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금융권 인사 물갈이 속 기자 간담회 등 대외 보폭 넓혀

"증권사 경쟁력 강화 위해 정부에 제도개선 건의하겠다" 의욕

내년 2월 임기만료 속 삼성 미전실 차장과 문자 ‘아킬레스건’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지난 17일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전격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 내 ‘친박’ 인사들의 물갈이 신호탄이 발사된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임기가 불과 6개월도 남지 않은 황영기 금융투자협회(금투협) 회장은 오히려 더욱 보폭을 넓히면서 활발한 행보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 황영기 금투협 회장, 기자들과 만남 갖는 등 ‘대외 행보’ 가속페달…연임 노리나

28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도 중도 사퇴하는 분위기에서 증권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증권업계 최대 협회의 수장을 맡고 있는 황 회장이 연임을 준비 중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사진=금융투자협회 제공
황영기 금투협 회장은 지난 18일 저녁, 여의도 모처에서 기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폭적인 ‘인사 물갈이’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황 회장의 이 같은 적극적인 ‘대외 스킨십’ 늘리기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황 회장은 지난 2015년 2월 56개 증권사들이 회원사들로 가입해 있는 금투협 회장으로 선임됐다. 금투협 회장 임기는 3년으로 내년 2월 임기가 끝난다. 채 6개월도 임기가 남지 않은 상황인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황 회장이 오히려 기자들과의 만남을 자청한 것이다.

이날 황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증권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당국에 제도개선 건의를 지속적으로 하겠다”며 “이를 위해선 법인지급결제를 허용해 법인 고객들이 신속하고 편리하게 증권사에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해 금융투자업계의 역할을 모색하겠다”며 “특히,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규제 체계가 현재의 규정 중심에서 원칙 중심의 네거티브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또한 황 회장은 이 자리에서 코스닥 시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숨은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인 히든 챔피언이 나오려면 코스닥 시장과 비상장 장외시장(K-OTC)에 대한 세제·제도상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파생상품시장 정상화를 위한 제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테면 개인 투자자의 진입장벽 완화나 신상품 개발 통한 시장 진작, 파생상품 규제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황 회장은 “우리나라가 싱가프로와 홍콩 이상의 아시아 금융허브로 구축될 수 있도록 자산운용업을 중심으로 금융허브 추진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황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소신을 직접 밝히면서 증권업계를 대변하는 국내 최대 협회의 수장으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임기가 반년도 남지 않은 황 회장이 금투협 회장 연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연임 도전 미정…증권업계 이익 대변하는 ‘검투사’로 업계 내 평가 높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표적인 친박 금융권 인사로 분류됐던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이달 17일 자진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을 시작으로 ‘금융권 거물’들의 물갈이 시즌의 신호탄이 울렸다.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앞 황소상 전경. 사진=금융투자협회 제공
그러나 황 회장은 최근 들어 오히려 더욱 더 활발한 대외 활동을 수행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에 임기 6개월을 남겨놓은 황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황 회장 자신은 아직 연임 도전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실제로 황 회장의 금투협 회장 연임 도전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황 회장 자신은 특별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황 회장이 임기 종료 이후 계획이나 연임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는 ‘정중동’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인만큼, 결국 황 회장이 내년 초 금투협 회장직 연임에 도전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증권업계 내에서 황 회장의 평판은 긍정적인 편이다. 특히 업계를 대표해 외부와도 날을 세우며 강하게 목소리를 낸다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올해 2월 황 회장은 은행권이 신탁업에 진출하는데 대해 쓴소리를 하면서 오히려 증권사로 하여금 법인 대상 지급 결제 업무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빗장을 열어야 한다면서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내세웠다.

현재 법인은 증권사에 개설한 계좌를 통해 돈을 송금하거나 직원 월급 또는 물품 대금을 지급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또한, 증권사에서는 외화이체와 일반환전이 안 되고 은행 간 외화 대출시장에도 참여할 수 없도록 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가 은행권으로 하여금 오는 10월까지 신탁업법을 만들어 불특정금전신탁이나 수탁재산 집합운용 등 증권사의 고유 업무들을 은행에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황 회장이 이에 대해 반대하면서 오히려 증권사의 업무 범위를 넓혀달라고 소리를 높인 것이다.

