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車 관련 무역확대법 232조에 대한 검토 지시

전문가 "현실화될 경우 車 산업 붕괴될 수도…정부 조치 필요"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현대차그룹 등 국내 자동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자동차에 고율의 과세를 물릴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자동차와 부품이 대미 수출의 주력 품목인 만큼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가 구체화되면 국내 자동차 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관세 부과조치의 일환으로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에게 무역확대법 232조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고 블룸버그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1962년 제정된 이 법령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수입품목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명시돼 있지만, 그동안 사문화된 상태로 있다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자유무역협정(FTA) 상위 개념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에도 이 법령을 근거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한 뒤, 국가별 협상을 거쳐 한국·유럽연합(EU)·캐나다 등 일부 동맹국에 한해 고율의 관세를 영구 또는 임시로 면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12일 자국 자동차 업체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하라”고 주문한 데다, 그동안 수차례 EU가 생산하는 차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던 만큼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SNS인 트위터에 수입 자동차 고율 관세를 예고하는 글을 올렸다. 사진=트럼프 트위터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세단 등 일반 승용차에 2%, 픽업트럭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한국차의 경우 한미 FTA에 따라 일반 승용차만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자동차와 부품이 우리나라 대미 수출의 주력 품목으로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이에 미국은 지난 1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개정협상에서도 대미 수출 1~2위로 꼽히는 자동차 분야를 집중적으로 거론했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비롯한 자동차업체들이 미국 내 공장을 증설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압박 카드’일 수 있어 관세 부과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지만, 현실로 이어질 경우 국내 자동차 생산 대수가 연간 400만대 이하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부품 업체까지 고려하면 국내 자동차산업 생태계 전반이 붕괴할 수 있으리라 전망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차가 직격탄을 맞으리라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미국 판매의 절반 이상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가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각각 30만6935대, 28만4070대다. 미국 정부가 관세를 무기로 현대차와 기아차를 압박하면 결국 국내 생산을 줄이고 현지 생산을 늘리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의 상당 부분 우리나라 대미 수출의 주력 품목인 자동차와 부품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만든 차량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타격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며 “1개 자동차 그룹과 수천개의 부품사가 연결된 국내 자동차 산업의 특징을 고려, 미국의 자동차가 고관세 정책에 예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위원은 “‘검토하라’ 지시가 내려진 것이지, 이행에 옮기라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선언적인 의미일 수 있다”면서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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