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맛대결 ⑨ 즉석밥]
즉석밥 시장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20%이상 성장
CJ '햇반' 선두 속 오뚜기·농심·동원 등 맹추격
잡곡밥에 품종 개량 밥까지 출시하며 '건강식' 시도

햇반이 제품라인을 타고 완제품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CJ제일제당 제공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서울 충무로 근방에 거주하는 직장인 임모(31) 씨는 올해 들어 매달 즉석밥을 한 상자씩 구매하는 습관이 생겼다. 직장을 옮기면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게 됐기 때문이다. 임 씨는 “시판되는 즉석밥을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해준 밥처럼 맛이 좋아 꾸준히 먹기 시작했다”면서 즉석밥 덕분에 ‘밥 걱정’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외부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잦은 직업이어서 매번 밥솥에 밥을 해 먹기 애매했던 차였다”면서 “집에서 식사할 때마다 큰 힘 들일 필요없이 즉석밥을 꺼내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과 함께 먹으면 되니 든든하다”고 덧붙였다.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가운데 즉석밥 시장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김씨와 같은 1~2인 가구가 증가한데다 캠핑 등 레저 열풍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에서 2010년 72.8㎏, 2013년 67.2㎏으로 줄고 있다. 반면 국내 즉석밥 시장은 지난 5년 간 연평균 20% 이상씩 성장했다. 이 가운데 자취생, 주말 부부 등이 늘면서 낱개로 구매하기보다는 번들·박스 구매나 정기 배송 등을 통해 집에 즉석밥을 쌓아두고 먹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실제로 즉석밥의 대표격인 햇반 제품 판매 구성비 변화를 살펴보면 낱개 비중은 1996년 92%에서 올해 26%로 줄었지만, 번들은 같은 기간 8%에서 75%로 급격히 증가했다.

2020년에는 1인 가구가 590만 가구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즉석밥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1,886억원 규모인 국내 즉석밥 시장이 2018년 3,600억원, 2025년 1조 5,0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1인 가구는 소량의 식재료로 한 끼를 해결하려는 욕구가 높고 간편한 조리법을 선호하기 때문에 즉석밥 시장은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석밥 시장에서 CJ제일제당(왼쪽부터)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오뚜기와 농심, 동원F&B 등 후발업체들이 뒤따르며 점유율 경쟁을 펼치고 있다.

즉석밥 원조는 CJ '햇반'… 비상식(非常食)에서 일상식(日常食)으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즉석밥 원조는 CJ제일제당의 ‘햇반’으로 1996년 12월 탄생했다. 제품 출시 당시 CJ제일제당은 냉동밥, 레토르트밥 등 당시 시판되던 간편식 밥의 실패 요인을 분석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개발했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1990년대 중반 들어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급증하고, 가정 전자레인지 보급률이 60%에 달하는 등 즉석밥이 성공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을 갖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CJ제일제당 사내에서조차 “맨밥을 누가 사먹겠느냐”며 햇반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셌다고 전해진다. 밥이라고 하면 '집에서 만드는 집밥'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 CJ제일제당은 햇반을 '비상식'(非常食)으로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접근했다. 집에서 갑자기 밥이 필요할 때나 야외로 놀러갈 때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제품으로 햇반을 선보인 것이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즉석밥은 비상식이 아니라 평소에 먹는 '일상식'(日常食)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즉석밥을 먹어본 세대가 주 소비층이 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등 즉석밥이 일상식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다져졌기 때문이다. 햇반의 주 소비 타깃도 출시 초기에는 35∼45세 주부였지만 미혼 직장인, 맞벌이 부부 등으로 옮겨갔다. 이에 CJ제일제당은 햇반에 '엄마가 지어준 것처럼 맛있는 밥'이라는 이미지를 실어 집밥처럼 먹을 수 있는 밥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햇반 생산량이 1996년 출시 당시 2,000톤 규모에서 지난해 3만톤으로 15배 이상 성장한 것만 보아도 즉석밥 시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즉석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즉석밥은 어떻게 우리의 식탁에 놓이게 될까. 햇반의 경우를 예로 들면, 먼저 쌀을 엄선해 품질 유지에 적합한 15℃ 저온 창고에 보관한 후 이를 도정해 물에 불리게 된다. 그 다음 미생물을 없애고 쌀에 찰기를 주기 위해 불린 쌀에 증기를 8회 뿜은 뒤 ‘취반 과정’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수분 함량을 조정해 물을 주입하고, 100도의 증기를 30~35분 동안 분사해 밥을 짓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밥은 산소와 수분을 차단하는 다층 구조용기를 사용해 밀봉하므로 첨가물 없이도 상온에서 9개월 동안 보관할 수 있다. 다만 이를 냉장고에 보관하면 전분의 노화가 진행, 쌀이 굳어지거나 딱딱해져 맛이 떨어질 수 있다. 용기와 뚜껑은 식품에 적합한 특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섭씨 100도 이상에서도 성분 및 외형이 변형되지 않는다. 끓는 물로도 즉석밥을 데워 먹을 수 있는 이유다.

