졌다.

전북 부안군 격포 선착장에서 9일 오전 출발한 배는 약 30분을 달려 서남해상풍력발전 실증단지에 도착했다. 약 10개월 전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전엔 기초 구조물 정도가 보였다면 이번엔 터빈과 블레이드까지 단 풍력탑이 제법 눈에 띄었다. 노란색 방수페인트가 산뜻한 빛을 발했던 기초 구조물 하단에는 따개비가 달라붙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상부에는 길쭉한 풍력탑을 세워 다음 공정을 예비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해상변전소의 하부 구조물. 사진=안희민 기자

◇ 해달이 쉬고 가는 망망대해의 휴식처, 해상변전소

배는 해상변전소로 직행했다.

아시아 최초 ‘해상풍력용 해상변전소’라는 타이틀을 가진 서남해상풍력 해상변전소는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 했다. 해상변전소의 상부구조물이 설치된 것은 지난 4월이다. 하부구조물은 이미 작년에 설치돼 해상생물의 군락지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이 지역이 격포 선착장에서 10km 이상 떨어져 수중생물만 서식하는 망망대해지만 해상풍력단지가 들어선 이후 구조물들이 바다생물의 휴식처 역할을 수행해 연근해에서만 보이던 해달이 출몰하기도 한다고 어민들이 전했다.

해상변전소 하부구조물에 설치돼 상부구조물로 이어지는 사다리는 수직으로 가팔랐다. 바로 밑은 푸른 바닷물이 출렁거려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유일한 해상변전소를 방문한다는 설레임이 더욱 컸다.

해상변전소 상부 구조물을 오를 때도 두근거림과 현기증에 동시에 느껴졌다. 철골로 짜여진 해상변전소를 오르는 계단의 발디딤판을 통해서도 새파란 바닷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의 출렁거림이 느껴지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동행한 여성들의 안색도 파랗게 질리는듯 했다.

해상변전소 데크에서 본 바다풍경. 사진=안희민 기자

해상변전소는 154kV 변압기와 23.4kV 가스절연개폐기(GSI)가 주요설비다. 상부구조물은 4층으로 구성됐다. 1층 접근데크(Access deck)에는 오수정화시설이 설치돼 있고 2층 주거데크(Cellar deck)에는 거주시설과 비상발전기, 담수화설비, 소화장치, 육상과 연계할 수 있는 통신실이 설치돼 있다.

3층 주설비데크(Main deck)엔 해상변전소의 주요설비인 변압기실과 GIS가 마련돼 있다. 4층 전망데크(Roof deck)에는 항로 표지와 레이더 장치,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몇 개의 철제 계단을 밟고 일행이 최종적으로 올라선 곳은 전망데크였다.

전망데크에서는 주위 풍경을 탁 트인 가운데 한눈에 볼수 있었다. 바지선이 전력선 연결을 하는 해상풍력발전기를 비롯해 아직 풍력탑을 올리지 않은 하부구조물, 풍력탑을 올리고 풍력터빈 설치를 기다리는 구조물 등 다양했다.

내년 말까지 5000억원을 들여 총 60MW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는 시범사업 현장이었다. 작년까지 3기의 해상풍력발전기가 설치됐으며, 올해 말까지 13기가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라 현지 관계자가 귀띔했다.

해상변전소의 데크를 오르내리는 아찔한 계단. 사진=안희민 기자

◇ 아시아 최초 해상변전소, 저풍속에서도 최대 효율 낼 수 있도록 최적화

서남해상풍력발전단지에는 원래 해상변전소가 필요 없다. 인근에 위도에 변전소를 설치해 해상풍력단지와 연결해도 되고 해저케이블을 육지의 변전소로 바로 연결하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발주처인 한국해상풍력이 해상변전소를 설치한 이유는 관련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다.

해상변전소는 유럽이나 미주 등 해상풍력 선진국에서는 이미 확보된 구조물이다. 이들의 해상변전소가 한국과 다른 것이 있다면 북해나 대서양 원해의 강한 바람에 최적화됐다는 점이다.

해상변전소 브리핑을 맡은 김현일 현대건설 공무부장은 “한국의 해상변전소는 초당 7m라는 상대적으로 약한 바람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승압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며 “완성되면 한국 연근해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동남아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상풍력발전기가 일렬로 늘어선 서남해상풍력 전경. 사진=안희민 기자
변전소는 발전설비에서 생산된 전력을 전송하기 전에 전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전력을 높이면 전송 중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전류가 송전선을 흐르면 전기저항에 의해 전기에너지의 일부가 열로 발산돼 공중으로 날아가버린다. 이를 송전손실(loss)이라고 하는데 전류를 작게 하면 송전손실이 작게 된다. 발열량(J)=전류^2×저항×시간이기 때문이다. 즉 전류를 작게 하면 발열량이 적어진다.

발전의 경우 전력=전압×전류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전압을 높여 전류를 작게 만들면 송전손실을 줄일 수 있다. 전압을 높이는 변전소를 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이유로 해상변전소는 해상풍력발전단지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해상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된 전력은 우선 해상변전소로 모아 승압의 절차를 밟게 된다. 그래야만 바다 한가운데서 어렵게 생산한 전력의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여 육지로 전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지선이 접안해 작업 중인 해상풍력발전기. 사진=안희민 기자

◇ 해상변전소, 평온한 해수면 위에서 염분과 사투

현재 해상변전소는 염분이 많은 바다에 적응 중이다.

염분, 즉 소금기는 고체 상태엔 전류가 흐르지 않지만 물을 만나 액체상태가 되면 전류가 흐른다. 따라서 전력설비엔 염분이 최대의 적이다. 변전소가 육지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해상변전소에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해상변전소 기술을 습득하면 고부가 가치 창출 기회가 된다.

박용섭 현대건설 해상변전소 현장소장은 “해상변전소가 육지에서 완성돼 배로 현장에 운반됐지만 해상에서의 적응시간이 걸린다”며 “염해 등 새로운 환경에서 안전하게 변전설비가 작동되는지 시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변전소는 변전설비를 반압기, 단로기, 차단기, 피뢰기를 일렬로 나열해 설치한다. 이러한 설비를 해상변전소라는 작은 공간에 집약한 것도 쉽지 않은 기술이다. 여기에 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공간을 밀폐하고 냉공조기기까지 설치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김현일 현대건설 공무부장은 “해상변전소를 설치할 때 가장 애로 사항이 파도와 강풍 등 기상상황이 변화무쌍하다는 점이지만 서해의 경우 육지에서 10km까지 나와도 수심이 10m 밖에 되지 않아 그만큼 비용이 절감된다”며 “자연에 순응해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서남해상풍력 전경. 왼쪽 끝의 상자가 해상변전소. 사진=안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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