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이 동부제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뗀다. 김 회장이 제조업 부문에서 키워온 계열사들이 하나 둘 그의 손을 떠날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부그룹이 금융업 위주로 재편되고, 재무개선 작업또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동부제철과 채권단은 23일 경영정상화계획 이행 약정(MOU)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했다. 이번 MOU에는 김 회장 등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100대 1로 차등 감자해 김 회장의 경영권을 상실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회장은 그간 회사의 차입금 1조 3,000억 원에 대해 개인보증을 서고, 전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등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유동성 부족 사태가 지속되면서 채권단의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게 됐다. 김 회장은 "전기로 제철사업을 성공시키고자 했던 회사의 꿈이 잠시 좌절됐지만 끝까지 분투해달라"며 제조업 부문 주력 계열사의 경영권을 내려놓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현재의 30대 대기업 집단에서는 보기 드문 1세 경영인이다.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인 1969년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창업해 20대 중반의 나이에 대표이사를 맡았다. 1970년대 초반 일찌감치 중동 건설시장에 눈을 뜬 그는 미륭건설의 해외수주 실적을 바탕으로 재원을 모아 동부고속, 동부상호신용금고 등을 세우고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외형을 비약적으로 키웠다. 세를 몰아 1980년대 중반 제철업에 뛰어들었고 1997년 동부전자(동부하이텍)를 세워 반도체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동부제철은 김 회장이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고철이라는 자원을 원료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큰 꿈을 품고 키워온 회사다. 그러나 동부제철은 2009년부터 1조 3,000억 원에 달하는 사업 투자비용과 시황악화 및 주원료인 고철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매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된 반도체 사업도 15년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고전을 거듭했으며, 전자·철강 등 제조부문 계열사에 투자된 막대한 재원은 자금사정 악화로 이어졌다. 결국 동부그룹은 지난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3조원 규모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해야 했다.

동부그룹이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할 회사채 규모는 11월 만기인 동부건설 344억 원과 12월 만기인 동부팜한농 300억 원 등 총 644억 원이다. 동부건설에 500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조기 상환이 도래할 경우에는 1,144억 원이 된다. 동부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부하이텍과 동부특수강, 동부발전당진 지분 등 시장에 내놓은 매물이 순조롭게 매각돼야 하는 상황이다.

동부제철 대표이사를 사퇴한 김 회장은 이제 그룹 내에서 유지하는 공식 직함은 동부대우전자와 동부메탈 대표이사뿐이다. 그룹 회장은 비공식적인 직함이지만 오너로서의 지위는 유지하는 것이다. 장남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의 지분도 금융권에 상당 부분 담보로 설정돼 있지만 일단 지분 차제를 유지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동부그룹은 동부발전당진과 동부특수강, 동부하이텍 지분 등 시장에 내놓은 매물이 순조롭게 매각돼 유동성 위기를 탈출해야 재도약을 모색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동부그룹은 동부제철 외에도 동부특수강, 동부발전당진, 동부하이텍 등을 시장에 내놓은 상태다. 동부그룹의 비금융 계열사 중 남은 곳은 동부건설과 비금융 지주사 격인 동부CNI, 지난해 인수한 동부대우전자와 농업 계열사인 동부팜한농 등이다.

이와 관련 동부제철 관계자는 "동부제철은 앞으로 기존 경영활동을 유지하면서 경영정상화를 순조롭게 진행해나갈 예정"이라면서 "이번 MOU 체결 이후 전반적인 상황은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하이텍, 동부특수강 등 계열사들의 매각이 거의 완료단계에 이르렀다"면서 "특히 동부특수강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코앞"이라고 강조했다. 회사채를 충분히 상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더불어 "앞으로 비금융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계속 해 나갈 예정이며 그룹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들은 지속적으로 진행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