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기준과 성공에 대한 욕심이 '왕자의 난' 촉발했다는 분석도

창업주로서 후계 구도 미리 정리하지 않아 분란 소지 낳아

본인이 끝까지 직접 챙기겠다는 독단적 경영스타일 문제로 지적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데일리한국 동효정 기자] 총수 일가간 경영권 승계 분쟁을 벌이고 있는 롯데그룹 전 계열사에 대해 소비자단체가 불매운동을 선언하는등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나와 '불매운동'이 언급되긴 했지만 사태 발생후 실질적인 불매운동이 공론화되며 실천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으로부터 촉발된 '오너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사태의 실질적 진앙은 바로 신격호 총괄회장 자신에게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며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주요 상장사들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4일 오전 10시 33분 기준 롯데제과(-0.31%), 롯데푸드 (-0.66%), 롯데손해보험 (-1.62%) 등 주요 계열사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 달간 롯데칠성의 주가는 18.1% 하락했다. 전날에는 장중 한 때 10.7% 급락하기도 했다.

롯데그룹 7개 계열사(롯데칠성, 롯데쇼핑, 롯데손해보험, 롯데하이마트, 롯데제과, 롯데푸드)의 합산 시가총액은 약 23조8,500억원(3일 종가기준)으로, 하루 만에 1조7,400억원이 증발하기도 했다.

롯데그룹 전 계열사에 대한 소비자단체의 불매운동도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기 시작됐다. 금융소비자원은 4일 "롯데사태는 국내 재벌의 비양심적인 작태를 드러낸 단면으로 국내 재벌이 사회적 책임이나 공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면서 "롯데카드, 롯데백화점 등 롯데 전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금융소비자원은 이어 "금융사들도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롯데 관련 그룹사에 대한 대출과 투자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라며 "롯데그룹의 정경유착, 자금조달, 상속, 세금포탈 등에 대해서도 정부가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소원은 "재벌이 내부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 극히 가족적, 족벌적 경영으로 경제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번 롯데 사태를 계기로 이 같은 문제를 완전히 뿌리뽑을 수 있도록 경제주체들의 노력이 요구된다"며 소비자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이같은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재계에서도 노심초사하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롯데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드러나면서 국내 재벌기업들이 모두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롯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반(反) 대기업 정서로까지 확산되면 경제인 광복절 특별 사면 등 각종 현안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2월 특허가 만료될 롯데면세점 서울 소공점·월드타워점도 이번 롯데판 '왕자의 난'으로 관세청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금까지 면세점 재승인은 큰 하자가 없을 경우에는 대부분 그대로 이뤄져왔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는 판단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롯데리아, 코리아세븐 등 상장이 검토되고 있는 계열사의 기업공개도 무기한 연기될 전망이다.

극단적인 사태를 촉발한 것은 신격호 총괄회장 본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성공에 대한 욕심과 자신만의 경영철학이 오히려 아킬레스건이 됐다는 평가다.

자신의 두 아들을 차례로 내치는 계기가 된 투자실패 사례 역시 과도한 기준과 성공에 대한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탓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장남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투자실패는 경영상 용인되는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실패 없이 성공의 길을 걸어 온 신격호 총괄회장의 엄격한 기준에 미달한 탓에 아들들은 노여움을 샀고, 이는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

차남과 장남 사이를 오가며 불과 몇 개월 새 후계구도를 뒤흔든 것도 스스로가 만든 성공에 대한 과도한 믿음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구순이 넘는 고령에도 신격호 회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업경영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지금도 매일 계열사들의 보고를 받고 있다. 하지만 판단력과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져 있다는 여러 사례가 실제로 드러나고 있고, 그룹 관계자들의 관련 증언이 잇따르고 있는 점에 비춰 신 총괄회장이 경영권 교통정리 시기를 실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최근 공개한 동영상에서도 신격호 총괄회장은 짧은 글을 힘겹게 읽었고, 일본 롯데홀딩스를 한국 롯데홀딩스로 잘못 읽는 등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하기도 했다.

3일 신동빈 회장과의 5분 면담에서도 롯데그룹 측은 신동빈 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에 들어가 “다녀왔습니다. 이번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자, 신 총괄회장이 “어디 갔다왔냐”고 물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대화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신동빈 회장이 “동경에 다녀왔습니다”고 말하자, 신 총괄회장은 “어허..어디?”하고 재차 물었고 신동빈 회장이 “네 동경이요”라고 답했다고 롯데그룹은 전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가능했을 때 진작 후계구도를 정리했어야 하는데 롯데 2세들이 환갑을 넘기고 본인도 구순을 넘길만큼 때를 미룬 것이 분쟁의 실질적 불씨가 됐다"며 "한 때는 '신격호 신화'로 존경받던 기업인이 경영권 다툼의 원인 제공자로 폄하되며 '신격호 리스크'로 까지 언급되니 씁쓸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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