자료=오뚜기 제공

CJ '햇반' 따라잡아라… 2위 오뚜기, 농심·동원 등 맹추격

즉석밥 시장은 현재 CJ제일제당이 56.9%의 시장점유율(AC닐슨 조사결과, 2014년 1~10월 기준)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뒤를 오뚜기가 31.6%의 점유율로 무섭게 추격하고 있고, 농심과(5.5%), 동원F&B(2.3%)가 뒤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롯데마트 등 유통업체도 지역의 유명 브랜드 쌀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PB상품을 내놓으며 즉석밥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롯데마트 내에서는 자체 PB상품이 햇반 일부 구성 제품보다 매출량 순위(11월 기준)가 높다. 최근에는 편의점 등으로 판매 채널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가운데 출시 18년 만에 지난달 기준 누적 판매 11억개를 돌파한 CJ제일제당의 햇반은 ‘도정 후 하루 내 갓 지은 밥맛’을 강조한다. CJ제일제당은 2006년 ‘3일 내 도정한 쌀’로 생산한 햇반을 선보인 데 이어, 2010년부터는 아예 국내 최초로 당일 도정한 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정효영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쌀가공팀장은 “쌀은 도정 이후 기간이 지남에 따라 신선도에 변화가 생긴다”며 “당일 도정한 쌀로 지은 햇반은 쌀의 신선도가 최상의 상태일 때 지어져 차별화된 밥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햇반은 210g 중량의 햇반과 큰햇반(300g), 작은햇반(130g)으로 나뉘어 출시되고 있다.

즉석밥 시장 부동의 1위인 CJ제일제당을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는 오뚜기가 내놓고 있는 제품은 ‘오뚜기밥’이다. 경기미와 지하 150m 암반수를 사용해 밥을 짓는다는 점을 특장점으로 내세운다. 업체 측 설명에 따르면, 오뚜기는 업계 중 가장 최신 설비(2012년 9월 설치)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오뚜기는 카레와 3분 요리 등 레토르트 소스와 짝을 이룬 ‘세트밥’ 제품을 선보이며 즉석밥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소스를 부어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별다른 고민없이 한 끼 식사가 완성되는 터라 1인 가구 및 야외 활동객에 인기가 높다. 오뚜기밥은 지난 2008년 1월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의 우주식으로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210g의 기본 중량 외에도 150g 중량의 오뚜기 작은밥이 판매되고 있다.

