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주류 천하 ③ 막걸리 편]
'막 걸러낸 술' 막걸리… 알고 보면 비싼 술
서울탁주-국순당, 침체된 막걸리 시장 살리려 분투

캔막걸리, 병막걸리도 개발… 전통 막걸리 진화

막걸리 업체들이 막걸리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신수지 기자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매년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이 ‘막걸리의 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날은 갈수록 식어가는 막걸리의 인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농수산식품공사가 2011년부터 지정한 날이다. 애주가들은 이날 전국의 내로라하는 막걸리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지난 주 한강을 찾았다가 우연히 사전 시음 행사에 참가한 이모(40)씨는 “최근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소맥'(소주+맥주)을 자주 찾았었는데, 왜 막걸리의 맛을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오랜만에 마셔보니 새삼 막걸리의 맛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막걸리는 ‘서민의 친구’이자 ‘농민의 술’로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해온 매력적인 술이다. 농민들의 일터에 늘 막걸리 한 주전자가 놓여 있었고, 1950~60년대 치열한 삶의 현장에는 막걸리가 함께 했다. 지금도 막걸리를 즐겨 찾는 이들은 시큼털털한 맛이 중독적인데다 허기까지 채워준다며 ‘국민주’라 예찬한다. 외산 술의 인기와 막걸리 수출 감소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지만, 막걸리는 한국인이 버릴 수 없는 술이라는 뜻이다. 서울탁주, 국순당을 비롯한 수많은 업체들이 ‘막걸리 붐 다시 일으키기’에 힘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막걸리는 알고 보면 '비싼' 술

막걸리는 고두밥과 누룩, 물을 섞어 발효·숙성시켜서 나온 술에서 목으로 넘기기 힘든, 큰 술지게미(술 찌꺼기)만 걸러낸 것이다. 탁주라고도 부른다. 곡물의 고운 알갱이가 들어 있어 불투명한 색을 띄기 때문이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 걸러낸 술'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그렇다면 막걸리는 이름만큼 값싼 술일까. 많은 이들에게 '저렴한 술'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지만, 제조원가만 따져본다면 막걸리는 사실 비싼 술이다. 맥주 한 병의 세금을 뺀 순매출 단가는 478원, 소주는 394원인데, 막걸리는 693원이다. 세금이 72%가량 되는 맥주와 소주, 위스키 등에 비해 막걸리는 주세가 5%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급 브랜드 쌀과 현대적인 위생시설, 오랜 시간의 숙성을 통한 고급화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영양 가치도 높다. 막걸리는 물 80%에 알코올, 단백질, 탄수화물 10%로 구성돼 있다. 남은 10%는 식이섬유와 비타민 B, C, 유산균, 효모 등 풍부한 영양소로 채워진다. 특히 장 활동을 촉진하는 유산균은 막걸리 1병(750ml)에 일반 요구르트(65ml) 100~120병에 해당하는 양이 담겨 있다. 최근에는 막걸리의 항암물질 성분이 맥주나 와인보다 최대 25배나 많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칼로리도 생각만큼 높지 않다. 술 100ml를 기준으로 막걸리는 40~70㎉, 와인은 70~74㎉, 소주는 141㎉, 위스키는 250㎉다.

서울탁주의 '서울 장수 막걸리'(왼쪽)와 국순당의 '대박 막걸리'.

서울탁주-국순당이 막걸리 시장 대부분 차지, 군소업체는 800여개

국내 막걸리 시장점유율은 서울탁주가 40~50%, 국순당이 15~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높은 막걸리 시장에서 설립 52주년 째인 서울 탁주를 후발업체가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머지는 우리술과 배상면주가, 부산합동양조 등을 포함한 800여 개의 업체들이 나누어 갖고 있다. 막걸리가 우리의 전통 술인데다 일단 시장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서 다른 주류 업계에 비해 경쟁보다는 상생을 추구하는 상황이다.

서울탁주와 국순당 두 업체 중 서울탁주의 스테디셀러 제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초록색 페트병의 ‘장수 생막걸리’다. 2007년 대한민국 주류 품평회 탁주 부문 '명품주'를 수상했으며, 수도권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다. '살아있는 효모'를 강조해 생막걸리 대중화에 기여한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업체 측에 따르면 이 제품은 백미를 사용해 장기저온숙성 방식으로 만들어 영양 성분을 높였으며, 생막걸리여서 효모균이 그대로 살아 있다. 자연발효에 의한 탄산과 어울려 감칠맛과 청량감이 높고, 술을 마신 뒤 으레 경험하는 트림과 숙취도 거의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막걸리 평가 사이트 주로주로에서는 단맛과 신맛, 탄산 면에서 각각 5점 만점에 3점을 받았다. 평소 '장수 생막걸리'를 즐겨 먹는다는 한모(45)씨는 “장수 막걸리는 양조장이 8개여서 제품마다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단맛과 신맛, 탄산의 조화가 잘돼 있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같은 업체의 월매 쌀 먹걸리도 인기가 높다. 장수 생막걸리와는 달리 이 제품은 살균 탁주에 속하는데, 살균탁주는 탁주의 효모와 유산균을 살균해 발효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하여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월매 쌀 막걸리의 유통기한이 12개월이나 되는 것은 이같은 이유때문이다. 이 제품은 평가 사이트의 단맛, 탄산 면에서 3점, 신맛에서는 2.5점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장수 막걸리는 워낙 인지도가 높다보니 주점 등 업소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면서 “판매 매장에서도 가장 먼저 팔려나가는 제품이 서울탁주 제품”이라고 말했다.

