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패션 대결 ⑤ 여성 정장]

불황과 활동성 선호로 여성 정장 매출 감소… 캐주얼 매출 확대

토종 올드 브랜드 약진+요우커의 '큰 손'으로 여성복 시장 꿈틀

서울의 한 패션 아울렛의 여성복 매장. 사진=이민형 기자 urbanity@hankooki.com
[데일리한국 동효정 기자] 여성들이 정장 대신 캐주얼 의류로 갈아 입고 있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정장보다 활용도가 높은 캐주얼 의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정장 비중이 높은 여성복 브랜드들은 캐주얼 브랜드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고객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삼성패션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여성 전체 의류의 종류별 점유율에서 캐주얼은 48.1%로 여성 의류 중 1위를 차지했다. 1998년부터 같은 조사를 시작한 이래 캐주얼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이다. 국내 여성 의류 시장이 8조2,000억원으로 추산되므로, 여성 캐주얼 시장 규모는 3조9,400억원에 달한다.

반면 지난해 상반기 여성 정장 비중은 전년(28.9%)에 비해 큰 폭이 감소한 19.9%에 그쳤다. 1조6,300억원 수준이다. 여성 정장의 매출 비중이 2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조사가 진행된 17년 사이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여성 정장은 2004년 30% 밑으로 떨어진 이래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갈수록 하향세다.

여성 정장이 고전하는 이유는 불황에 따른 소비 부진으로 정장 대신 실용적인 캐주얼을 찾는 고객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여성들이 의류비 지출을 줄이면서 값만 비싸고 자주 입지 않는 정장 대신 캐주얼을 주목하고 있다"며 "캐주얼 브랜드들이 디자인을 다각화해 직장 여성들에게 인기를 끈 것도 변화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여성 정장 브랜드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패션 시장이 SPA(기획·생산자가 유통·판매까지 하는 브랜드)와 컨템포러리(최신 경향을 반영한 중고가 패션)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오랜 기간 정형화된 이미지의 정장 브랜드는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수년 간 크고 작은 정장 브랜드가 사업을 중단했고, 대형 패션업체들이 운영하던 정장 브랜드마저 매출 감소를 보이고 있다. 국내 패션업계 1위인 삼성 에버랜드 패션 부문도 2013년 여성 정장 브랜드 데레쿠니와 에피타프의 사업을 접었다. LF(옛 LG패션)의 대표 여성브랜드 '모그'(MOGG)도 지난해부터 백화점 영업을 중단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불황과 패션 트렌드 변화로 여성 정장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을 적극 반영해 제품을 다각화하고, 합리적 가격으로 내놓으려는 자구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젊고 활동적인 여성들을 겨냥한 코오롱 FnC의 럭키슈에뜨 모델 장윤주.

'딱딱한' 틀 깬 여성 정장 브랜드

여성 패션 브랜드가 정형화된 콘셉트를 깨고 달라진 고객의 입맛에 따라 변신하고 있다. 여성 정장 브랜드는 딱딱한 정장 대신 캐주얼 라인 구성을 높였고, 20대를 주고객층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들은 활동성을 강조하며 캐주얼과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국내 여성 브랜드는 장기간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과 수입 컨템포러리 상품군의 활약 등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었다. 여기에 여성 고객들이 정장보다 세련된 캐주얼 패션을 선호하면서 정장·예복 중심인 여성 정장 브랜드의 롯데백화점 내 신장률은 지난해 마이너스 4.6%로, 5년 전에 비해 10% 이상 낮아졌다.

이에 따라 여성 정장 브랜드는 한벌 세트의 정장 생산을 줄이고 단품 위주 캐주얼 라인 구성을 높였다. '구호', '오브제', '타임', '마인' 등 대표 브랜드들은 캐주얼 라인의 구성비를 전년 대비 10~20% 늘렸고 '지고트', '모조에스핀'은 캐주얼 라인을 별도로 만들었다. 전체 상품의 35% 이상을 틀에 박힌 정장이 아닌 직장과 일상 생활에서 두루 활용이 높은 캐주얼로 구성했다.

20대를 주고객층으로 하는 영패션 상품군 브랜드들은 활동성을 강조한 상품군을 대폭 강화했다. 최근 아웃도어·스포츠 패션을 일상 생활에서도 즐겨입는 이들이 늘면서 패션과 기능성을 모두 갖춘 코오롱FnC의 럭키슈에뜨나 신원의 베스띠벨리같은 스포티 캐주얼룩이 트렌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백화점 영캐주얼 상품군의 지난해 여성 재킷 소진율은 40~50% 수준으로, 80% 이상 소진된 바람막이·점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이번 시즌 롯데백화점 영패션 상품군에서 신규 론칭을 하거나 기존 콘셉트로 전환한 브랜드도 7개나 된다. 이 가운데 5개 브랜드의 경우 '스포티'가 메인 콘셉트다.

롯데백화점 여성 패션 부문 황범석 부문장은 "여성 정장 상품군의 캐주얼 바람은 패션에 민감한 20~30대 신규 고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상품군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브랜드마다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상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어서 올해 여성 패션 상품군이 보다 활기를 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 그룹 20대 여성 브랜드 베스띠벨리의 모델 고아라.

