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명 시민참가자들 집단토론과 투표통해 ‘숙의민주주의’ 도출
초기엔 박빙의 조사 결과가 집중토론 등 거치며 원전 현실론으로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올해 에너지 분야의 최고 뉴스는 단연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공론화(이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였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과 맞물려 탈원전 진영과 친원전 진영이 극한 대립하는 장이었다. 공론화 조사 결과가 발표난 10월 20일까지 TV, 신문, 인터넷, SNS 등에선 찬반 토론이 만개했다.
◇ 탈원전-친원전 극한 대립부터 포항지진까지…한편의 ‘드라마’
토론 내용도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찬반에 머물지 않고 가깝게는 전기료부터 멀게는 에너지믹스, 원전 산업의 산업화 가능성, 재생에너지의 기술현황과 원전과 석탄발전 등 기저부하 대체 가능성까지 다양한 주제가 오르내렸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끝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11월 15일엔 포항지진이 발생해 '한반도가 지진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공론화 조사 결과가 나오는 과정도 극적 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평이 나왔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조사 결과가 ‘공사 재개’로 결론 났지만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 참가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지했다. 이는 탈원전과 친원전 진영 어느 한쪽에 완승도 완패도 가져다 주지 않은 절묘한 선택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도 인상 깊었다.
477명의 시민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탈원전-친원전 진영의 강의와 시민참가자들 간 집단토론과 투표 과정은 ‘숙의민주주의’라 일컬어지며,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과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로 간주되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탈원전 ‘비용’- 친원전 ‘안전’ 강조…차이 뚜렷해
신고리 5·6호기에서 극한 대립을 시연한 탈원전과 친원전 진영은 쓰는 용어도 달랐다.
데일리한국이 19일 분석한 결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관련해 탈원전 진영은 ‘비용’으로 바라보고 친원전 진영은 ‘안전’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분석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기간 동안 방송, 신문 매체에 등장한 인터뷰 기사가 대상이 됐다. 인터뷰 대상에 따라 탈원전, 친원전으로 분류해 진영 논리를 대표해 쓰이는 단어를 분석해봤다.
분석 결과 탈원전 진영 인사가 인터뷰에서 비중있게 쓴 단어는 ‘탈원전’, ‘에너지’, ‘비용’, ‘한수원‘, ’원자력발전‘, ’문제‘, ’이야기‘, ’필요‘, ’정보‘, ’최근‘, ’전체’ 등이 가장 자주 눈에 띄었다. 이어 ’경제‘, ’문재인‘의 빈도가 높았다.
친원전 진영이 비중 있게 쓴 단어는 ‘원전’, ‘에너지’, ‘고리’, ‘과정’ 등이 가장 많이 쓰였고 ‘경제’, ‘기술’ 등이다.
중복되는 단어를 제외하면 탈원전 진영의 특징적인 단어는 ‘비용’이며 친원전 진영에선 ‘경제’라는 용어를 특정할 수 있다.
이는 탈원전 진영이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비용’으로 보는 관점과 친원전 진영이 매몰 비용을 줄여야한다며 ‘경제’를 강조하는 태도와 일맥 상통한다.
◇ ‘공론화’, 새로운 숙의 민주주의 모델 제시
탈원전과 친원전의 토론 과정은 극한 대립이었다.
상대방이 인용한 데이터의 권위를 의심해 진위여부를 따졌고 대학 교수와 원전 종사자, 시민단체, 국책연구기관 관계자가 논의에 총출동했다.
이런 가운데 탈원전 진영의 박종운 교수, 김익중 교수가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한수원 노조에 고소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양이원영 처장은 공론조사가 발표된 한참 뒤인 이달 같은 일로 고소당했다.
신조어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말도 널리 회자됐다.
이 용어에는 건국 초기부터 친원전 정책을 펼쳤던 정부 정책으로 인해 층이 두터운 친원전 진영의 공세에 탈원전 진영이 애초 밀릴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담겼다.
이는 공론조사 결과 공사재개와 반대 차이가 큰데서 현실화됐다. 공론조사 결과 공사 재개 59.5%, 중단 40.5%로 19%p 차이가 났다.
초기엔 박빙의 조사 결과가 언론지상에 흘러나왔지만 집중토론 등을 거치며 차이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탈원전 진영 입장에서 ‘충격적인 패배‘였지만 공론조사한 참여한 시민은 탈원전 진영에 완패를 안겨주진 않았다. 장기적으로 원전을 축소 53.2%, 유지 35.5%, 확대 9.7%라는 조사 결과도 더불어 안겨줬기 때문이다.
희비가 엇갈린 조사 결과였지만 양 진영은 공론조사 결과를 받아들이는 성숙함을 보여줬다.
특히, 포항지진으로 인해 상황이 달라져 탈원전 진영의 공론화 불복 선언이 나올 법도 했지만 공론조사 결과가 그대로 수용됐다.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에너지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거대한 ‘도가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