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에 급급하기보다는 외교·안보 측면까지 고려해 실익 따져야

"동남아의 가입 희망국과 연합해 2차 가입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

"TPP 가입의 실익이 크지 않은 만큼 한일FTA에 좀 더 신경써야"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데일리한국 동효정·고은결 기자] 미국과 일본 등 12개 회원국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지난 5일 타결되면서 한국이 뒤늦게라도 'TPP호'에 승선해야 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가입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는 있지만, 무조건적인 가입을 추진하기보다는 다각적인 검토를 거쳐 주도면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힘을 얻어가는 분위기다.

일단 정부는 TPP 참여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메가 FTA(자유무역협정)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언급, TPP 참여쪽으로 방침이 섰음을 공식화했다. 이미 협상이 타결된 만큼 원체결국이 아닌 2차 가입국으로 참여하더라도 불참 보다는 뒤늦게라도 'TPP호'에 승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참여한 미국 등 12개국 대표단이 5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협상 타결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 방침이 공개되면서 각계 전문가들은 TPP 참여 필요성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다각적인 검토를 거친 후 차근차근 접근해야 한다는 신중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는 한국이 미국·일본 등이 이미 짜놓은 판에 들어가게 돼 불리한 패를 쥐고 협상에 임하는 만큼, 쌀 시장이나 의료 등 서비스시장 개방 과정에서 기존 회원국들이 한국에 무리한 조건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에서다. 특히 외교안보적 여건까지 감안해 실익을 냉정하게 따져본 뒤 협상 테이블에 당당하게 앉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문이다.

서진교 대외정책연구원 무역실장은 "협상 타결이 된 뒤 우리나라가 들어가는 모양새는 밀고 당기기 협상보다는 우리가 가입을 요청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지적한 뒤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미 다양한 국가와의 협상을 통해 우리가 유리한 다자 외교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으므로 큰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서 실장은 "지금은 12개국이지만 향후 30~40개국으로 규모가 커졌을 때는 국가 별로 요구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2차 가입국이 된다면 원체결국보다는 어렵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TPP가 메가FTA개념으로 합병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면서 "통상질서 체제에서 TPP가 WTO(세계무역기구)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이미 12개국 중 10개국과 FTA를 맺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판단으로서는 급하지 않다고 봤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국제 정세와 흐름을 감안하면 메가 트렌드를 따라 TPP에 참여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고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견해 쪽에 섰다. 조 교수는 이어 "나라마다 비준을 통과하는 데 수 년이 걸릴텐데 우리도 그 안에 면밀히 준비해 TPP가 발효될 때 함께 시작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밝혔다.

동남아의 다른 TPP 가입 희망국들과 사전 연합을 형성해 2차 가입을 준비해야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허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국제대학원장)는 “TPP 2차 가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상대 측에서 볼 때 너무 간절하게 원하는 인상을 준다면 치러야 할 가입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 뒤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TPP 가입 희망국들과 사전 연합을 형성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사진=방송 화면 캡처

한국은 현재 TPP에 가입한 12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10개국과 FTA가 체결돼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TPP 가입은 '한일 FTA 체결'이나 결과적으로 비슷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로서 한국이 TPP에 가입한다고 해도 실익이 크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진단한 뒤 "이번 TPP를 '위장된 한일FTA'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일각에서 한일 FTA를 체결한다면 굳이 TPP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면서 "미국은 당연히 한국의 TPP 가입을 원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최종 선택은 한국의 몫이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송 교수는 "아이폰의 경우처럼 여러나라 부품이 들어가서 조립된 제품의 경우 원산지 증명이 쉽지 않으나 TPP 가입국의 경우 원산지 누적을 적용한 뒤 회원국들의 공헌 비중을 계산해 무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송교수는 이어 "TPP의 핵심이 원산지 누적(cumulative) 장치와 미국식 규제의 조화(harmonization)에 있는 만큼 TPP의 장점을 활용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허윤 교수 역시 "참여국의 산업이 하나의 생산라인으로 묶이면 역내 산업으로 분류돼 관세 특혜를 보게되므로 TPP 안에서 아주 고도화된 생산망이 형성돼 여기에서 소외되면 피해를 보게 된다"면서 "단기적인 관세 인하 효과를 추구하기보다는 국제 규범을 따르는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TPP를 통해 '국산 제품을 얼마나 더 많이 팔까'가 아니라 국제 규범과 한국 내부의 수준을 맞추고 영향권 내에 속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세 인하 품목 및 폭 등을 결정하는 시장 접근 협상도 상황은 비슷하다. 시장 접근 협상은 공통으로 적용되는 단일 양허안이 존재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 무역 규모가 큰 국가는 별도의 개별 양허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한국도 무역 환경을 고려할 때 개별 양허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시장 접근 협상 과정에서 일부 부담은 여전히 존재한다. 일본 등 원체결국들이 '쌀시장 개방'등 민감한 분야를 건드리며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차 산업의 경우 우리가 취약한 부분이지만 2차 참여국이 될 경우 취약 부분에 대해 무리한 요구가 나오면 가입을 전제로 일부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우리가 쌀 시장을 지키기 위해선 서비스업이나 공산품 등 다른 분야에서의 대폭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최고 수준의 자유화’란 TPP의 명분 앞에서 일본, 뉴질랜드마저 자국 농산물 시장을 지키는 데 실패한 상황을 감안하면 과연 한국 정부가 과거 다른 통상 협상 때처럼 이를 고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TPP전략포럼 의장)는 “한국이 추가 가입을 할 때 농림축산 분야가 정치적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윤 교수도 "추가적인 농산물 시장 개방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우려를 나타내면서 "TPP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면 경제적인 면을 비롯해 우리가 양자 협상을 할 때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지 범정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허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내에서만 수립되는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외교·안보·통상과 관련된 카드를 여러 개 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서울대 오정석 경영학과 교수는 "TPP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볼 때 눈에 안보이는 면까지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이 중국과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TPP로 일본이 득세하고 있다는 분석과 관련해 "일본의 경우 중국보다는 미국과 가깝게 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고 전제하고 "현재 일본은 산업계는 물론 학계까지 미국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져가려는 구도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과는 견제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오교수는 "북한 변수도 물론 있지만 중국 자체가 한국의 주요 파트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우리는 중국이나 미국 한쪽에만 올인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만큼 이럴 때일수록 균형있고 신중한 접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오교수는 이어 "TPP에 가입하려 해도 어차피 원체결국인 일본만큼 대접 받기는 어렵고 일본의 견제도 당연히 예상되는 만큼 외교적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며 "따라서 TPP 가입에 너무 매몰되기보다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신중론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미 참여 의지를 천명한 만큼 TPP 참여와 불참에 따른 실익에 초점을 맞춰 논의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8%, 교역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메가 FTA(자유무역협정) 경제 블록'인 TPP 탄생을 앞두고 향후 우리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밟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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