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처 전 총리 주도로 강력한 구조 개혁… '영국병' 치유

네덜란드·스웨덴·아일랜드… '노사정 대타협'으로 위기 극복

독일 슈뢰더 전 총리도 노동시장 유연화로 성장률·고용률 제고

사진=유토이미지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노동 부문 개혁'을 올해 하반기 최우선 국정 과제로 설정함에 따라 해외의 노동 개혁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고 평가받는 국가들은 크게 정부 주도로 강력한 개혁을 추진한 경우와 노사정 대타협에 중점을 둔 경우로 나뉜다.

영국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대처 총리의 강력한 진두지휘로 노동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노사정 타협에 성공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실업 인구 축소 등을 실현해 경제 발전을 이끌어냈다.

영국 대처 총리의 개혁… 강력한 리더십과 꾸준함의 승리

영국은 총리 주도 하에 노동 개혁을 추진해 뚜렷한 성과를 거둔 나라로 꼽힌다. 1970년대의 영국은 초강성 노조와 과도한 복지 제도로 인한 임금 상승과 생산성 저하 문제를 겪고 있었다. 급기야는 1976년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상황에 몰린다.

이에 대처 총리는 강력한 구조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대처는 1979년 초에 실시된 총선거에서 '불법적인 노조 파업을 법과 원칙으로 다스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집권 11년 반 동안 대대적으로 고용법과 노동 관계법 제정 및 개정을 진행했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는 지난 5월 열린 한국경제연구원 세미나에서 “마거릿 대처총리는 노조가 권력을 장악하던 노동시장을 개혁하기 위해 1980년부터 노조 결속력 강화에 기여한 클로즈드샵 제도(Closed shop·노조원 중에서만 직원을 채용하기로 단체협약을 맺는 제도)를 단계적으로 약화시켜 이를 1988년에 전면 폐지하는 등 다섯 차례에 걸쳐 노사 관련법을 제·개정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처 정부는 노조 간부의 면책특권 제한(1980년), 노조 파업 결정 시 비밀투표 의무화(1982년) 등을 통해 노조 파워를 점차 약화시키는 등 공격적인 정책을 폈다.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대신 협력적 노사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기업의 이윤을 배분하는 정책도 내놨다. 노사공동협의위원회를 설치해 종업원지주제, 이윤배분제 등을 실시한 것이다. 구직자수당을 도입하고 2년 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실업자에 기술교육비를 지원하는 등의 방향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개편해 근로 의욕을 높이려 했다.

이후 영국은 민간 부문이 활기를 찾아 1990년대 들어 유럽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또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해외 직접투자 유입 증가 등의 긍정적 성과를 가져왔다. 대처의 노동 개혁에 대해 '영국병' 치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처 총리는 1980년대 광산노조를 파괴함으로써 영국 경제를 양극화 위기에 빠뜨렸다"는 비판적 지적도 있다.

최근 영국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도 복지 및 부처 예산 축소를 추진하는 한편 대처 전 총리 이후 30년 만에 대대적인 노동 개혁을 이뤄내 성장의 발판을 삼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보수당은 공공 분야 노조가 파업을 벌이려면 절반 이상의 조합원이 투표에 참여해야 하고, 개표 결과 전체 조합원의 40% 이상이 파업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와야만 합법적 파업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개혁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한 독일 슈뢰더 총리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2002년 폴크스바겐 관리이사였던 페터 하르츠 박사의 이름을 딴 노동 개혁으로, 경직된 고비용 구조였던 독일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의 경제 상황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유럽의 환자'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암울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1년 0.8%, 2002년 0.2%에 불과해 성장동력을 거의 상실했다. 실업률은 2002년 10.1%까지 치솟아 실업자 수가 40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암담한 상황을 지켜보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폴크스바겐의 노무 담당 책임자를 지낸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노동시장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다. 노동계와 경영계·정부·학계가 모두 참여한 위원회에서 노사정 타협이 이뤄졌고, '하르츠 개혁'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당시 개혁의 주요 골자는 노동시장 유연화, 고용 유형 다변화, 창업 활성화, 실업자 복지 축소 등이다. 먼저 근로자 파견 기간의 상한을 폐지하고 1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은 해고 규정에서 예외를 인정해줬다. 신규 창업 기업은 임시직 근로자를 최장 4년 간 고용할 수 있도록 해 근로 형태가 다양해지도록 유도했다. 실업자의 창업 의욕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소득 2만 5,000유로까지는 3년 간 보조금을 주고 세금도 깎아줬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줄이고, 실업부조도 구직 노력을 기울여야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하르츠 개혁이 독일의 경제력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한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을 통해 2008년 고용률 70% 달성에 성공했다. 2005년까지만 해도 11.2%였던 실업률도 지난 1분기 역대 최저인 4.8%로 떨어졌다. 현대경제연구원 조호정 연구위원은 “하르츠 개혁 이후 일자리가 늘어났고 이는 민간 소비 증가로 연결됐다"며 "기업 매출도 상승해 다시 임금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하르츠 개혁 이후 실업급여 축소 등으로 독일의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네덜란드·스웨덴·아일랜드… 노사정 협약 통해 위기 극복

네덜란드와 스웨덴, 아일랜드 등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노사정 협약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1980년대 초 극심한 실업난과 마이너스 경제 성장에 시달렸다. '고용 없는 복지'로 놀고먹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네덜란드 병'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그러나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 체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루드 루버스 총리 정부는 소도시 바세나르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노조는 임금 인상 억제, 기업은 근로 시간 단축을 받아들였으며 정부는 이를 재정·세제로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시간제와 임시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사회보장과 고용 보장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정규직 근로자들도 근무 시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등 고용 조건을 탄력적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바세나르 협약 이후 네덜란드는 1990년대 유럽연합(EU)이 연평균 2.1% 성장하는 동안 연평균 3.1%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3년 기준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7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초 보고서를 통해 "네덜란드 기적의 원동력은 한마디로 '컨센서스(합의) 경제'"라며 "컨센서스 경제는 정책 수립시 정부와 노사단체 대표 간 사전 이견 조율이 제도화돼 있는 경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협의 플랫폼인 노사정위원회는 당사자 간 합의 방식이 잘 작동하지 않고 노동 개혁에 관한 논의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등 협의 기반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노동재단과 사회경제평의회가 사회·경제 정책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정부에 권고하는 창구 기능을 한다. 두 기관이 내놓는 의견과 권고 사항은 노사의 철저한 분석과 논의 끝에 나오는 것이어서 정부의 정책 입안 과정에서 대부분 수용됐다.

유럽에서 가장 파업이 많은 나라로 꼽혔던 스웨덴의 경우에는 1938년 '살트셰바덴협약'이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 경영자들은 일자리 제공과 기술 투자에 집중하고 근로자들은 경영자의 지배권을 보장하면서 생산적인 노사관계를 이끌어냈다. 아일랜드는 1987년 이후 다섯 차례의 사회협약을 통해 노사관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호정 연구위원은 “대표적으로 독일의 경우 노동 개혁이 시행되기 이전에 독일의 고용 형태, 산업계 등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면서 “우리도 현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계와 산업계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며 정부는 합의안을 도출해 꾸준히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전문가는 “노사 개혁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국가들의 경우 대체로 개혁 과정에서 정부의 강력한 개혁 리더십과 더불어 노사정 간 긴밀한 협조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면서 “노사정 대타협에 성공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되 리더가 강한 소신을 가지고 한국형 개혁 모델을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독일의 하르츠 박사도 "노동시장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과 재정적 뒷받침, 아이디어 등과 더불어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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