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맛 대결 ① 라면 편]1963년 일본에서 기술 전수 받아 '삼양 라면' 첫 출시1980년대 신라면 탄생과 우지 파동으로 농심 선두 굳혀2010년대 오뚜기·팔도 등 성장하면서 라면 시장 각축전

농심 신라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과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그리고 홈플러스와 팔도가 새로 선보인 식도라면과 오뚜기 진라면.

*편집자 주=인터넷한국일보가 발간하는 데일리한국은 최근 가전 제품과 주류 제조 업체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다룬 '가전 전쟁' 과 '주류 천하' 기획 시리즈 기사를 잇따라 연재했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이어 식품과 음료수 분야의 대결을 다루는 '맛 대결'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맛 대결'에서는 라면, 커피, 치킨, 빵, 햄버거, 우유 등 10여 가지 식품 분야의 살아남기 경쟁을 다루게 됩니다.

[데일리한국 동효정 기자] 1958년 일본의 닛신식품 회장 안도 모모후쿠는 밀가루로 국수 모양을 만들어 면을 기름에 튀겼다. 우연히 다시 뜨거운 물에 넣고 끓이니 먹기 좋은 원래 상태로 돌아간 걸 발견했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초로 유탕면인 '치킨 라면'을 발명했다. 이후 일본에서 다른 식품업체들까지 가세하면서 라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1963년 삼양식품 전윤중 회장이 일본의 묘조식품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그해 9월 '삼양 라면'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국내에 처음 출시된 라면은 끓이기 전 특유의 꼬불꼬불하고 딱딱한 면발이 생소했던 탓에 옷감이나 실로 오해받아 국민들이 먹는 걸 꺼렸다. 삼양식품은 직원의 가족까지 총동원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료 시식 행사를 했고 국민들에게 라면 끓이는 법부터 차근차근 알리며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라면의 원조는 삼양… 1980년대 농심이 선두로 부상

1960년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라면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됐다.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주식회사는 1965년 ‘롯데 라면’을 출시하면서 라면 시장에 진출했다. 삼양 라면과 롯데 라면을 비롯해, ‘풍년 라면’(풍년식품), ‘닭표 라면’(신한제분), ‘해표 라면’(동방유량), ‘아리랑 라면’(풍국제면), ‘해피 라면’, ‘스타 라면’ 등 8개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시장 점유율은 삼양식품이 80% 이상을 차지했고, 나머지 업체들이 20%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었다.

1969년 삼양과 롯데공업주식회사만이 살아남아 두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으로 정착됐다. 이 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는 10%에 불과한 시장점유율과 판매 부진으로 대규모의 적자를 기록했고 기업 존폐의 위기 상황까지 몰렸다. 롯데공업주식회사는 부채 비율이 1,000%에 달했다. 그 당시 '농심라면'이 인기를 끌자 회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한 후 다양한 제품들로 승부수를 띄워 고비를 넘겼다.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성장한 경제 흐름 속에 라면 시장에도 '황금기'가 찾아왔다. 농심은 ‘너구리’(1982), ‘육개장사발면(1982)’, ‘안성탕면(1983)’, ‘짜파게티(1984)’를, 팔도(당시 한국야쿠르트)는 ‘팔도비빔면’(1984년)과 ‘도시락’(1986년), 오뚜기는 ‘진라면’(1988년) 을 출시하는 등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베스트셀러들을 앞다투어 출시했다.

1985년 삼양식품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농심은 이듬해 공전의 히트 상품인 '신라면'으로 시장점유율 50%를 넘겼고, 30년 가까이 60%가 넘는 점유율로 현재까지 선두를 지키고 있다.

간편하고 다양한 맛으로 사랑받던 라면 시장은 1989년 갑자기 국내 유명 식품업체들이 라면,마가린,쇼트닝 등에 공업용 우지(소기름)를 사용한다는 검찰 발표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소비자단체들은 특히 삼양라면 불매운동을 벌여 삼양식품은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고 100억원 어치 이상의 시제품을 수거했다. 삼양식품은 우지 파동으로 직원 1,000여 명을 정리했고, 라면 시장 점유율이 31%에서 18~19%로 내려갔다. 1994년 1월, 삼양라면은 판매를 재개했다.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고자 국내 라면의 대명사였던 삼양라면의 이름은 물론 포장의 디자인까지 그대로 가져와 ‘라면의 원조는 삼양’임을 강조했지만, 이미 사람들이 신라면(농심)의 매운맛에 길들여진 후였다.

라면 시장 각축전 속 오뚜기 "류현진~라면"으로 상승세

라면의 원조인 삼양식품은 이제 국내 시장 3위까지 떨어졌다. 올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 증가한 809억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5.3% 증가한 35억원, 영업이익률은 4.3%를 기록했다. 그나마 매운맛의 끝을 보여준 '불닭볶음면'의 선전이 매출 상승에 한몫했다. 매출액 상승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1년 넘게 3위에 머무르면서 좀처럼 회복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2위인 오뚜기는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며 앞서 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AC닐슨의 라면 시장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삼양식품은 12.4%, 오뚜기는 18%를 기록했다. 오뚜기가 지난해 처음으로 라면 시장 연간 점유율에서 삼양식품을 제치고 2위에 오른 후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오뚜기의 선전은 마케팅의 ‘홈런’ 사례로 꼽힐 만하다. 지난해 11월부터 류현진 선수를 기용하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라면은 소비자의 생활에 매우 가까이 있어서 유행과 이슈에 민감한 품목인데, 류 선수 경기 앞·뒤로 진라면 광고가 나가면서 인지도와 매출이 동시에 올랐다"고 말했다. 해당 마트의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매출 중 오뚜기는 18%로 전년(15.4%)대비 2.6%포인트 늘었다.

