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전 세계적인 철강 공급과잉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악재 속에서도 상반기 견고한 실적을 유지했던 철강업계의 하반기 실적에 ‘먹구름’이 낀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는데다, 철강 수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자동차 판매가 고전을 겪고 있어, 철강업계의 하반기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철강업계에서는 중국발(發) 구조조정에 따른 철강 공급과잉 해소로 제품 가격이 개선돼 올해 하반기에도 실적 호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미국, 韓 철강 규제 ‘현실화’…자동차·건설 수요 ‘흔들’

22일 철강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 철강제품에 대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날 서울경제는 미국이 이달 말 발표할 철강 수입 제재 보고서에 한국이 관세 부과 국가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국 철강 제품에 대해 100%를 상회하는 초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철강 수요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자동차 판매가 부진한 것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반도 사드(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현대·기아자동차의 중국 판매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 역시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다르면 현대·기아차의 8월 중국 시장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8.8%나 급감한 7만6010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의 미국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4.6%나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부터 자동차 판매 부진의 여파가 지속됐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에는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고 있고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마저 대폭 삭감되면서 건설 경기도 흔들리고 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산업경쟁력연구본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이상 건설 부문 대기 수요가 축적되면서 지난 2~3년 동안 수요가 높았는데 어느 정도 소진됐고, 부동산 규제 정책도 나오면서 (건설 부문에서) 대형 수요가 창출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며 “자동차 판매 부진이 이어지면서 철강 수요도 여름을 지나 일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본부장은 “하반기 철강 수요가 증가할 요인은 없고, 부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4열연공장 내부. 사진=연합뉴스

◇공급과잉 완화됐다지만…철강업계 수요 침체에 ‘고심’

철강업계에서는 중국의 철강 공급과잉 해소로 철강 제품 가격이 개선돼 올해 하반기 실적도 선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철강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는 뚜렷한 유인은 없는 상황이라, 철강업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구조조정에 따라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던 철강 제품 가격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며 “자동차 판매 부진이 철강 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내달 18일로 예정된 19차 당대회 이후 중국 정부가 철강 생산 규제를 가속화하고 인프라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어, 철강 업계의 하반기 실적이 긍정적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다. 중소 철강업체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철강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 철강업계가 체감하는 수준은 미미하다”며 “여전히 철강 공급과잉은 지속되고 있고,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철강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판매 부진 등의 여파가 올해 하반기부터 현실화되지 않을까 싶다”며 “내년에 선박 교체주기에 따른 조선업계 수요가 예상되지만, 후판 가격 협상도 지지부진한 상황이어서 철강업계의 실적을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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