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사물인터넷 국내 확산 쉽지 않다고 판단

사물인터넷 본고장 미국에서 날개 펼치려 했었나

삼성전자에서 CTO를 맡았던 이인종씨가 미국 구글 본사로 자리를 옮겨 20일부터 출근한다. 구글에서 사물인터넷 사업을 펼칠 예정인데 이를 두고 국내에선 한국 사물인터넷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이인종씨.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이인종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CTO의 구글 이직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한국 사물인터넷(loT)의 척박한 환경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물인터넷(loT) 사업이 통신3사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데다 전기료가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현실이 사업 전망까지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전 CTO가 구글 본사로 옮긴 것이라며 업계는 자성하고 있다.

그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사물인터넷 사업을 이끌기 위해 구글 사내기업가(EIR, Entrepreneur in residence)로 합류했다”며 “앞으로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다이앤 그린 이사에게 업무를 보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일부터 구글 본사로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2011년 삼성전자 전무로 입사해 무선사업부에서 몸담았다. 2015년엔 개발1실장으로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모바일 결제서비스 삼성페이, 보안 플랫폼 녹스, 인공지능(AI) 비서 빅스비를 성공시키며 세계인들의 뇌리에 ‘ICT 기업 삼성전자’라는 인식을 각인했다. 녹스는 미국 백악관에 진출했고 빅스비는 출시 6개월만에 사용자가 2000만명으로 늘었다. 이재용 부회장과도 직접 소통하기 때문에 삼성전자 입장에선 그는 놓쳐서는 안 될 핵심인재다.

그런 그가 구글 본사에 옮겨 사물인터넷 사업을 펼칠 것으로 알려지자 한국의 척박한 사물인터넷 사업환경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한국이 △통신3사 중심의 사업구조 △비정상적인 전기료로 인한 사업전망의 불투명으로 인해 사물인터넷이 착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작년 10월 삼성전자의 샌프란시스코 개발자회의에서 갤럭시S8의 빅스비로 제어가능하다고 소개된 인코어드의 제품 '에너톡' 사진=인코어드 제공
한국에서 사물인터넷 사업이 활발히 펼쳐지기 어렵다는 분석은 삼성전자 내부에서 나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한국 총판이 국내에서 사물인터넷 사업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중심으로 통신3사가 사물인터넷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실 모바일폰만으로도 가전제품 제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작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개발자회의에서 갤럭시S8에 장착된 빅스비로 에너톡과 스마트씽스를 제어하는 시연을 펼친 바 있다. 에너톡은 빅데이터를 이용해 가전제품의 전력사용량을 분별해주는 인코어드의 제품이며 스마트씽스는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 브랜드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 주도로 스마트씽스를 인수하고 ‘e삼성’을 설립하는 등 사물인터넷 시장이 일찌감치 뛰어들었으나 글로벌 시장의 미성숙으로 고배를 마신바 있다. 한국에서도 KT, 한국전력과 손잡고 사물인터넷 아파트 시범단지를 조성했고 KT의 AI 스피커를 통해 삼성전자의 에어컨, 냉장고, TV 등을 제어가능한 단계까지 올라섰으나 본격적인 수익을 내고 있지 못하다.

한국의 사물인터넷 사업모델은 전자회사 중심과 통신사 중심으로 나뉜다.

전자회사 중심 사업모델은 제품이 판매되면 현금이 회수된다. LG전자의 ‘씽큐’가 대표적인 예이다. 씽큐는 조명, 가스, CCTV 등과 연동되는 각종 센서 제품을 인공지능 스피커와 연동해 판매한다. 제품 중심이기 때문에 초기 구입비가 많이 든다.

통신사 중심 사업모델은 통신료 기반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진입장벽이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단 통신사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제조사가 얻는 수익폭이 적다.

소비자 입장에선 진입장벽이 낮은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한국에선 자연스럽게 통신3사 중심으로 사물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러 가지 사업모델이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제조사에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한국의 경우 시장이 협소해 통신3사 주도형으로 사물인터넷 사업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은 2억5000만명의 인구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업모델이 펼쳐지는 곳”이라며 “사물인터넷의 경우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서로 제약을 받지 않고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을 사물인터넷의 본고장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에 비해 한국 시장은 협소해 통신3사가 주도하고 있다”며 “삼성전자 한국 총판도 국내에서 사물인터넷 사업이 펼쳐지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싶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한전 간 맺어진 스마트가전에너지loT 업무협약의 모습.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 사업을 차분히 진행해왔으나 국내에선 어려운 여건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값싼 전기료도 한국 사물인터넷의 전망도 어둡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5사가 운영하는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이 대부분의 전력을 공급한다. 산업화를 거치며 전력을 무조건 싸게 제조공장에 제공해 수출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묵계가 여전히 전해오고 있다. 지금도 가정용 전기요금은 원가의 90%, 산업용은 원가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료가 국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정되고 소비자 입장에선 값싸다보니 사물인터넷 설비에 투자해 전기료 절감에 나설 이유가 없다.

사물인터넷 산업이 발달하려면 전기료 절감을 위해 관련 제품과 서비스가 팔려나가 초기자금(seed money)가 형성돼야하는데 한국의 경우 전기료가 많이 나오면 자구노력보다는 정부에 전기료를 낮게 책정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물인터넷 기기를 활용한 에너지자립마을, 공장의 수요관리(DR) 사업 참여 등 민간에서 에너지절감 활동이 자라나고 있지만 전체 전력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비한 실정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에서 사물인터넷 사업은 미래가 어둡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원전과 석탄발전에서 가스와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은 전기료 인상이 필수적이지만 이를 지지하는 환경단체가 가스와 재생에너지의 청정성만 강조할 뿐 전기료 인상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지 않고 있고 소비자는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문제, 석탄발전의 분진에 문제의식을 가지면서도 전기료 인상엔 난색”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사물인터넷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연결되고 킬러 콘텐츠 부족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이 사물인터넷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다.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는 그의 페이스북에 “한국 사물인터넷엔 소비자의 이목을 확 잡아 끄는 킬러 콘텐츠가 없다”며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의 사물인터넷 사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KT의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 삼성전자는 이 기기와 가전제품을 연동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사물인터넷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K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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