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견제와 낮은 납품 단가 걸림돌…사업모델 재정비해야

지난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세계 전지기업 생산능력 예측에 한국 전지기업이 충격을 받았다. 사진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예측. 왼쪽의 표를 보면 2020년께 한국 기업의 생산능력은 세계 4~5위권으로 밀린다. 그림=영국 이코노미스트 화면 캡처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글로벌 전지 시장이 치킨 게임에 들어섰다. 향후 수요 폭증이 예상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생산능력(capacity)을 늘리고 있다. 현재 LG화학과 삼성SDI가 글로벌 리튬이온전지 시장을 과점하고 있지만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전지업계는 지난주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 나온 보도를 접하고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에너지부(DOE)의 자료를 인용해 2017년 현재 한국 전지업계의 생산능력(capacity)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불과 3년 뒤에는 글로벌 4~5위로 추락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7년 현재 LG화학의 전지 생산능력은 연간 10GWh를 상회하며 일본 파나소닉과 함께 세계 수위를 차지하지만 2020년에는 20GWh에도 못미친다. 삼성SDI도 LG화학에 뒤쳐지는 수준의 생산능력을 보유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일본의 파나소닉은 2020년에 50GWh를 상회하며 중국 CATL은 40GWh 중반, BYD는 25GWh로 예상했다.

LG화학·삼성SDI, 2020년 세계 4~5위권 추락 예상

일본 파나소닉과 중국 CATL·BYD의 성장은 중국 전기차 시장의 확대와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성장에 기인한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중국은 2016년 이미 세계 전기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고 2020년까지 200만대의 순수전기차(B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lug in Hybrid) 차량이 보급될 전망이다. 10년 뒤인 2027년엔 700만대를 돌파하고 2030년엔 내연기관차를 밀어내고 자동차 시장의 주류 플레이어로 등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석유수출입기구(OPEC)는 보다 급진적인 예측을 내놨다. 2040년까지 전기차가 2억6600만대 보급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의 등장은 전지 시장의 지형도 확 바꿔놓았다. 전지는 용도에 따라 노트북,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IT용, 전기차용, ESS용으로 나뉘는데 2018년께는 전기차용 전지 생산량이 IT용을 능가할 것으로 점쳐진다.

2016년 현재 전기차용 전지 생산능력은 연간 25GWh에 불과하고 IT용에 뒤쳐져 있지만 케이언 ERA의 샘 재프 분석가같은 이는 내년만돼도 전기차용 전지가 IT용을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테슬라가 5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네바다주에 짓고 있는 기가팩토리의 경우 이미 4GWh를 생산하고 있으며 2018년에 35GWh까지 생산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ESS 시장 확대도 인상적이다. 이미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는 세계 전지 시장의 수요에 자극받아 연간 129MWh 생산을 약속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에서 ESS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블랙아웃을 경험한 후 전력수급체계를 기존 대형 발전소 중심의 중앙집중식 전력수급체계에서 태양광+ESS 융복합설비를 통한 분산발전으로 전환하고 있고, 가스 공급 대란을 겪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대형 ESS를 기존 발전원과 함께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예가 샌디에고 가스&전기(SDGE)가 설치하는 주파수 평탄화용 ESS다. 여기엔 18650 크기의 전지 38만4000개가 사용된다.

LG화학이 전지를 납품하는 미국 GM의 쉐보레 볼트, 한번 충전에 320km 주행하는 고성능 전기차다. LG화학은 kWh당 145달러씩 60kWh를 쉐보레 볼트 한대에 납품한다. 사진=한국 GM 제공

중국에 난타 당한 LG화학·삼성SDI, 새로운 사업모델로 돌파해야

세계 전지시장이 확대일로에 있기 때문에 한국 전지 제조사인 LG화학과 삼성SDI의 사업전망이 밝아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중국이 전지 내수시장을 닫고 있고 전지 공급단가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전지 내수시장의 벽을 높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중국은 2016년 1월부터 한국산 전지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고, 중국 내수시장에 전지를 공급할 기업의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식으로 보호무역 장벽을 치고 있다. 이같은 영향으로 LG화학과 삼성SDI는 2015년에 중국 난징과 시안에 전지공장을 지었지만 생산물량을 중국 시장에 풀지 못하고 유럽과 한국으로 돌리는 형편이다.

2020년께 LG화학과 삼성SDI, 파나소닉·CATL·BYD의 생산능력 차이가 월등히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화학의 전지 생산능력은 한번 충전해서 320km 이상 주행 가능한 고성능 전기차를 기준으로 충북 오창 10만대 이상, 중국 남경 5만대 이상, 미국 미시간 홀랜드 3만대 이상이다. 작년에 착공한 폴란드 공장은 10만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SDI의 경우 14만대 정도로 알려졌다.

LG화학이 GM 쉐보레 볼트 전기차 한 대당 60kWh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LG화학과 삼성SDI의 생산능력을 추정하면 폴란드 공장이 완공될 경우 LG화학은 28만×60=1680만kWh, 즉 16.8GWh이며 삼성SDI는 8.4GWh다.

이러한 수치는 여타 전지 제조사를 따라잡기 위해 LG화학과 삼성SDI가 투자를 단행해야할 이유가 되지만 중국 시장 진출 불안정이 과감한 투자 결정을 저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 파나소닉과 CATL, BYD의 생산능력 확대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확대 때문이다. 일본 파나소닉은 미국 테슬라에 전지를 공급하고 있는데 향후 테슬라가 중국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지을 것을 대비해 시설투자를 늘릴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미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많은 언론이 테슬라의 다음번 전기차 제조공장이 중국이며 파나소닉은 상하이에 전지공장을 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CATL·BYD는 중국 제조사이기 때문에 중국 당국의 비호 아래 마음껏 생산능력을 늘릴 계획을 잡고 있다.

급락하는 전지 단가도 LG화학과 삼성SDI의 향방을 불투명하게 하는 주요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LG화학이 미국 GM 쉐보레 볼트에 공급하는 전지 단가는 kWh당 145달러다. 이를 MWh로 환산하면 14만5000달러, 한화로 1억6363만원이다.

에너지저장장치의 예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모 제약회사가 1MWh ESS를 설치할 때 4억5000만원이 들었고 향후 2~3년 전지 가격이 2억~3억원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업계 예측과 비교해 볼 때 LG화학의 GM 납품 단가는 현격히 낮다. 물론 대규모 물량을 독점적으로 공급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박리다매’의 인상을 주는 납품가격에 업계는 마음 무거워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전지산업의 위기는 전지 관련 사업모델을 재정비해야한다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소재 부품 중심의 사업모델로는 승부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의 판단이다.

현재 LG화학과 삼성SDI는 소재 부품에 사업영역을 한정하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GM 쉐보레 볼트에 전장부품을 가격대비 70%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LG화학의 전기차용 전지가 세계 전기차 제조업체에게 공급되고 있지만 ‘LG전기차’를 상상하지는 않는다. 삼성SDI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완성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경쟁사의 견제로 부품납품마저 방해받는다는 것이 LG화학 관계자의 전언이다.

업계전문가들은 한국 부품소재사업의 현실에서 한번쯤 기발한 상상을 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능력이 되는만큼 자체 브랜드의 전기차를 생산하거나 현대차 등이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기를 희망한다.

현업에서 리튬이온전지 개발을 주도하고 현재 리튬메탈전지 등 차세대 전지에 족적을 남기고 있는 조원일 KIST 책임연구원은 “현대기아차가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지만 수소연료전지차만큼의 애정을 보이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 한국이 전기차 완성차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할 때 전기차 부품과 전지 제조기업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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