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돈 넣으라는 요구부터 가짜 사이트까지 '다양한 수법'

금감원, '보이스피싱 예방 10계명' 담은 현금봉투 제작

[데일리한국 이민형 기자] #1. 강원도 강릉시에 거주하는 A(76·여)씨는 자신을 은행직원이라고 소개하는 남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남성은 "은행에 문제가 생겼으니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현금을 찾아 냉동실에 보관하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은 A씨는 남성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준 뒤 통장에서 2500만원을 뽑아 세탁기 안에 넣어뒀다. 남성은 다른 계좌 역시 위험하다며 추가 인출을 유도했다. A씨가 추가 인출을 하기 위해 나간 사이 세탁기 안에 숨겨놓은 돈이 사라졌다. 전화를 건 남성이 꺼내 달아난 것이다.

#2.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B(63·남)씨는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링크를 통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우리저축은행 로고를 확인한 B씨는 안심하고 홈페이지 아래 적힌 대표전화로 대출 문의를 했다. 직원은 금리 7.5%에 2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고, C씨는 대출 진행을 위해 신분증을 비롯한 서류를 보냈다. 직원은 수수료 명목으로 10만원을 납부해야 하고, 신용등급이 낮아 예치금 300만원을 입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C씨가 수수료와 예치금을 송금하자 직원은 잠적했다.

보이스피싱(전화 금융사기)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의 자회사인 것처럼 속여 돈을 챙긴 보이스피싱 조직이 등장하는가 하면 냉장고에 돈을 보관하라고 요구하는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돈을 빼돌린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적발되기도 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수법이 이미 많이 알려졌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청이 집계한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 건수는 7239건, 피해액은 1070억원으로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법은 가지각색이다. 최근에는 멤버십 전산팀 및 통신요금지원센터를 사칭하며 9년간 3만여명에게 573억원을 챙긴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먼저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연락하면서 피해자들의 이름, 연락처, 카드사 등의 정보를 알아냈다.

그 후 다시 연락해 60여만원만 내면 휴대전화 요금을 3년간 50% 할인해주고 여행·꽃배달 할인 등 혜택을 준다고 속여 카드 결제를 유도했다. 이 조직은 6개월 또는 1년 간격으로 피해자들에게 다시 전화해 통화요금 할인 관련 멤버십 회원에 가입하면서 납부하지 않은 미납금이 있는데 며칠 내로 납부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강제집행하고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겁을 줘 돈을 가로챘기도 했다.

처음에 이들은 전화로 영어교재를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장사가 잘 되지 않자 불법으로 수집한 회원 개인정보를 이용해 사기를 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사무실 1곳에서 100여명이 함께 근무하며 범행을 저지르다가 본사와 지사형식으로 사무실(콜센터)을 20여개로 분리해 조직적으로 운영했다.

이 조직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고용해 피해자 주소와 카드사 등 기본정보를 알아내는 텔레마케터로 범행에 가담시켰다. 또한 직원 명의를 이용해 40여개의 법인사업자(가맹점)를 만들어 신용카드 전자결제 승인을 받는 데 이용했다.

1개 콜센터가 단속돼도 다른 콜센터나 본사는 엮이지 않도록 가족 등을 콜센터 책임자로 지정해 이들로 하여금 수사 확대를 차단하도록 했다.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금융감독원은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 기승을 부릴 때마다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기업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에는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10계명'이 인쇄된 현금봉투를 배포할 예정이다.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10계명에는 정부기관을 사칭해 돈을 입금하라고 하는 전통적 수법부터 신종 수법까지 안내돼 있다. 전화나 문자로 대출을 권할 경우 반응하지 말고, 대출을 위해 수수료 명목으로 선입금을 요구할 경우 의심해야 하며, 고금리 대출을 먼저 받아 상환하면 신용등급이 올라간다는 말은 거짓이니 속지 말라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들이 보이스피싱 대처요령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피해예방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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