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동효정 기자]인천에 사는 김모씨(30)는 6년여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 양가 어른들과 상견례를 마치고 예식 날을 잡은 그들은 막상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될 지 막막해 남들처럼 웨딩컨설팅 업체를 찾았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드레스 책자를 살펴보던 김 씨는 최근 결혼식을 올린 유명 야구선수 아내가 입은 똑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발견했다. 해당 드레스를 지목하며 가격을 묻자 웨딩 플래너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망설였다. 해당 드레스가 포함된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세트는 S급 패키지로 처음 논의했던 가격에 비해 훨씬 비싸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씨 커플은 결국 셀프웨딩을 선택했다. 두 사람은 직접 발품을 팔아 10만원대의 드레스를 계약했고, 장소는 홀 대여비가 없는 곳을 잡아 1인당 2만원대 식사가 가능한 장소로 정했다. 또 추가비용이 많은 스튜디오 촬영 대신 사계절이 모두 담긴 웨딩 사진을 직접 여행지를 다니며 찍기로 했다.

최근 김씨처럼 기존 웨딩컨설팅에 의해 일반화된 ‘스드메’ 패키지 보다 본인의 개성을 살리거나,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려는 예비부부들의 의지로 '셀프웨딩'이나 '다이렉트 웨딩'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중산층이 사라지는 사회 전반의 변화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웨딩업계는 이미 양극화가 한창 진행중이다.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배우 이나영과 원빈. 사진=이든나인

특히 강원도 정선출신 유명배우 원빈과 이나영이 고향의 밀밭 오솔길에 오르간을 두고 나무 아래서 진행한 결혼식이 셀프웨딩을 자극하는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식 비용은 총 110만원으로 민박집 방 3개 대여비 60만원과 식비 50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거슬러올라가면 1999년 특급 호텔의 예식이 허용되면서 예식의 장소와 식사 비용은 고급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예식의 형태에 있어서도 예식 장소에서 식사를 함께 하는 연회식 예식(동시 예식) 형태를 선호하게 됐다.

일반 예식장도 이에 맞춰 리모델링하거나 신규 웨딩홀들은 호텔에 준하는 설비를 갖춘 컨벤션홀 형태로 오픈하면서 한껏 높아진 신랑신부의 눈높이에 맞추느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예식의 식대를 포함하는 당일 예식 비용은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가 된 듯 하다. 3포세대를 넘어 '7포세대'까지 온 젊은 층으로선 도저히 이같은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2015 한국의 소비생활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양극화지수는 167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양극화지수는 소비자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자신의 소비 계층을 바탕으로 상류층 대비 하류층 비율을 수치화한 것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양극화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다.

이번 소비자원의 조사에서 자신을 소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65.2%로, 지난 조사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중산층을 세분화하면 중산층의 ‘하’에 속한다는 응답이 42.8%에서 48.5%로 5.7% 포인트 늘어났다.

날로 심각해져가는 양극화 현상은 결혼 세태도 바꾸고 있다. 일부 상류층의 호화 결혼 행태는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결혼 비용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서민들도 크게 늘어나면서 중간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예물업계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3,000만~4,000만 원대 호화 예물을 장만하는 예비부부들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200만~300만 원대 예물을 장만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가격대 별로 나눠 1500만원 전후의 비용으로 예식을 치르던 이른바 중간계층이 어느새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종로의 귀금속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서민들은 커플링이나 현금 등으로 예물을 줄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고가의 예물을 찾는 예비부부들도 적지 않다"고 전하며 "오히려 500만~1,000만 원대 예물을 사는 중산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로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실속을 추구하는 결혼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고급 호텔 예식장도 성수기에는 여전히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오는 6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심모 씨(27)는 직장생활을 통해 모은 돈을 모두 결혼식 비용으로 지출하기로 결심했다. 친정에서 집을 마련해준 덕에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은 심 씨는 예비 남편과 상의해 서울의 특급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작정했다. 심 씨는 결혼식 행사에만 사용되는 비용이 얼추 1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심 씨처럼 일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을 최고급으로 치르고 싶은 예비부부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연도별 국내 결혼건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평균 결혼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는 점도 이채롭다.

특급호텔 결혼식의 경우 홀 대여료는 없으나 1인당 식사 기준으로 비용을 계산한다. 1인당 식사비용은 보통 8만원에서 20만원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부가가치세 및 봉사료 별도로 식사비용의 22~40%는 따로 지불해야 한다. 평균 하객 규모가 양가 합쳐 500명 정도라고 계산할 때 식사 비용만 3,750만~1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호텔 결혼식의 경우 꽃 장식은 필수다. 평균 500만원 선이지만 수입 꽃을 사용할 경우 2,000만원이 훌쩍 넘기도 한다.

호텔 인근 스튜디오와 메이크업숍은 기본 600만원이다. 수입 드레스 대여에 30만~50만원, 도우미(헬퍼)와 머리 장식 등 비용을 합치면 800만원 선이다. 이 마저도 대여가 되지 않는 베라왕 등의 일부 브랜드를 선택할 경우, 별도 구입을 해야하므로 1,000만원을 넘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백화점에서 예물을 고르는 예비부부.사진=롯데백화점 제공

혼수도 명품을 택하는 예비부부가 증가하고 있다. 봄 가을로 백화점 측이 웨딩페어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신혼부부의 경우, 가전·가구 등 고액 혼수 상품 구매가 많아 일반 고객과 비교해 씀씀이가 10배 가량 높기 때문이다. 특히 백화점에서만 판매하는 프리미엄급 상품군에 대한 선호도 역시 급증하는 추세다.

실제 롯데백화점 웨딩멤버스 매출을 살펴보면, 최근 5,000만원 이상 고액 구매 고객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해외패션 상품군의 매출 구성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기준 웨딩멤버스 5,000만원 이상 고액 구매 고객 수는 2014년 보다 28%나 늘었으며, 이들의 매출 구성비는 전체 웨딩멤버스 매출의 46%나 차지했다. 웨딩멤버스 고객이 구매한 혼수 상품 중 해외패션 상품군의 비중은 46%로, 금액도 2014년 대비 162%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이 예비 신혼부부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클럽웨딩'의 경우 가입자 수가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11.8%, 13.3% 증가했다. 2015년에도 14.7%나 껑충 뛰었다. 클럽웨딩 가입 고객의 매출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10.1%, 15.8%, 17.6% 늘어나는 모양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시계나 예물과 같은 기본 품목을 넘어 명품 가방이나 지갑까지 혼수로 장만하는 신혼부부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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