 

 

 

LA다저스 류현진을 광고모델로 내세운 오뚜기 진라면.

 

MLB에서 성공한 '괴물 투수' 류현진의 인기와 "류현진~라면"이라는 광고 문구로 올해 상반기 매출을 20%나 끌어올렸다. 농심은 대한민국 최고의 라면을 자부하며 배우 송강호와 유해진을 모델로 기용해 맞불 작전에 들어갔지만 오뚜기의 돌풍을 막는 데 효과를 보진 못 했다.

라면 시장에 매운 맛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오뚜기는 제품이 순한 맛·매운 맛 두 가지 종류라는 점을 홍보해 소비자를 끌어 모았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자 회사 자체적으로 나트륨 저감화 운동에 적극 나서 진라면 110g 기준 나트륨 함량을 1,970mg에서 1,540mg로 낮췄다.

오뚜기가 후속 인기 제품으로 밀고 있는 '참깨라면'도 시장의 호응을 얻으며 상승세에 불을 붙였다. 용기면으로 출시된 이 제품의 특징은 다른 상품에는 없는 계란블럭과 참기름을 넣은, 부드럽고 고소한 맛과 쫄깃한 면발이다. 개성 있는 상품인 만큼 젊은층이 많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한 마케팅이 제대로 적중했다. "고소한 맛이 새롭다"는 입소문이 젊은층 사이에서 퍼지면서 매출로 연결된 것이다. 지난해 3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용기면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 제품인 신라면(15%)·육개장(11%)에 이어 참깨라면(10%)이 신흥 강자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오뚜기는 라면업계에서 가장 다양한 제품을 보유하고 다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강점"이라며 "시장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빨간 국물' '하얀 국물' 시대에서 이제는 '국물 없는 라면'도 등장

2013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라면 브랜드는 농심의 '신라면'(39%)이다. 다음으로는 ‘삼양라면(삼양)’ 14%, ‘안성탕면(농심)’ 8%, ‘너구리(농심)’ 6%, ‘진라면(오뚜기)’ 4% 등 순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순위는 같지만 그 안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신라면의 선호도는 49%에서 10%포인트 가량 감소했다.

이 같은 시장의 변화는 소비자의 '입맛'에 따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모디슈머 열풍'을 언급하며 "소비자들이 다양한 라면을 섞는 등 새로운 레시피를 직접 개발하고 있다"면서 "최근 뜨는 '국물 없는 라면'과 같이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기에 적합한 라면의 매출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후반에는 하얀 국물 라면이 인기를 끌었으나 2012년 들어 급속하게 퇴조하며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닭고기 육수와 청양고추로 매운 맛을 더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꼬꼬면'은 라면 시장에 하얀 국물 열풍을 불게 했다. 그 당시 하얀 국물의 인기는 마트 오픈 시작과 함께 매대의 상품이 동이 날 정도로 뜨거웠다. 소비자들은 다시 익숙한 '빨간 국물'을 찾아 돌아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농심의 신라면, 안성탕면 등 전통의 빨간 국물 라면들의 인기 회복과, 불황에 진짜진짜, 고추비빔면 등 매운 맛 라면을 선호하는 시장 트렌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2012년 들어 용기면 판매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캠핑이나 등산 등 여가 활동과 문화 생활의 발달, 편의점 확대로 용기면의 인기가 높아져 봉지면과 용기면 비율이 7:3으로 좁혀졌다.

 

 

 

 

라면시장이 지난해 매출 규모 2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라면 시장은 2011년 1조9,600억원, 2012년 1조9,800억원, 2013년 2조100억원으로 더디지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세계라면협회(WINA)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세계의 라면 판매량은 1,055억 9,000만 개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된 라면은 36억3,000만개다. 한국 1인 라면 소비량은 72개로, 2위인 일본(43개)이나 3위 중국(33개)보다 월등히 많다.

이제 라면업계는 봉지라면, 용기라면을 넘어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각자의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삼양식품은 제2롯데월드에 라면 요리 전문 브랜드 ‘LAMEN;S’를 열고 라면 프랜차이즈 시장에 진출했다. 농심은 '라면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해외 시장 진출에 더욱 힘을 쓸 예정이다. 오뚜기는 뜨거운 라면이 생각나는 겨울인만큼 연말까지 국내 시장 점유율 20%에 도전하며, 팔도는 제품 디자인을 새롭게 하는가 하면 홈플러스와 손을 잡고 400원대 '식도락면'을 출시해 새로운 돌풍을 준비하고 있다.

라면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라면 시장이 2조원대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업계의 치열한 전쟁을 통한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과 소비자들의 지속적 관심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건강을 생각하고 프리미엄을 좋아하는 새로운 세대를 겨냥한 제품들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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