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생감자로 주정 생산… 수분 함량 많아 분쇄에 애로
"비용 늘지만 우리라도 감자 소비해야 농민 돕는 거 아니겠어요?"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등 희석식 소주에 넣는 주정을 만드는 업체들은 올해 처음으로 감자를 주정 재료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소주는 뭐로 만드는 거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소주를 마시던 김모(27)씨는 문득 소주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졌다. 술자리 친구들에게 물었지만 "물에 알코올을 섞는 거 아냐?"라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 정확한 정보를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맥주를 보리로 만든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소주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 김씨.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마시는 소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지, 식용 알코올이 따로 있는지 김씨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소주는 한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술이다. 2012년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진행한 조사에서 소주는 '15세 이상 국민이 가장 많이 찾은 주류'(알코올 양 기준)의 영예를 안았다. 이렇게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주를 정작 뭐로 만드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주는 대체 어떤 재료로 만드는 걸까. 김씨 친구의 말대로 물에 알코올을 섞으면 소주가 되는 걸까.

◇ 소주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소주 종류는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나뉜다.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등 한국인이 많이 마시는 초록 병에 담긴 건 희석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는 순수한 알코올(주정)을 물로 희석한 것을 말한다. 쌀 보리 옥수수를 찐 뒤 누룩과 섞어 발효해 증류하는 방식으로 제조하는 증류식 소주에 비해 냄새가 안 나고 맛이 담백한 게 특징이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에틸알코올 95%)으로 만든다. 주정에 물을 넣어 에틸알코올 양을 40% 전후로 맞추는데 이 작업을 정제라고 한다. 40%로 희석한 주정은 맛이 거칠고 원료 품질에 따라 향미도 일정하지 않아 설탕, 결정과당, 토마틴 등의 첨가물을 넣는다. 주세법상 주류를 제조ㆍ수입하는 자는 주류의 용기나 상표에 주류 종류, 원료의 명칭 및 함량, 제조일자 및 면세 여부, 유통기한 또는 품질유지기한만 표시하면 되기 때문에 소주병 구석구석을 들여다봐도 첨가물 정보를 알 수 없다. 소주 제조업체들도 '대외비라 알려줄 수 없다'며 정보 공개를 꺼린다. 소주에 어떤 첨가물이 들어가는지 아는 이가 드문 까닭이다. 이로 인해 '사카린 소주 파동'이나 '스테비오사이드 파문'처럼 소주 첨가물로 인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오늘따라 소주 참 달다… 근데 소주가 왜 달까"〉기사 바로 보기)

◇ 소주 주정을 감자로 만든다고?

한국에선 10개 업체가 주정을 만든다. 주정업체들은 정부에서 주정 생산량을 배정받아 대한주정판매에 주정을 공급한다. 생산량을 배정받은 주정업체들은 타피오카(서양 돼지감자), 정부미, 현미, 세미(부서진 쌀), 절간고구마(얇게 썰어 볕에 말린 고구마)로 술을 만든 뒤 증류 방식으로 알코올을 추출해 주정을 만든다. 주정업체는 국세청이나 농림식품부에서 원료를 배분받는다. 정부는 정부미 재고가 많으면 주정 공장에 정부미를 배정해 주정 원료로 사용하게 한다. 때에 따라 주정 재료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재미있는 건 최근엔 대부분의 업체가 감자를 이용해 주정을 생산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감자 때문에 주정업체들이 '멘붕'에 빠졌다.

"감자 때문에 기계까지 새로 샀어요." 올해 처음으로 감자로 주정을 만들었다는 A업체 관계자는 감자 때문에 겪는 고충을 토로했다. "원래 생감자는 수분이 워낙 많아 분쇄가 잘 안 돼요. 주정을 만들 땐 잘 사용하지 않는 재료입니다. 올해 감자 수확량이 워낙 많아 폐기처분해야 할 위기에 놓이다 보니 정부가 주정업체들에 감자를 배분했습니다. 덕분에 감자 분쇄기까지 새로 들여놓아야 했지만 농민을 돕는 일이니 그냥 쓰고 있어요."

감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은 A업체만이 아니었다. B업체 관계자도 "원래 주정을 만들 때는 쌀, 보리, 타피오카를 많이 쓴다. 그런데 올해 감자가 풍년이다 보니 정부가 각 주정사에 감자를 배당해 우리도 감자로 주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감자는 단가 대비 생산율이 아주 안 좋아요. 타피오카나 쌀은 전분이 72~76% 정도고 보리는 60%대지만 생감자는 고작 10% 수준이에요. 싼값에 들여와도 타피오카 등과 비교하면 훨씬 많은 돈을 들이는 셈입니다." 이 관계자는 "딱딱한 타피오카가 주정 재료로는 딱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나마 우리 회사는 감자를 얼추 다 소모했다. 기계도 새로 들여놔 비용이 들고 생산율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우리 쪽에서 감자를 사줘야 농민들에게도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감자 때문에 울상을 짓는 두 업체와는 달리 C업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C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업체가 재료로 사용했지만 우리는 다행히 감자를 배분받지 않아 타피오카와 현미로 주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생감자 같은 경우는 거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수분이 너무 많아서 아마 다른 업체도 감자로 주정을 만든 건 올해가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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