잊힐 뻔 했는데… 숨은 강자 올드 브랜드

여성 의류 브랜드 톰보이는 2010년 부도 이후 약 2년 간은 아예 시장에서 제품조차 볼 수 없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과 한 식구가 된 톰보이는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지난해 6월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경영 정상화에 나선 톰보이는 신세계톰보이로 사명을 바꾼 후 지난해 매출 1,000억원, 영업이익 50억원을 내며 흑자로 전환했다. 2013년 톰보이의 인기 상품인 트렌치코트는 출시 이후 완판 행진을 이어갔으며, 겨울 코트 또한 출시한 주에 1,000장씩 판매되면서 추가 주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신세계톰보이 관계자는 "부도 이후 사업을 다시 시작한 지 3년만의 성과"라며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디자인과 거품을 뺀 가격 정책, 감성 마케팅을 바탕으로 매년 두 자리 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SK네트웍스의 여성복 브랜드 ‘오즈세컨’의 성장세도 무섭다. 2008년 브랜드 인수 당시 300억원을 밑돌던 매출은 6년 만에 5배 이상인 1,600억원대로 뛰었다. 오즈세컨은 대만 최대 패션기업 먼신가먼트 그룹과 손잡고 대만 진출을 확정지었다. 오즈세컨은 중국, 미국, 영국 등을 포함해 총 18개국에 진출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패션시장이 급격히 고가와 저가로 양분되면서 중가 브랜드들이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면서 "브랜드 컬러와 디자인 철학을 뚜렷하게 유지하는 브랜드들이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패션그룹 형지가 인수해 되살린 샤트렌, 세아상역이 인수한 조이너스도 비슷한 경우다. 샤트렌은 원래 논노에서 1985년 선보인 후 전개하던 국내 최초의 3040 여성 캐주얼 브랜드였다. 1992년 논노가 부도나면서 브랜드 전개가 중단됐다. 2006년 패션그룹 형지(당시 형지어패럴)가 상표권을 인수해 재출시하면서 전략을 바꿨다. 논노가 운영할 당시 백화점 위주 고가 전략에서 중저가의 캐주얼 중심 전략으로 바꿨다.

최병오 패션그룹 형지 회장은 "샤트렌을 고급 브랜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소비자가 많아서 많은 마케팅 비용을 쓰는 대신 제품력을 높이는 데 투자할 수 있었다. 당시 탤런트 이미연은 ‘15년 전 샤트렌의 팬이었다’며 샤트렌 광고모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 더욱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매출 1,200억원을 기록한 샤트렌은 러시아, 대만 등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조이너스도 비슷한 사례다. 1994년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 매출 1,000억원을 기록하면서 한국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조이너스는 나산그룹 부도로 어려움을 겪다가 세아상역 산하 인디에프로 매각(2010년)됐다. 최근 조이너스는 고급 라인 추가 등 리뉴얼을 통해 단일 브랜드 매출액 900억원으로 옛 명성을 되찾은데다 흑자 전환까지 성공시켜 효자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3040 여성복 브랜드 조이너스의 모델 김희선.

큰 손 요우커 만나 힘 얻는 여성복 시장

요우커의 쇼핑 패턴이 바뀌면서 한동안 침체됐던 토종 여성복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 고가의 유럽 명품 브랜드나 동대문에서 파는 보세제품으로 양극화됐던 요우커의 소비가 ‘한국 백화점에서만 파는 토종 여성복 브랜드’까지 확산됐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 간 토종 여성복은 수입 브랜드와 글로벌 SPA 브랜드 사이에서 고전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전문기업 한섬은 지난해 10월 중국 국경절 연휴(1~8일) 동안 요우커의 구매 결과를 공개했다(서울 명동·압구정·삼성동 백화점 매장에서 중국 신용카드인 인련카드 매출액 기준). 특히 고가 여성복 ‘마인’의 중국인 매출 비중이 57%를 기록했다. 마인 출시 26년 만에 요우커 매출이 절반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기간 중국인 매출 비중은 ‘시스템’ 71%, ‘SJSJ’ 63%였다.

해외 고가 브랜드가 많이 입점한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서도 ‘타임’이 남·녀 의류 부문에서 요우커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한섬의 토종 브랜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9.5% 늘었다. 서울 백화점 매장 기준으로 중국인 매출은 95% 늘었다. 한섬 관계자는 "SJSJ를 제외하고는 중국 현지 유통은 물론 외국인 대상 판촉 활동도 하지 않는 브랜드"라며 놀라워했다. 한섬은 이에 따라 중국 온라인몰 입점을 검토 중이다.

크로커다일레이디 캐시미어코트를 입은 하지원.

코오롱FnC도 춘절을 맞아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여성복 럭키슈에뜨의 경우 전 매장에서 은련카드로 구매하거나 여권 확인 시 1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코오롱FnC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관광ㆍ교통 정보 관련 온라인 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에 광고를 통해 가장 가까운 자사 브랜드 매장 위치 정보와 함께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코오롱FnC MPR팀 조은주 부장은 "최근 패키지 여행보다는 스스로 원하는 지역을 찾아다니는 자유 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중국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며 "이번 춘절 맞이 프로모션을 시작으로 중국 관광객의 눈높이와 취향을 고려한 전략적인 요우커 마케팅을 더욱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3040 여성복 브랜드인'크로커다일레이디'도 요우커 모시기에 나섰다. 크로커다일레이디는 화려한 컬러와 패턴, 다채로운 디자인을 갖춰 중국인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크로커다일레이디는 지난 10월 1일부터 서울, 제주 등 중국인 관광객 수요가 높은 지역의 90여개 매장에서 중국어 전화 통역서비스, 은련카드 결제 서비스를 전개하고 중국어 안내판을 매장 전면에 설치하기로 했다.

요우커의 한국 여성복 브랜드 선호는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지난해 중추절 롯데백화점 요우커 매출 상위 30개 브랜드 중 ‘모조에스핀’ 같은 토종 여성복이 7개로 가장 많았다. 업계에서는 요우커가 ‘명품 싹쓸이 쇼핑’에서 벗어나 아시아 여성 특유의 여성미를 살릴 수 있고, 한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어서 희소성이 있는 ‘토종 한국 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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