서울탁주 막걸리 옆에 종종 함께 진열되어 있는 제품은 국순당의 '대박 막걸리'다. 대박 막걸리는 2013년 시장에 나온 제품으로, 9개월 동안 2,000만 병 이상이 판매되면서 국순당의 실적 향상에 희망을 줬다. 현재 이 제품은 국순당의 막걸리 제품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우국생’과 ‘국순당 생막걸리’를 제치고 국순당 내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통주업계로서는 드물게 인기 연예인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워 광고하고, 달지 않은 깔끔한 맛을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 국순당 측에 따르면, 대박 막걸리는 3단 발효법과 6℃이하 냉장숙성 공법을 도입하여 단 맛을 줄이면서 강하게 느껴지는 막걸리의 불필요한 잡맛을 최대한 없앴다. 덕분에 다른 음식과의 어울림이 뛰어나며 막걸리 고유의 맛과 신선함이 잘 유지된다는 평을 듣는다. 또 다른 효자 제품은 우국생인데, 수확 1년 내의 쌀로 빚은 국순당의 생막걸리로 2010년 강원도 우리술 품평회 생막걸리 부분에서 수상했다. 인기 요인은 발효제어 기술과 차별화된 디자인이다. 우국생은 단맛, 신맛, 탄산에 대한 막걸리 품평 사이트 평가에서 각각 3점, 2.5점, 3.5점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국순당은 장수 막걸리보다 마케팅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 젊은층 사이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면서 “목넘김이 부드러워 가장 입맛에 맞는다며 국순당 막걸리만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소비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장을 놓고 보았을 때 최근 몇 년 새 막걸리의 인기는 시들한 추세다. 수입맥주의 인기와 해외 수출 물량의 급감 때문이다. 실제 국내 막걸리 출하량은 2010년 38만 5,740㎘에서 2011년 44만 3,778㎘로 늘었으나, 2012년 41만 4,550㎘, 2013년 38만㎘로 크게 떨어졌다. 올해도 7월까지 출하량이 22만㎘ 정도에 그쳤다. 수입 맥주, 와인, 사케 등의 공세가 거센 가운데 다양한 소비자 취향을 막걸리 업체들이 따라가지 못한 점이 부진의 이유로 꼽힌다. 디자인 및 마케팅 방식이 정체돼 있는 것도 부진 이유 중 하나다.

막걸리 수출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막걸리 수출 규모는 지난 2011년 한류 열풍으로 5,274만 달러(전년 대비 176.2% 급증)라는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으나 2012년에는 3,689만 달러(-30.0%), 2013년 1,886만 달러(-48.9%)로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규모가 1,886만 달러(-48.9%)로 떨어졌고, 올 상반기에는 1,044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7% 줄었다. 막걸리 수출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 막걸리 시장에서의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여기에는 일본 내에서 한류 바람이 한풀 꺾이고, 일본 소비자들이 도수가 낮은 술이나 무알콜 음료를 선호하게 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엔화 약세가 지속된 것도 한몫했다.

전통 막걸리의 진화… 캔막걸리, 병막걸리 등장

직장인 박모(31)씨는 평소 소주, 맥주 등을 즐겨 마시는 주당이다. 하지만 다른 술과는 달리 페트병에 든 막걸리를 사 가려면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박씨는 “세련된 디자인의 캔 제품이 더 많이 유통되면 막걸리가 올드하다는 이미지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국순당은 최근 캔막걸리 '아이싱'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며 시장 도약을 엿보고 있다. 아이싱은 그동안 막걸리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슈퍼쿨링(Super-cooling) 제조공법을 도입하여 청량감을 높였으며, 포장디자인도 막걸리 분위기를 완전히 배제하고 간편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캔 형태로 개발됐다. 열대과일인 자몽과즙을 첨가하고, 막걸리 도수를 기존의 6도에서 4도로 낮춰 여성 소비자와 술을 즐기지 않는 소비층에게도 어필하기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아이싱은 막걸리 업계 최초로 젊은 층이 주 고객인 맥주전문점에서도 판매되는 등 인기를 높여나가고 있다.

서울탁주도 20~30대 젊은 소비자를 겨냥해 알코올 도수를 3도로 낮추고 달콤한 향과 청량감을 더한 캔막걸리 '이프' 판매에 힘쓰고 있다. 전통주업체 우리술도 막걸리에 맥주의 맛과 탄산을 주입한 재즈막걸리와 미쓰리 유자 막걸리로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통주를 토대로 만든 주점도 업체들이 찾은 성장 활로 중 하나다. 국순당은 지난 4월 신촌에 뷔페식 셀프 주점 Mr.B (미스터 비)를 런칭했고, 배상면주가는 매장 내 ‘도심 양조장’을 운영하는 직영 전통주점 느린마을양조장&펍을 선보였다. 막걸리 칵테일, 막걸리 스무디 등 퓨전 음료를 판매하는 가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해외 수출에 있어서는 일본 내에서 침체된 시장을 살리기 위해한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규 수출처를 개척하는 분위기다. 국순당의 경우에는 올해 인도 등 국가에 새로 제품 수출을 시작했으며, 중국 및 대만 등에서도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서울 탁주는 최근 동남아 및 미주 위주로 매출 신장이 있는 상태다.

주류업계 전문가는 “막걸리 시장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맛을 개선한 제품들이 더욱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면서 “시장 트렌드에 맞게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포장을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병, 사기병 등의 재질로 바꾸는 등 특별함을 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아예 알코올 도수를 높여 위스키, 사케처럼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중국 내에서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영향으로 한국산 술에 대한 인식이 날로 좋아지고 있고, 동남아도 새로운 수출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나라 별로 차별화된 전략을 세워 마케팅 수준과 제품 품질을 높여간다면 시장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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