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자스럽다'는 신조어를 낳은 편의점 도시락 제품.
[데일리한국 김다영 인턴기자] "생각보다 혜자스러운 구성입니다", "오늘 먹은 음식은 가격 생각하면 정말 창렬하네요."

최근 온라인상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다. 두 가지 모두 연예인들의 이름에서 나온 신조어로 상반된 뜻을 지니고 있는데, 편의점 즉석식품을 사먹던 소비자들을 통해 각종 SNS로 퍼져나가면서 젊은 층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먼저 '혜자스럽다'는 말은 탤런트 김혜자의 이름을 내건 편의점 도시락 제품군 이름에서 유래됐다. 이 제품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타사 제품보다 구성이 알차다는 평을 받으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김혜자 진수성찬 도시락’은 3,500원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고기산적, 치킨 가라아게, 돼지 불고기, 달걀 말이, 볶음 김치, 버섯 볶음, 콩나물 무침, 시금치 등으로 구성된 풍부한 반찬이 사랑받으며 출시 1년 만에 200만개 이상이 팔려나는 기염을 토했다. 온라인에서 ‘혜자푸드’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9월 이후 판매량은 급속도로 늘어 지난 10월에는 전달 대비 38.7%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고, 탤런트 김혜자에게는 ‘마더 혜레사’ 등의 별칭도 생겼다. 식품업계의 과대포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선이 따가운 시점에 '혜자'가 포장에 걸맞는 풍부한 양을 자랑하는 상품들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부실한 내용물로 이슈가 된 모 업체 냉장제품. 사진=JTBC
'혜자스럽다'와 대비되는 의미의 신조어도 나왔다. 바로 겉포장과 달리 속 내용은 실속없고 부실한 제품을 비꼰 ‘창렬스럽다'는 말인데, 한 네티즌이 그룹 DJ DOC 출신 가수 김창렬의 이름을 빌린 냉장식품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유래됐다. 해당 시리즈의 일부 제품이 가격에 비해 내용물이 턱없이 부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네티즌들은 각종 과대포장 식품에 ‘창렬 푸드’, ‘창렬스럽다’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학생 세 명이 국산 과자의 과대포장 문제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 띄운 ‘질소과자 뗏목’에까지 '고잉 창렬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뿐만 아니라 식품의 범주를 넘어 포장 용기에 비해 용량이 얼마 되지 않는 화장품, 상자 크기에 비해 적은 양이 든 문구 세트 등 다양한 제품에 ‘창렬하다’는 말이 쓰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일종의 '소비자 권리 찾기 운동'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젊은이들이 SNS 등을 통해 빠르게 관련 이슈를 생산해내면서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업체에게는 경각심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창렬-혜자 푸드'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기업들의 과대 포장 행태가 더욱 화제로 떠올랐고, 일명 '질소 과자'업체들과 비교되는 대용량과자도 '인간 사료'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실제 한 오픈마켓의 최근 일주일 사이 대용량 과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증가하며 국내외 일반 과자보다 높은 신장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자 '창렬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기업들은 점차 개선 작업에 나서고 있다. 최근까지 김창렬 시리즈 냉장식품을 판매했던 업체 관계자는 "판매됐던 시리즈 중 일부 제품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았지만, 해당 시리즈 전체 제품과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연예인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 전체 회수조치와 판매 중단을 실시했다"면서 "향후 업체를 선정해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에는 내용물의 양 등과 관련해 더욱 까다로운 점검을 거칠 방침"이라고 말했다. '창렬스럽다'는 먹거리를 넘어 한 다스(12자루) 크기에 5자루만 포장된 연필, 막상 입주해보니 생각보다 면적이 넓지 않은 아파트 등 카테고리를 막론하고 과대 포장된 모든 것을 조롱하는 말로 쓰일 정도다.

이름에 접미사를 붙여 꼬집는 신조어는 비단 연예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면 전직 대통령을 빗댄 신조어가 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빗댄 '놈현스럽다'는 ▲상식과 원칙을 말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치는 사람 ▲자기가 보는 현실만 현실이라고 우기는 사람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을 주는 데가 있는 사람이란 뜻을 담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의미하는 '명박스럽다'도 ▲명명백백한 사실도 박박 우기는 사람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지칭한다. 또 '영삼스럽다'는 '단순무식한 사람', '대중스럽다'는 '타인과 합치기 좋아하는 사람' 등이 네티즌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신조어는 유행어인 동시에 당대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유명인들을 비꼬는 말이 유행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누리꾼들의 기대와 그 기대를 저버린 행동으로 인한 실망감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는 "인터넷에서 여론의 생산 주체가 된 시민들이 말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나 무기로 사용하면서 신조어가 많이 탄생한다"며 "국민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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