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대출 활용하자" 일부 다주택자 투기로 악용

서민 지원 상품 지난 7월 이미 목표치 초과로 중단

2금융권 대출 몰릴 우려…상품구조·운용기준 조정 필요

[데일리한국 조진수 기자]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의 정책성 대출상품인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이 연말까지 사실상 판매가 중단되면서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4일 밤 보금자리론의 자격 요건을 연말까지 강화한다는 내용을 홈페이지 공지사항 게시판을 통해 기습적으로 공지했다.

주택가격이 3억원 이상이면 신청이 제한되고 대출한도도 기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하향조정됐다. 별도 제한이 없었던 소득조건은 디딤돌 대출과 같은 부부합산 6000만원 이하로 신설됐다.

공사 관계자는 “3억 이하주택, 연소득 6000만원 이하 서민의 주택구입용 자금은 현재대로 공급해 연말까지 당초계획의 160%인 16조원 규모로 보금자리론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 “디딤돌 대출 등 서민지원 상품은 조건 변동없이 지속적으로 공급해 나갈 계획”이며 “이번 조치로 보금자리론 대상에서 제외된 고객(고소득층, 기존 대출대환 등)의 경우 은행권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화된 보금자리론 내용이 알려지자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혹시나 대출을 받지 못할까 하는 마음에 보금자리론 신청 수요는 폭증했다. 대출 요건이 맞지 않는 주택 구매자는 시중은행으로 옮겨야 하며, 이럴 경우 대출 금리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주금공은 지난해에 보금자리론 예상 수요를 6조원으로 설정했지만 실제 공급액은 14조7496억원으로 예상치의 248%를 기록했고 올해 역시 미국 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해 6조원으로 설정했다.

이 역시 지난 7월(7조2777억원)에 이미 초과됐다. 8월 말 기준 보금자리론은 9조1492억원이 실행돼 목표액의 156%가 공급됐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에 이미 예측 실패를 했음에도 올해 계획 수립에 이런 점이 반영되지 않아 지난 15일 보금자리론 자격이 강화되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보금자리론 수요에 대한 반복된 예측 실패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해 1주택자에 대한 대출금액은 2조2739억원으로 전체 보금자리론 공급액의 15%을 넘어섰다.

보금자리론은 무주택자를 위해 주택가격 9억원 이하, 대출한도 5억원 이하를 기준으로 제공하는 금융상품이지만 1주택자도 3년 이내 기존 주택 처분을 조건부로 이용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조건을 악용해 이미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이 기존주택을 처분하지 않고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주택을 구매해 투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보금자리론으로 대출받은 2주택자 중 올해 8월까지 기존주택을 처분한 건수는 25%에 불과했다. 올해 대출건수(7976건) 중에서는 단 6%(474건)만이 기존주택을 처분했다.

박 의원은 “3년 이내에 대출을 상환하면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않아도 돼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이는 지역에 대한 주택에 대한 투기구매로 이용한다고 의심할 여지가 있다”며 “올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운용 규모와 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민층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한 ‘보금자리론’이 일부 다주택자와 높은 주택가격 한도로 인해 투기에 이용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보금자리론 운용 규모와 기준을 재 정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원 새누리당 의원도 “가계부채 총량관리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동의하지만 대출조건 변경 방안을 미리 공지했다면 수요자인 국민들의 혼란도 줄었을 것”이라며 “주금공이 시행 5일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공지한 점은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의원은 이어 “실수요자들이 은행권과 정부의 대출 상품을 이용하지 못하면 제2금융권에 대출이 몰릴 위험이 있다”면서 “가계부채 대책이 오히려 가계부채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서민경제가 안전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사진=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 캡처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보금자리론과 관련한 전반적인 제도 및 상품구조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규상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강화된 자격 제한은 올해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한다”면서도 “내년에는 강화된 조건이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겠지만 종전 (19일 이전까지의) 보금자리론 상품구조와는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일부터 가입이 중단된 ‘아낌e-보금자리론’에 대해서는 “편의성이 있기 때문에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며 “활성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보금자리론 지원액이 올해 연간 예상 공급금액(6조원)을 훌쩍 넘어섰지만 서민 주택 실수요층의 자금 애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초 계획을 넘어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도 국장은 “보금자리론을 염두에 두고 주택매매 계약을 체결한 주택구매자들의 피해가 없도록 18일 이전까지 주택매매 계약을 체결했다면 19일 이후에라도 강화되기 이전 자격 요건으로 보금자리론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은행별로 배정한 적격대출 한도가 현재 대부분 소진됐으나 추가 한도 배정으로 공급을 지속하겠다”며 “6억원 이상 9억원 미만 주택구매자는 적격대출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 국장은 “보금자리론, 디딤돌대출, 적격대출 등 세가지로 정책성 주택담보대출이 구분돼 있지만 금리 등 여러 측면에서 서로 큰 차이는 없는 상품들”이라며 “정책의 원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 전반적으로 따져보고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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