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차명계좌' 기준 모호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캡처
오는 29일부터 개정 금융실명제법이 시행된다. 앞으로 배우자 명의로 6억원, 자녀 명의로 5,000만원, 부모 명의로는 3,000만원까지 차명계좌 예금이 가능하지만 이 범위를 넘을 경우 명의를 빌린 사람과 빌려준 사람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기존에는 증여세 회피 목적 등으로 차명계좌를 만들었을 경우 적발돼도 가산세만 내면 됐다.

구체적으로는 불법 재산 은닉, 자금 세탁, 조세 포탈, 강제 추심 회피 등을 목적으로 한 차명 금융거래가 모두 해당된다. 재력가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회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에 돈을 분산(조세포탈)했다면, 이는 불법 차명거래에 해당한다. 60대 노인이 비과세 혜택을 추가로 받고자 다른 노인의 명의를 빌려 생계형 저축에 돈을 넣어두는 것도 금지 대상에 포함된다. 채무자가 채권자에 돈을 갚지 않으려고 본인 자금을 타인 계좌에 예금하는 경우, 비자금 세탁 용도로 타인 계좌를 사용하는 경우, 불법 도박 등 불법으로 얻은 자금을 숨기기 위해 타인 계좌를 이용하는 경우 등도 모두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모든 차명거래가 불법 행위로 인정되는 건 아니다. 가족의 경우 증여세 면제 범위 내에서 명의를 빌려줄 수 있다. 현행법상 10년 합산 기준으로 배우자에게는 6억원, 자녀에게는 5,000만원(미성년 자녀는 2,000만원), 부모에게는 3,000만원, 기타 친족에게는 500만원까지 증여세가 감면돼 해당 범위 내에서는 차명계좌가 있어도 문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금 10억원을 보유한 자산가 C씨가 배우자 명의로 6억원, 성년 자녀 명의로 5,000만원, 양 부모 명의로 각각 3,000만원 규모의 차명계좌를 보유했다면 개정법이 시행되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자녀 명의의 계좌에 1억원이 더 들어가 있다면 5,000만원을 C씨 본인 계좌로 되돌려 놔야 한다.

또 하나 유의해야 할 사항은 차명계좌에 넣어둔 돈이 명의자의 소유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씨라는 사람이 친구 B씨를 믿어 그의 명의의 차명계좌에 비자금을 임금했더라도 B씨가 변심해 계좌 자금의 소유권을 주장하면 A씨는 돈을 떼일 수밖에 없다. 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해도 차명거래 행적이 드러나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듯 차명거래의 위험도를 높여 결과적으로 차명거래 유인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개정법의 취지이기도 하다.

아울러 동창회·계·부녀회 등 친목 모임을 관리하는 총무의 계좌나 문중, 종교단체의 자산을 관리하는 대표자의 계좌는 '선의의 차명계좌'로 인정돼 처벌받지 않는다. 후견인인 부모가 미성년 자녀의 금융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부모 명의로 예금하는 경우도 선의의 차명거래로 인정돼 처벌에선 제외된다. 하지만 '선의의 차명계좌'의 범위가 불분명해 논란이 만만치 않다. 현실적으로 수많은 형태의 친목 모임이 존재하고 이들의 불법 차명거래 여부를 가려낼 경계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의의 차명거래 범위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못해 실명제의 맹점이 될 가능성은 있다"며 "단체가 차명거래 여부를 자발적으로 사전 등록하도록 하는 등 선의 여부를 가리는 기준점을 세우면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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