당시 황 회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 증권사에 공정 경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은행의 신탁업 진출을 반대했고, 증권사에게 법인 대상 결제 업무를 허용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증권업계 대표 협회의 수장인 황 회장이 칼자루를 쥐고 업계를 대변해 은행권과 맞선 것은 황 회장의 입지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됐다.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사진=금융투자협회 제공
우리나라 주요 금융회사들은 신한금융지주나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지주사 형식으로 산하에 은행과 증권사, 카드사, 자산운용사 등을 각각 두고 고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 실질적으로는 지주사 내 은행들이 지주사를 대표하고, 가장 목소리가 큰 ‘메인스트림’의 포지션을 차지하는 현실에 증권업계의 목소리는 은행권에 눌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황 회장이 은행권에 맞서 증권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검투사’ 노릇을 자청한 것은 큰 점수를 받았다.

◇ 현 정부와 ‘인연’ 끈끈하지만 연임 사례 전무 ‘약점’…장충기 문자에 이름 거론돼 ‘난감’

황 회장이 문재인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이 끈끈한 점도 연임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실제로 황 회장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 라인 인사와 인연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금투협 역대 회장 중 연임에 성공한 인사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은 황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초기라는 시기와 회장직 임기 만료가 겹친 상황에서 ‘새 술은 새 부대’라는 분위기가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를 황 회장이 온전하게 돌파하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차기 금투협 회장 자리를 노리는 인사들의 도전이 거센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11년째 증권사 사장 자리를 키지면서 최장기 증권 CEO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문재인 정부하에서 새로운 금투협 회장 후보로 강력히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유상호 사장은 황영기 현 금투협 회장에 이어 차기 금투협 회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한국투자증권 제공

유상호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두터운데다 한국투자증권을 10년 이상 이끌어오면서 사세를 크게 끌어올려 업계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상반기 증권사 중 최고 실적을 올리면서 유 사장의 입지는 더욱 상승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분석 결과 업계 3위(자기자본 기준)인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상반기 2317억원의 주식 운용 수익을 거둬 업계 1위 미래에셋대우의 주식 운용 수익(1994억원)을 제치고 주식으로 가장 많이 돈을 번 증권사로 이름을 올렸다.

결국 ‘이룰 것은 다 이룬’ 유상호 사장이 한투증권 수장 자리에 이어 ‘증권업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금투협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르지 않겠냐는 전망이 업계내에서 유력한 상황이다.

이처럼 증권사 최장기 CEO로서 기록을 쌓아가고 있는 유 사장이 금투협 차기 회장이자, 증권업계를 대변하는 새 인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황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 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황 회장의 입지를 가장 좁아지게 한 사건은 지난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과 주고받은 문자가 공개된 일이다.

황 회장은 금투협 회장직을 맡고 있던 2015년 7월 장충기 차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 내용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이슈에서 반대 의견을 낸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과 통화를 했고, 주 전 사장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지 말라고 만류했다’는 것이었다.

황 회장은 지난 1975년 삼성물산에 입사하면서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디뎠고, 이어 삼성그룹 비서실과 삼성전자, 삼성생명을 거쳐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증권 사장직을 역임한 ‘삼성맨’ 출신이다. 커리어의 상당 부분을 삼성과 함께 한 황 회장이 과거 인연으로 장 차장과 문자를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뇌물 공여 관련 선고공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 된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이 법정을 나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2015년 7월, 황영기 금투협 회장은 장충기 전 차장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에게 합병을 반대하지 말라’고 통화했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삼성 출신이라는 황 회장의 과거를 감안해도 대한민국 사회 근간을 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사이자 뇌물죄 공여로 법의 심판을 받은 장충기 차장과 황 회장이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은 금투협 회장 연임 성공 여부 뿐만이 아니라 황 회장의 커리어 전반에 있어서 가장 뼈아픈 부분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황 회장은 장충기 전 삼성 미전실 차장과 주고 받은 문자 내용에 대해 입장을 밝혀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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