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인(Knock-in) 공포' 속에도 저점매수 투자자 늘어

만기 집중된 2018년 증권사 위기론도 '솔솔'

11일 금융당국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은 100조1,057억원을 기록했다. 자료사진
[데일리한국 이민형 기자]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의 발행 잔액이 사상 최초로 100조 원을 돌파했다. 11일 금융당국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은 100조1,057억 원을 기록했다.

작년 말 기준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은 98조4,090억 원이었는데 올해 들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1조7,000억 원 가량의 자금이 추가로 들어왔다. '녹인(Knock-in·원금 손실) 공포'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지만 저점 매수에 적기라는 판단을 내린 투자자들의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2003년 처음 일반인에게 판매된 파생결합증권은 초기에는 주로 자산가 계층을 상대로 판매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중화 시대를 맞이했다. 전통적 수익 기반이 약화한 증권사들은 발행액 1%까지 수수료를 안정적으로 챙길 수 있는 파생결합증권 판매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2010년 22조4,000억 원이던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은 2011년 말 38조8,000억 원, 2012년 말 51조6,000억 원, 2013년 말 63조2,000억 원, 2014년 말 84조1,000억 원, 2015년 말 98조4,090억 원을 기록해 불과 5년 만에 다섯 배로 불어났다.

게다가 작년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 1%대까지 내려간 것도 높은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는 파생결합증권 판매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금융 선진국에서는 파생 상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파생결합증권 시장의 팽창은 세계 조류와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ELS와 DLS의 주요 기초 자산으로 쓰이는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와 국제 유가의 급락으로 파생결합증권 투자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는 원금의 70% 이상을 날릴 수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일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에서만 3조3,000억 원 어치가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발행 잔액이 1조7,000억 원에 달하는 원유 DLS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손실이 현실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파생결합증권의 100조 원 돌파가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며 한국 금융 시스템 전반을 뒤흔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간 파생결합증권은 증권업계에 연간 수천억 원의 수익을 안겨줬지만 작년 3분기부터 수익성 악화를 야기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증권사들은 세계 증시의 등락 와중에 ELS의 헤지(위험 회피) 여건이 나빠져 파생상품 운용 과정에서 1조3,187억 원의 손실을 냈다.

올해에도 중국 증시 폭락으로 증권사들이 작년에 못지않은 헤지 비용을 들이고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추가적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나아가 원금 손실을 본 ELS, DLS 가입 고객의 불만이 급증함에 따라 향후 증권사들의 전반적 사업 기반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와 동시에 증권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증시의 추가 급락, 고객들의 중도 해지 사태 등의 극단적 상황을 적용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증권사들의 건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파생결합증권의 만기가 대부분 2018년에 집중된 가운데 증권사들이 ELS에 편입한 자산을 한꺼번에 시장에 내놓게 되면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의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자기 자본 대비 ELS 발행 잔액 비율이 200% 이상으로 높은 신영증권, KB투자증권, 대신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의 자본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은행은 작년 11월 보고서에서 증권사들이 고객에게 제시한 높은 수익률을 맞추려고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저유동성·저신용 등급의 채권 규모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금융위기 등 심각한 충격이 발생하면 증권사들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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