현재 시장점유율 3위인 농심은 2002년 즉석밥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농심 햅쌀밥’을 출시했다. 국내 최우수 브랜드쌀로 알려진 철새도래지쌀로 만들어 밥맛과 조직감, 윤기 등에서 탁월한 품질을 자랑한다는 게 농심측의 설명이다. 햅쌀밥은 일반 햅쌀밥(210g)과 햅쌀큰밥(300g) 등 2종류 제품으로 나뉘어 판매되고 있다. 더불어 미질이 우수한 쌀 품종인 ‘고시히카리쌀’로 만들었다는 ‘고시히카리쌀밥’도 농심의 주력 상품 중 하나다. 다음으로 동원 F&B에서 내놓은 ‘쎈쿡 찰진밥’의 특징은 3,000기압의 초고압 공법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곡물은 3,000기압의 압력을 받으면 부드러워지고 수분을 더 잘 흡수하게 된다고 알려졌는데, 동원F&B는 이런 특징을 제조 과정에 반영해 쌀의 찰기를 높였다.

요리 전문 포털 메뉴판닷컴은 최근 이보은 요리연구가(이보은 생활요리연구소 대표)와 유성남 셰프(브루터스 레스토랑 오너셰프), 남기열 원장(보라쿠끼아이오 원장) 등을 초빙해 위 4개사 제품을 직접 시식해보고 맛을 평가해 발표했다. CJ제일제당 햇반은 씹히는 맛이 좋으며 색감, 찰기, 식감 등에서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다. 오뚜기밥의 경우 식어도 찰진 맛이 나지만 밥알에 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농심 햅쌀밥은 “쌀과 쌀 사이 공기층이 잘 유지되어 식감이 좋고 윤기, 색, 찰진 정도가 고루 어우러진다”며 호평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동원F&B의 쎈쿡은 찰진밥이라는 제품 이름처럼 4가지 제품 중 가장 진밥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사람마다 선호도가 갈릴 것이라는 평이 나왔다.

급할 때 먹는 즉석밥, 이제는 '건강식'으로 진화 시도

즉석밥의 인기가 갈수록 뜨거워지자 각 업체들은 이제 품질 경쟁에 주력하고 있다. 현미·잡곡이 들어간 제품과 더불어 품종 개량으로 영양소 함유량을 높인 기능성 밥까지 출시돼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즉석 잡곡밥은 매년 2배 가까이 성장을 거듭하며 지난해 즉석밥 시장 전체의 10%를 넘어서는 등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얼마 전 ‘큰눈영양쌀밥’을 야심차게 내놨다. 서울대 농대와 함께 공동 개발한 ‘큰눈영양쌀(서농 17호)’로 만든 햇반이다. 큰눈영양쌀은 쌀의 영양이 모여 있는 쌀눈 부위를 기존 쌀보다 3배 더 키워 만든 신 품종이다. 이 쌀로 만든 즉석밥에는 항산화 성분 감마오리자놀과 필수 지방산 리놀렌산, 비타민 등의 영양분이 담겨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CJ제일제당은 앞으로도 농촌진흥청과 대학 등과의 연계를 통해 가공밥에 적합한 맞춤형 품종, 건강 기능성을 갖춘 품종 등에 대한 연구 개발을 강화할 계획이다.

경쟁업체인 오뚜기는 발아현미 50%에 국내산 찹쌀을 혼합한 발아현미밥을 즉석밥 형태로 내놨다. 싹을 조금만 발아시켜 싹이 트면서 생성되는 발아현미의 영양분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도록 했다. 농심은 지난해 美 타임지 선정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알려진 귀리를 혼합해 만든 ‘농심 햅쌀밥 귀리밥’과 다섯가지 현미로 만든 ‘농심 햅쌀밥 오(五)현미밥’, ‘농심 햅쌀밥 흑미밥’을 판매 중이다. 동원F&B는 ‘100% 발아현미밥’과 ‘쎈쿡 찰진약밥’, ‘쎈쿡 건강한 영양보리밥’ 등의 잡곡밥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밥 문화가 비슷한 일본에서는 1인 당 연간 11개의 즉석밥을 먹는데, 현재 국내는 4.5개 수준”이라면서 “국내 즉석밥 시장의 잠재 성장 가능성이 높아 4년 내에 시장 규모가 현재의 2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즉석밥이 건강식으로 진화하는 양상이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한 품종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면서 "국산 쌀의 경쟁력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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