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폐쇄적인 문화가 고착된 제약업계 분위기 과연 바뀔까

사진=유토이미지
[데일리한국 고은결 기자] #20대의 대학원생 A씨는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하기 위해 국내 유명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A씨는 국내 제약사 중 어떤 회사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국내 제약사보다는 외국계 제약회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국내 회사보다는 회식도 적고 성평등 문화가 더 자리 잡혀 있을 것 같다"고 나름의 이유를 댔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제약회사에 입사했던 B씨는 1년도 되지 않아 퇴사하고 전혀 다른 직업에 도전했다. B씨는 "제약사 근무 시절, 남성이 많은 조직 문화와 실무에서도 보이지 않는 한계를 절감한 게 사실"이라며 "결국 자괴감이 커져 아예 직종을 바꾸게 됐다"고 털어놨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산업계 곳곳에서는 '여풍(女風)'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유독 보수적·폐쇄적인 문화가 고착된 제약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크게 감지되지 않는 분위기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 매출액 기준 상위 10위 제약사들의 지난해 기준 평균 여직원 비중은 24.2%로 집계됐다. 특히 광동제약과 JW중외제약은 전체 직원 중 여직원의 비중이 각각 17.5%, 19.8%로 20%를 밑돌았다.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국내 주요 18개 제약사의 등기·미등기 임원 중 여성 임원의 비율은 전체의 7.4%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한미약품은 최근 전체 그룹사의 여성 임원 비율이 24%로 집계됐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한미약품의 여성 임원은 전무 1명, 상무 6명, 이사대우 4명으로 임상·개발 등 전문 분야와 남성 임원이 주로 맡아 온 공장 책임자, 마케팅 비즈니스 부문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한양행, 제일약품, 동아에스티, 일동제약 등은 여성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요 제약사에서 여성 고용 확대에 초점을 맞춘 채용정책 등을 내세운 곳은 여전히 드문 실정이다.

제약사들의 여성 인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표적인 이유로는 우선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가 꼽힌다. 국내 주요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제약사가 오래된 회사가 많아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편"이라며 "다만 회사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임원이 수십명인 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임원의 수도 적고, 당연히 여성 임원도 적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신약개발에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제약산업에서 이를 감당할 강력한 오너십과 특유의 조직문화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영업사원(MR)의 경우 학사장교 출신을 우대하는 등 기업 측의 남성 선호 경향이 더욱 뚜렷한 편이다. 한 제약사 영업사원은 "물론 유통 등 다른 업종의 영업직군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위 '취중진담'을 나눠야 하며 친해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군대문화가 형성된게 사실"이라면서 "다른 기회를 찾거나 이직한 MR을 따져보면 결국 남녀의 퇴사율, 이직률이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에는 영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여성 MR만의 강점을 인정 받으며 여성 인력의 비율도 점진적으로 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관리자급 비율은 여전히 남성이 압도적이지만 외국계 제약사는 여성 MR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며, 국내 제약사 MR도 여성 인력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전언이다.

한편, 최근 국내 주요 제약사의 여성 임원 비율이 7%대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쏟아지며 제약업계를 '금녀 영역'으로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제약사의 여직원 분포는 통상 영업, 마케팅 직군보다는 연구개발 파트에서 높은 편이다. 주로 연구개발직에 있는 여직원들이 일정 기간 근무한 이후, 능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자발적으로 나가서 약사로 개업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수직적 조직문화' 이미지가 박힌 국내 제약사가 사실 여성이 다니기에 나쁜 곳은 아니라는 업계의 변도 눈에 띈다. 한 관계자는 "다국적 회사만큼은 아니지만 국내 제약사들의 여직원 비율도 낮지 않은 편이고, 주변을 둘러보면 만족도와 급여도 좋은 수준"이라며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임원이 늘어나면 여성 임원의 비율도 자연스레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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