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가전 전쟁 ⑥ 청소기 편]
진공청소기 외국업체 시대 막 내려… 삼성·LG 안방시장 진입
먼지 압축 기능·무선 청소기 진화로 기술 혁신 주도권 싸움
로봇 청소기 시장, 모뉴엘·유진로봇 국내 중견 기업 '약진'
한국식 마루와 친화성 있는 국산으로 돌아오는 주부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진공청소기는 외국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독일 지멘스와 밀레,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영국 다이슨 등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TV, 냉장고 등 다른 가전제품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때문에 해외 업체가 설 자리가 없었지만 청소기만큼은 예외였다. 가격은 비싸지만 성능이나 디자인, 편의성 등이 뛰어났고 주요 고객인 주부들에게 ‘수입 명품’으로 인식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젊은 신혼부부의 혼수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직접 써본 소비자들은 다시 국내파로 복귀하는 분위기다.
15일 업계 관계자는 "외국 제품이 국내 시장 진입 초반 점유율을 높이려 값싼 제품을 시작으로 시장 공세를 노렸지만 카펫이나 대리석 문화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보인 것과 달리 우리는 바닥 마루 문화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사용자가 느끼는 흡입력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외국에서 소비자 반응이 좋더라도 국내에서는 '글쎄'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국내 생활 환경에 맞는 기술만큼은 국내 제품이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매장마다 외국제품만 따로 판매하는 파견 직원이 있어서 외국 제품 위주로 홍보한다. 소비자들이 '이번에는 꼭 LG나 삼성제품으로 사야지' 하고 결심하고 방문했다가도 외국 제품 전문 상담가의 말에 현혹돼 매번 구매한 뒤 후회하는 고객들도 많았다"고 귀띔했다.
안방 시장을 외국 업체에 내줬던 삼성전자는 올해 초 디자인을 강화하고 사용성을 높인 모션싱크로 적극 공략에 나섰다. 모션싱크는 본체와 바퀴가 따로 움직이는 본체회전 구조를 갖췄다. 청소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어서 기존 청소기의 단점을 보완했다. 모션싱크는 청소기 밖으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99.999% 이상 차단하는 여과 성능을 갖춰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KAF)와 영국알레르기협회(BAF) 등으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첫 제품 출시 후 에너지 효율을 높인 디지털인버터 모터를 채용한 모션싱크와 북미 시장에 맞춘 ‘모션싱크 업라이트’, 물청소까지 가능한 ‘모션싱크 워터클린’을 계속 내놓으며 시장 공략을 가속화했다.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진공청소기 시장에서 약진하면서 시장 자체가 커지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GFK에 따르면 50만원 이상 진공청소기 시장 규모는 지난해 5월 전체 진공청소기 시장의 2% 수준에서 올해는 18%로 비중이 9배 높아졌다. 한 수입 청소기 업체 관계자는 “삼성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 후 (자사 제품이) 오히려 잘 팔리고 있다”며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판매량이 35.5%정도 상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수입 제조사가 국내 1위 제조사인 삼성과 정면 승부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점유율을 일정 부분 빼앗길 수밖에 없다”면서도 “수입 제조사만으로는 시장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삼성의 진입이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먼지까지 잡아라… 더 똑똑해지는 청소기
대전에 사는 주부 이씨(42)는 청소기를 돌린 후 먼지가 쌓인 통을 털어낼 때면 항상 코와 목이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먼지가 안 날리도록 세심하게 털어낸다고 해도 재채기가 나오고 눈까지 충혈돼 피로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침 청소기도 오래돼 흡입력도 약해졌다고 느꼈던 터라 청소기 구입을 위해 알아보던 중 세계 최초로 자동먼지 압축기능을 탑재했다는 LG전자의 '슈퍼 싸이킹' 모델이 눈에 들어왔다.
8년 연속 청소기 부문 브랜드 파워 1위 인증 획득에 성공한 LG 슈퍼 싸이킹3는 주부들의 이러한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제품이다. 자동 먼지압축 기능으로 먼지를 단단히 압축시켜 먼지통을 비울때 먼지날림이 적고 털어낼 필요가 없도록 설계했다. 모터 기술이 강한 LG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모터를 여러 번 감싸고 방진 차음 기술을 개발해 국내 최저 소음인 57dB(데시벨)을 달성했다.
