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브랜드 헤어숍서 2배 차이도… 현직 디자이너 "파마약 값 거의 차이 없어"
"일부 미용실 비싸야 만족하는 심리 이용… 돈 많아 보이는 손님에겐 더 받기도"

미용실 서비스료가 비싼 게 과연 비싼 임대료 때문일까? 서울 청담동의 한 헤어숍. 이곳에선 4만원이면 파마를 할 수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머리카락 끝을 바깥으로 좀 말면 더 예쁠 거 같아." 애인의 권유로 밋밋한 헤어스타일을 바꾸기 위해 C컬 파마를 하기로 맘먹은 이모(26)씨. 그의 눈에 '파격 할인. 펌 8만원'이라는 미용실 광고문구가 들어왔다. 미용실 의자에 앉은 이씨에게 헤어디자이너는 머리카락 끝이 상했다면서 좀 더 비싼 파마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파마약이 비싸야 얼마나 비싸겠어.' 두 시간이 지난 뒤 C컬 파마가 완성됐다. 이씨는 바뀐 머리가 맘에 들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계산대 앞에 선 이씨는 화들짝 놀랐다. 디자이너가 무려 21만원을 요구한 것이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따지자 디자이너는 "좋은 약을 쓴 데다 기본 기장보다 머리가 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마 한 번에 21만원이라니….' 난생 처음 파마에 20만원이 넘는 돈을 쓴 이씨는 분통이 터졌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씨와 같은 사례를 겪었을 법하다. 옥외가격표시제가 있는데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헤어디자이너가 이씨에게 권유한 '좋은 약'은 정말 품질이 좋을까? 비싼 파마약으로 파마를 하면 머릿결이 더 좋아지는 걸까?

◇ "파마약 값 거의 차이 없어… 여성 심리 이용하는 것"

"이렇게 솔직히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5년째 헤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박모(여ㆍ46)씨가 기자에게 뱉은 첫마디다. 박씨는 음악학원을 운영하다 뒤늦게 미용업으로 전업했다. 음악학원에서 일할 때 박씨는 강남 최고급 미용실의 VIP 고객이었다. 그는 미용기술을 배워 직접 미용실을 차리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강남에 있는 미용실에 다닐 땐 비싸고 좋은 파마약으로만 머리했어요. 미용업을 하다 보니 (파마약이 비싸든 싸든 간에 품질에)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았죠. 파마약은 기본적으로 상ㆍ중ㆍ하 3단계로 나뉘지만 단계에 따른 가격 차이는 거의 없어요. 미용실에서 그렇게 구분하고 가격을 차별화할 뿐이에요.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서 싼 약도 나쁜 냄새가 안 나고 품질이 우수해요. 염색약도 마찬가집니다. 고객이 '가장 좋은 걸로 해달라'고 하면 기본적인 파마약에 앰플이나 보호제를 첨가해 몇 만원을 더 받습니다. 앰플은 아무리 비싸도 1만원 정도예요."

박씨는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미용실이 꽤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씨는 "일부 미용실에서 여성들의 과시욕을 이용하는 게 사실"이라며 "강남 같은 데는 비싸야 손님이 더 온다. 파마 값이 싸면 개미 새끼 하나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미용실 두 곳을 운영하는 김모(38)씨의 얘기도 비슷했다. 김씨는 "물론 파마약 값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서비스 질에 따라 파마 가격이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똑같이 자는 거지만 여관에서 자는 것과 호텔에 묵는 건 다르잖아요?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서울시 영등포에서 15년간 미용실을 운영해왔다는 김모(50)씨는 훨씬 더 놀라운 얘기를 들려줬다. "파마약 가격과 파마 질은 거의 관련이 없어요. 머릿결이 좋고 튼튼한 사람일수록 되레 싼 파마약을 써야 합니다. 순한 걸 쓰면 파마가 안 돼요. 반면 머릿결이 안 좋은 사람들은 모발 손상이 적은 파마약을 써야 합니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나 좋은 약 안 좋은 약 따지는 거예요. 비싼 파마약과 싼 파마약의 차이가 몇 천원에 불과하다니까요."

그는 "세미나에서 헤어디자이너들끼리 주고받은 얘기를 우연찮게 들었는데 돈이 많아 보이는 고객에겐 돈을 더 받는다고 하더라"며 "심지어 미용 강사로부터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 천차만별 미용 가격,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미용업의 희한한 관례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기자가 국내 유명 브랜드 헤어숍 네 곳의 서비스료를 조사했더니 같은 브랜드임에도 입점 위치에 따라 가격차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일 브랜드 헤어숍에서 많게는 두 배나 많은 요금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는 같은 지역에 있는 동일 브랜드 헤어숍에서조차 가격이 달랐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중국에도 매장을 두고 있는 L헤어숍에 파마 및 염색 가격을 문의했다. 서울시 홍대점 관계자는 "단발머리 기준으로 염색은 12만원, 파마는 15만원, 열펌 등 특수 파마는 25만원"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머릿결을 덜 상하게 하는 클리닉을 추가하면 12만원을 더 내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 부천점 가격은 훨씬 쌌다. 염색ㆍ파마는 8만원, 특수 파마는 12만~13만원이라고 했다. 두 매장 관계자는 "어떤 디자이너에게 서비스를 받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고 머리 길이가 길면 비용이 추가된다"고 공통적으로 답했다.

B헤어숍은 한 동네에 입점한 매장에서도 가격차를 보였다. 서울시 명동1호점에선 염색이 8만~13만원, 파마는 8만~10만원, 특수파마는 17만원이다. 명동2호점은 염색ㆍ파마는 10만원, 특수 파마는 18만원이라고 했다. L헤어숍에서처럼 두 곳 모두 담당 디자이너와 머리 길이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옥외광고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66㎡ 이상 이ㆍ미용실 외부에 가격을 명시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제도의 실효성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6월 서울 주요 미용업소 100여곳을 조사했더니 약 3분의 1(32곳)이 옥외가격표시제를 지키지 않았다. 27곳은 옥외가격표시를 아예 하지 않았고, 5곳은 표시 항목 수(커트ㆍ파마 등 대표 품목 5개)가 기준에 미달했다. 옥외가격표시제를 지킨 73곳 중 66곳은 최저가만 표시했으며, 64곳은 추가 요금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한국소비자원 시장조사국 거래조사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옥외광고표시제가 되레 소비자를 현혹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면서 "소비자가 실제로 지불하는 가격을 표시하고 가격경쟁을 통해 소비자 이익을 증진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담당자에게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황경원 보건복지부 사무관(건강정책국 구강생활건강과)은 "최종 지불 요금표를 개시하도록 옥외광고표시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면서 "다음 달 옥외가격표시제 이행율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용업계는 옥외가격표시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 헤어디자이너는 "옥외가격표시제는 서비스업인 미용업과는 맞지 않다"면서 "염색할 때 염색약만 바르나. 머리도 감기고 마사지도 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사람마다 머리 길이는 물론 머리 손상 정도가 다르다"며 "약을 더 쓰거나 서비스를 추가하면 요금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추가 요금을 놓고 벌어지는 실랑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옥외가격표시제를 보완하는 데는 찬성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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