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현대중공업과 금호타이어가 노사 관계 악화로 기업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12월 가까스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올 1월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합의안이 부결돼 노사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채권단 자율협약 상태인 금호타이어는 노사 갈등으로 자구안 합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가 지난해 7월13일에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상경 투쟁을 벌이고 있다.
◇ 현대중공업, 노사 협상 난항…일각선 노노 갈등 조짐도

2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노사 갈등이 봉합되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되는 양상이다. 잠정 합의안 부결로, 일각에선 노노(勞勞) 갈등 조짐마저 일고 있다.

2016년 임금 및 단체협약과 2017년 임금 협상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12월29일 극적으로 2016년과 2017년 임금 협상에 대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과거 2년 동안의 임금 협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해를 넘겨 3년 치 임금 협상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노사 양측 모두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가 이달 9일 잠정 합의안에 대해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반대 56.11%로 합의안이 부결됐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현재 잠정 합의안 부결에 대한 조합원의 여론 수렴을 마친 상태”라며 “24일 새로운 협상안이 결정되면 사측과 교섭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부가 입장을 정리할 때까지 교섭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현대중공업의 노사 갈등은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과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 등 4개 회사로 분할하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분할이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으나, 노조 측은 분할이 노조 동력을 분산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중공업이 4개 회사로 쪼개지면서, 통합된 현대중공업지부도 4개 노조 형태로 분리됐고, 각 노조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현대중공업에서 분사한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찬성 57.54%)과 현대건설기계(찬성 72.14%), 현대로보틱스(찬성 78.46%) 노사의 잠정 합의안은 모두 가결된 상태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 노조 내부에서는 노노 갈등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노조 사이에서는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 부결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와 긍정적이 의견이 뒤섞여 흘러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투쟁”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쳤다”고 토로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상대적으로 실적이 양호한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과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와 잠정 합의안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과 동종 업계인 대우조선해양 노사의 경우 지난해 12월에 2년 치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급을 받지 않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을 가결시킨 바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금호타이어 노동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2월15일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앞에서 사측의 경영 정상화 계획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전국금속노동조합 금호타이어지회 홈페이지
◇ 금호타이어 노조, 총파업·상경 투쟁 ‘강수’…채권단 “합의 없으면 P-플랜” 맞불

금호타이어의 노사 갈등은 현대중공업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금호타이어지회는 24일 총파업을 감행하고,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상경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금호타이어지회에 따르면 조합원 3000여명이 상경 투쟁이 참여한다.

금호타이어 노조와 채권단 사이의 불신은 깊다. 노조는 채권단이 중국 공장 등 부실 사업에 대한 계획을 내놓지 않고, 단순히 인력 구조조정 등 가장 손쉬운 방법의 비용 절감만을 추진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호타이어지회 관계자는 “현재 금호타이어 부실은 중국 공장과 미국 공장의 영업적자 탓이 크고, 국내 공장은 가동률 100%로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채권단이 부실 사업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워크아웃 당시처럼 또 다시 노조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선 금호타이어가 2014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과정에서 노조와 채권단의 갈등도 심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타이어지회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노조 집행부에 무슨 일이 있어도 투쟁 동력을 잃지 말아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에 대한 억울한 감정이 많다”고 강조했다.

반면 채권단은 금호타이어 노조의 자구안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출자 전환, 신규 자금 지원 등의 경영 정상화 지원 대책을 수립하기 전에 노조의 희생 분담에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채권단의 논리다.

현재 금호타이어는 △생산성 향상 △무급 휴무 △임금 동결 △통상임금 해소 및 임금 조정(삭감) △임금피크제 시행 △복리후생 항목 조정(폐지, 중단, 유지)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 개선 등의 내용이 담긴 자구안을 노조에 제안한 상태다.

채권단은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차입금 만기 1년 연장, 이자율 인하 등 거래 종결까지의 유동성 대책을 마련하는 등 금호타이어 회생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노조 측은 사측이 제시한 자구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금호타이어지회 관계자는 “채권단이 해외 법인 근로자에게는 월급은 주면서, 국내 노동자들에게는 12월에 급여조차 지급하지 않는 등 노조를 협박하고 있다”며 “노조는 이번 기회를 통해 채권단의 횡포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채권단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우리 입장에서는 금호타이어 노조가 자구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프리 패키지드 플랜(P-플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외부자본 유치가 불가피한 만큼, 노조의 자구안 합의가 선행돼야 매각 협상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P-플랜은 채권단 중심의 워크아웃과 법원이 주도하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의 장점을 모은 구조조정 방안을 말한다.

이처럼 현대중공업과 금호타이어 등 ‘부활’을 노리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노사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 등 회사 경영진이 노사 갈등을 풀기 위한 묘안을 내놓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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