이씨는 내친김에 무선 청소기도 알아보기로 했다. 유선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다보면 줄에 다리가 걸리거나 본체에 발이 부딪히는 경우가 있고 무게 중심 문제로 청소기 본체가 뒤집히는 경우가 생기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가전제품 코너에서 근무하는 판매원은 "그동안 출시된 무선 진공청소기는 유선과 비교해서 가격만 비쌌지 흡입력이 떨어지고 배터리도 빨리 닳는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올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앞다퉈 출시한 무선 청소기는 이 같은 단점을 모두 극복해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과 LG는 '무선 진공 청소기' 시장에서 한판 승부를 펼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8월 프리미엄 무선 청소기 ‘코드제로’를 공개했다. LG전자는 무선 청소기의 흡입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 인버터 모터’를 이 제품에 탑재했다. 이 모터는 LG전자가 2010년부터 세탁기의 다이렉트 드라이브 모터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한 기술이다. 흡입력은 무선 제품 중 최고 수준인 200W를 구현했다. 무선 청소기를 위해 독자 개발한 BLDC(Brushless Direct Current) 모터는 10년 이상 긴 수명·고효율·고성능을 구현하기 때문에 전력은 적게 소비하면서 먼지를 강하게 빨아들일 수 있게 됐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을 적용해 충분한 가동 시간도 확보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코드제로는 최대 출력 80V를 구현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파워팩을 내장해 일반 모드 최대 40분, 강 모드에선 17분 동안 청소가 가능하다. LG관계자는 "청소기의 전체 성능 중 모터가 담당하는 게 80%인데 흡입력과 소음 등과 연결된다"며 "LG전자는 50년 넘게 모터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해서는 자신있다"고 밝혔다.
다른 가전 제품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모션싱크는 LG전자가 잡아야 할 국내 프리미엄 청소기 시장의 강자이다. 지난해 최초 출시한 모션싱크는 1년 동안 월 5,000대 이상 판매됐으며, 업계에선 국내 프리미엄 청소기 시장 점유율 70%가량을 차지한다고 알려진 제품이다. 삼성전자의 무선 진공 청소기는 고성능 배터리를 장착해 전원선을 없앤 ‘모션싱크 코드리스’ 1종과 기존 모션싱크 청소기보다 크기와 무게를 약 3분의 1 줄인 ‘모션싱크 콤팩트’ 2종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모션싱크 풀 라인업 구축은 LG전자의 청소기 시장 반격에 틈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삼성전자 생활가전 사업부 관계자는 "소비자의 다양한 사용 환경을 만족하게 해주는 모션싱크 풀 라인업으로 프리미엄 청소기 시장 주도권을 더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확대되는 로봇청소기 시장, 국내 중견 기업 '눈도장'
국내 중견기업 모뉴엘과 유진 로봇청소기가 꾸준한 성과를 올리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로봇청소기는 선진국형 생활가전으로 해외에서는 북미, 서유럽, 호주 등에서 판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 지난 2010년 이후 매년 평균 30~40% 정도 성장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 규모는 13만대이며, 올해는 20만대 가량 내다보고 있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각 업체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삼성전자, LG전자를 중심으로 이뤄진 대기업이 눈에 띄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뉴엘과 유진로봇이 소리 없이 강한 모습이다.
모뉴엘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로봇청소기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은 중국이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연평균 성장률 50%이상을 기록해 오는 2018년에는 총매출액이 18억위안(한화 약 3,009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서도 모뉴엘 로봇청소기는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독일 ‘플러스 엑스 어워드’ 시상식에서 로봇청소기 클링클링(모델명 MR6800)이 로봇청소기 부분 ‘2014년 최고 제품상’을 받았다.
유진로봇의 약진도 눈에 띈다. 지난달 독일 가전기업 밀레는 지주회사 'Imanto AG'를 통해 최근 유진로봇에 75억원을 투자했다. 유진로봇은 이번 신규 투자자금을 시설투자와 운영자금 등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유진로봇은 밀레에 로봇청소기 5만대를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공급키로 했다. 최근 독일 가전박람회인 '2014 IFA'에서 밀레가 공개한 로봇청소기도 유진로봇이 공급한 ODM 제품이다. 밀레와의 장기적인 사업협력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향후 유진로봇의 수출 물량과 비중도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이 꾸준히 성장함에 따라 앞으로 경쟁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신제품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고, 행남자기가 신규 사업으로 점찍어둔 상태다. 여기에 프리미엄 청소기 시장의 강자인 영국의 다이슨은 또한 지난달 지능형 로봇청소기 ‘다이슨 360 아이’를 공개했다. 다이슨은 로봇청소기 개발에 16년 간 2,800만파운드(약 468억원)를 투입했다. 개발 작업에 참여한 엔지니어 수는 200여명에 달한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모뉴엘, 유진로봇 등의 사례는 국내 중견기업들의 기술력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라며 "지금까지는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과 혁신성으로 로봇청소기라는 틈새시장을 잘 파고들었지만, 저가로 공세 중인 중국업체나 이미 시장을 확보한 다이슨 등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