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표적수사에 대한 불안감 점차 확산되며 전전긍긍 분위기

'재계의 불법관행 바로잡기' vs '사정당국의 무차별 재계 때리기'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경찰이 ‘자택공사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한진그룹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은 “검찰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그룹 내 위기감은 고조되는 모양새다. 재계에서는 이번 구속영장 신청과 관련해 “이례적”이라는 의견을 내비치면서, 혹시 사정당국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 마저 감지되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6일 자택공사 비리 혐의로 조양호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 회장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던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 사이에 공사비용 가운데 30억원 정도를 대한항공 인천 영종도 호텔 공사 비용으로 처리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를 받고 있다.

경찰은 “조양호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 신청 배경을 밝혔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사진=연합뉴스

◇조양호 회장 18년 만에 구속되나

향후 검찰이 구속영장을 받아들여 법원이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조 회장은 1999년 이후 18년 만에 구속되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조 회장은 1999년 항공기 도입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에 대해 한진그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구속영장이 신청돼 당혹스럽다”며 “검찰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내부에서는 “조양호 회장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불만섞인 반응도 흘러나오고 있다.

회사 자금을 자택공사 비용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계 “조양호 회장 구속영장 신청 이례적” 경찰이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경찰이 대기업 총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조양호 회장과 관련한 수사는 경찰보다는 검찰이 수사할만한 사건”이라며 “조양호 회장처럼 알려진 인물이 증거인멸이나 도주할 가능성은 희박한데, 경찰이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은 ‘보여주기’ 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 회장의 구속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대한 민간 외교 사령탑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 회장은 10일(현지시각) 미국 상공회의소회관에서 열린 ‘제29차 한·미재계회의’ 총회에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미국 측 재계 대표들을 만나 FTA 개정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 재계, 사정당국 표적될까 ‘덜덜’ 경찰이 조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재계에서는 언제든 사정당국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 재계를 상대로 세무조사나, 검·경 수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돼오고 있기 때문에, 재계 전반적으로 사정당국 수사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어, 그룹의 성장 동력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한화그룹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진행했으며, 대한항공은 9월에 정기 세무조사를 받았다.

◇전문가들 “재계 불법행위 엄벌해야” vs “사정당국 기업 때리기 우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조 회장의 구속영장 신청에 대해 “그동안 재계의 관행처럼 굳어온 불법적인 행태를 바로잡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견과 “사정당국의 지나친 재계 때리기”라는 의견이 뒤섞여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총수가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러 구속되는 것을 갖고 재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낸다면, 재계에 대한 국민 신뢰는 더욱 떨어질 것”이라며 “재계는 기존의 관습처럼 행해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부당한 정치권 압박에 대해 ‘할 말’은 하고, 불법적인 행태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찰이 조양호 회장의 증거인멸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조 회장이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조 회장이 구속될 경우)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대한 민간 외교 사령탑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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