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조선사 구조조정 ‘벼랑 끝’ 내몰려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채권과 이 회사 노동조합이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정면 충돌하면서,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중형 조선사에 12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도, 오히려 일자리는 줄어들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조선업이 살아날 것이라는 허황된 전망에 기대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면서, 구조조정 시기를 놓쳤다는 게 조선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노조원들이 1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중형 조선소 구조조정 저지 금속노조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홈페이지

◇성동조선·STX조선 노조, 구조조정 방안 반대 ‘목소리’…“문재인 대통령 약속 지켜라”

성동조선 주채권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과 STX조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과 관련해 성동조선은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STX조선의 경우 40% 이상의 인력 구조조정 등을 포함한 자구 계획안을 전제로 경영 정상화를 꾀하는 게 최선이라고 봤다.

그러나 성동조선 노조와 STX조선 노조는 채권단의 구조조정 방침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 노조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조선업을 살리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향후 투쟁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성동조선 노조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남 창원에서 노조 지회장이나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한국은 3면이 바다라 조선 산업은 무조건 살라야 한다’고 지속 얘기했다”며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TX조선 노조 관계자는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포함된 회사의 자구 계획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현재까지 수주된 17척의 선박을 건조하려면 오히려 인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TX조선 사측은 오는 19일에 자구 계획안을 노조 측에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STX조선 노조 측은 “회사의 자구 계획안이 나오면, 이에 따라 투쟁 계획 등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성동조선과 STX조선 노조원들이 속한 전국금속노동조합은 1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중형 조선소 구조조정 저지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STX조선해양 홈페이지 캡처.

◇“12조원 쏟아 붓고 일자리만 날려”…노조 “채권단, 경영 부실 회사에 전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성동조선과 STX조선에 투입된 자금은 현재까지 약 12조원에 달한다. 성동조선은 2010년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인 자율협약에 돌입하면서 신규 자금 2조5000억원과 출자전환을 통해 기존 대출 1조5000억원을 자본금으로 바꾸는 등의 지원을 받았다. STX조선의 경우 2013년 자율협약과 2016년 법정관리 등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총 7조9000억원의 자금이 지원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는 중형 조선사를 회생시키겠다는 ‘명분’으로 약 1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했지만, 성동조선과 STX조선의 경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 회사는 경영 악화가 지속되자 인력 감축 등의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한 때 8000여명이 근무했던 성동조선에는 현재 1200여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STX조선은 근래에만 400여명의 정규직 근로자가 회사를 떠났다. 12조원의 자금 ‘수혈’이 진행됐지만, 오히려 일자리만 사라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성동조선 측은 “채권단이 자율협약 체제에서 사실상 모든 경영 관리를 해왔는데, 현재의 경영 부실을 근로자의 책임으로만 몰고 가고 있다”며 “채권단이 지원하겠다고 밝힌 자금과 실제 회사에 지원된 금액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성동조선 노조 관계자는 “현재까지 회사가 채권단에 갚은 돈은 이자 6000억원에 원금 7000억원 등 총 1조3000억원이다”며 “출자전환을 통해 1조5000억원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출자전환을 통해 지분으로 전환된 1조5000억원은 수은 자산에 포함돼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부에서 회사에 대규모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고 하는데, 실제 회사에 투입된 금액과는 차이가 크다”고 했다.

이에 대해 수은 관계자는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1조5000억원의 대출을 출자전환하고 자본금으로 바꾼 것인데, 이를 두고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성동조선의 현재 상황에 대해 채권단도 책임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법정관리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장밋빛 전망·정치 논리가 중형 조선사 망쳤다”

조선업계는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에 불어 닥친 장기 불황의 ‘그림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장밋빛 전망에만 기대 중형 조선사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서, 정부가 적기에 구조조정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의 장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많았는데, 정부가 막연히 조선 산업이 살아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지속적으로 대규모 자급을 투입해왔다”며 “정부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했지만, 현재 이 금액으로 이룬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은 노동 집약적인데다, 지역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산업이라, 회사 문제가 정치적인 논리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서 중형 조선사 구조조정을 적기에 시행하지 못했고, 결국 공적 자금만 날려버린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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