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셀러, 교보문고·예스24 올해의 베스트셀러 휩쓸어

인기 지속적 도서 판매로 이어져…일부 출판사에는 단비

출판시장 양극화 심화 등 부정적 시각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과 '미생' 단행본.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영화·드라마 등 미디어를 통해 인기를 얻은 미디어셀러(media seller)가 올해 출판가를 휩쓸었다. 미디어셀러란 한 마디로 '미디어의 덕을 본 책'을 의미한다. 영화ㆍ드라마ㆍ예능 프로그램과 같은 미디어에 노출된 이후 독자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은 도서들이다. 오래 전 출간된 책이 미디어 등장으로 다시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고, 흥행 드라마나 영화 내용에 관련된 도서가 출간되는 경우도 있다.

교보문고가 최근 발표한 올해의 종합 베스트셀러 1·2위는 영화의 원작 소설로 주목받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미 비포유'가 차지했다. 이외에도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5위 안에는 미디어에 등장해 판매량이 늘어난 책이 6종이나 자리 잡고 있다. 예스24가 올해 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의 도서판매 동향을 집계해 발표한 종합 베스트셀러 자료에서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tvN 드라마 미생의 원작 웹툰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완간 세트,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했던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등 미디어셀러가 나란히 1~3위를 차지했다.

양사 모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올 한해 미디어의 덕을 가장 톡톡히 본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스웨덴에서는 100만부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 있는 소설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지난해 7월 출간 이후 순위가 2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었다. 이랬던 책이 영화 개봉 이후 출간 1년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책은 100년간 스탈린과 김일성, 아인슈타인의 멘토로 20세기 역사를 들었다 놨다 한 가상의 노인 알란을 주인공으로 파란만장한 요양원 탈출기를 그려냈고, 영화도 이를 유쾌하게 담아내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지난해 10월 완간된 웹툰 단행본 '미생'은 드라마 방영이 시작된 지난 10월 100만부를 돌파했다. 이 시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이 책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고 언론의 집중 조명까지 받으면서 11월에는 한 달 만에 무려 100만부가 더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웠다. 더불어 기존에는 독자층이 주로 30~40대 남성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방송 이후 20대와 40~50대, 여성 독자들의 비율이 늘었다. 이외에도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 제임스 대시너 '메이즈 러너' 등 영화 원작 소설들이 올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의 경우에는 2009년 출간된 이후 지난해까지 판매량이 1만부가량에 그쳤으나, 이후 올 6월까지 약 25만부가 팔렸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나 '미생'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은 아니지만,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이야기 전개 일부를 녹여내는 창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배우 김수현의 입을 통해 실제 책 내용이 낭송되기도 한 이 책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순식간에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흥행한 드라마나 영화에 관련된 내용으로 인기를 얻은 책들도 미디어셀러의 범주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드라마 '미생'의 인기로 직장 내 처세술을 다룬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지고 있고, 누적 관객 수 993만 명을 넘은 공상과학 영화 '인터스텔라'가 우주론 관련 서적의 매출 증가에 크게 일조했다. 드라마 '정도전'의 인기로 출간된 정도전 관련도서들과 영화 '명량'의 국민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출간된 이순신 관련 서적들도 대표적인 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개된 책을 보며 해당 도서를 친숙하게 느끼고, 이를 실제 구매로까지 이어가고 있다"면서 "관련 출판사 입장에서는 업계가 오랜 불황 속에 놓인 시점에 미디어셀러의 흥행이 단비 같은 존재일 것"이라 말했다.

미디어셀러의 인기가 '반짝 효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판매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교보문고 조사에 따르면 올해의 미디어셀러들은 20주 이상 판매량이 유지되는 등 인기 수명이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드라마 원작 소설이나 관련 도서들이 영화 개봉 전후 반짝 인기를 누리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을 통한 지속적인 노출과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팔려나간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출판사들은 영상화될 가능성이 높은 장르문학을 펴낼 별도의 브랜드를 내놓는 등 변화를 시도 중이다. 현재 문학동네에서는 엘릭시르, 자음과모음에서는 네오픽션이라는 브랜드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셀러의 위상이 커진만큼 부정적인 시각도 늘고 있다. 먼저 드라마나 영화 속 PPL(간접광고·Product PLacemen)을 위한 억지스러운 도서 노출이 시청자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11년 방송된 SBS TV '천일의 약속'에 등장한 김진명의 '고구려'의 경우, 이야기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던 바 있다. 이에 더해 미디어셀러가 출판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PPL을 진행할 수 있는 출판사가 소수에 불과해 힘없는 출판사들이 더욱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방송 미디어와 같은 대형 자본에 접근해 미디어셀러를 만들어 내는 출판사는 대부분 자금력이 있는 소수 업체들"이라면서 "영세한 출판사들은 좋은 도서가 있어도 PPL에 쓸 막대한 비용이 부족하다. 출판 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소수 스타급 저자에게만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현상도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미디어셀러의 흥행이 '책이 점점 더 자생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걱정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중들의 미디어 및 스낵 컬쳐(Snack Culture, 웹 드라마·웹툰 등으로 짧은 시간 동안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도서가 미디어의 파생 상품처럼 전락하고 있다"면서 "보다 깊은 지성을 다루는 인문학 등 도서들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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