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당, 찰스 로젠의 ‘고전적 양식’ 출간

합리와 정서로 만들어진 고전음악 조망

풍월당에서 펴낸 찰스 로젠의 ‘고전적 양식’은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세 사람의 음악가가 어떻게 음악의 역사를 바꿨는지를 흥미롭고 심도 있게 조망한다. 사진=풍월당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초등학교 시절, 학교 음악실이나 복도엔 항상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초상화가 붙어 있었다. ‘교향곡의 아버지’ ‘음악 신동’ ‘악성’이라는 큼지막한 제목과 함께. 이들 세 사람은 고전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이고, 고전주의 음악은 서양 음악사의 황금기로 불린다. 왜 그럴까? 바로 이들 세 명이 음악을 단순한 감정에서 해방시켜 하나의 ‘언어’로 격상시켰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하면서도 극적인 역동성과 우아함을 갖춘 클래시컬 스타일은 소리로 된 언어처럼 소통과 발전이 가능한 체계였다.

이러한 체계의 힘은 음악을 관습과 제의에서 해방시켰고, 최적의 균형과 일관성을 지니면서도 유머와 자유분방함, 격렬한 에너지에 이르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갖추게 만들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이렇게 음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클래식 음악의 예술성을 위대함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풍월당에서 펴낸 찰스 로젠의 ‘고전적 양식’(옮긴이 장호연·5만5000원)은 세 사람의 음악가가 어떻게 음악의 역사를 바꿨는지를 흥미롭고 심도 있게 조망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주의 음악의 귀중한 안내서다. 1차적으로 작곡가, 전문연주자, 음악학자들에게 유용한 학술적 저서다. 그러면서 동시에 2차적으로 더 많은 독자를 겨냥하고 있다. ‘왜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은 어떤 공통점, 어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는가’ 그동안 음악을 들으며 이 같은 궁금증을 가져보았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발견의 기쁨과 보다 깊이 있는 감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서양 음악사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고전주의 트로이카’로 불리며 존경받는다. 로젠은 왜 당대의 많은 작곡가들 가운데 이 세 사람이 독보적이었는지를 밝힌다. 또한 이 세 사람을 하나의 사조로 묶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의 진정한 업적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논증한다.

그 핵심은 조성 체계에 바탕을 둔 ‘음악 언어’다. 여기서 ‘음악 언어’란 내적인 논리성과 극적인 효과를 동시에 얻어낼 수 있는 작곡 방식을 뜻한다. 과도기적이고 몰개성적이었던 18세기 말의 양식에 비해 고전주의 음악 언어는 더 객관적이면서도 작곡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주었다.

조성 및 화성의 성격을 보다 체계적으로 다룬다는 데서는 세 사람의 공통적인 객관적 태도가 나타나지만,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세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이 부각된다. 철저한 객관성의 토대 위에서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일은 일견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 사람은 형식 안에서 자유를 누릴 줄 알았다. 이것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보다 탁월한 점이다.

세 명이 함께 매진했던 대표적인 스타일이 바로 소나타 형식이다. 그런데 로젠은 소나타 형식이 반드시 따라야 할 하나의 법칙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실험의 장이었음을 강조한다.

소나타 형식은 으뜸조와 딸림조 사이의 관계를 이용해 극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포괄적인 작곡방식이다. 으뜸조에서 거리가 먼 딸림조로 이행했다가 다시 으뜸조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주제의 개수, 도입부의 유무, 각 부분의 길이와 비율 등은 모두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나타 형식의 목적은 화성의 안정감과 불안감을 잘 이용해 듣는 사람이 극적인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곡가는 재료가 되는 음들을 조직하여 관계를 만들고, 형식을 구축하고 전체의 발전 방향을 정한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귀에 들리는 연극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 곡의 개성이 된다.

로젠이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이러한 목적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소나타 형식을 활용하는 방식과 스타일은 서로 달랐다. 하이든은 재료와 형식 사이의 치밀한 연관성과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인다면, 모차르트는 폭넓은 화성 운용이 눈에 띄고, 베토벤은 형식을 밀어붙이고 확장해내는 힘이 특별하다. 각각이 환기하는 정서의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하이든의 핵심적인 정서는 친숙함이다. 로젠은 “하이든을 듣는 것은 시골길을 산책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동시에 가장 감동적인 것은 이런 단순함이며, 도시의 독자들에게 예민한 향수를 자아내는 것은 시골의 단순함이다.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그와 같은 교묘한 단순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이든의 유머 또한 포함된다. 하이든은 음악가 사회와 일반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동시에 받은 작곡가다.

한편 모차르트는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음악적 순수함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 모차르트는 “음악은 아무리 형편없는 상황에서도 귀에 거슬리게 들려서는 절대로 안 되며 청자를 즐겁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음악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로젠은 이를 “음악의 유혹하는 물리적 힘을 모차르트만큼 강렬하고 폭넓게 사용한 작곡가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로 다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문학과 결합된 장르 오페라를 작곡할 때도 순수한 음악적 균형 감각을 발휘했고, 기계적으로 형식을 다루거나, 문학의 내용에 섣불리 기대는 대신, 조성의 성격과 극의 상황에 전체를 정교하게 설계할 줄 알았다. 음악적 사건과 극적 사건이 일치하는 것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양식에서 빛나는 위업이다.

베토벤의 개성은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지와 탐험에서 나타난다. 베토벤은 아마도 음악의 이런 탐구적 기능을 다른 모든 기능보다 우위에 둔 최초의 작곡가다. 즐거움, 가르침, 때로는 표현보다도 탐험을 우위에 두었다. 베토벤의 가장 큰 혁신은 양식을 전례 없이 확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떤 작곡가보다 당대 조성 언어에 잠재된 가능성을 잘 이해했고, 그것을 활용해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법을 알았다. 로젠은 이러한 작곡가마다의 개성을 다양한 악보 예시와 상세한 분석을 통해 탁월하게 논증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감각적으로만 음악을 들어왔던 많은 감상자들은 작곡이라는 활동에 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될 것이다. 작곡가는 그저 자기감정에 빠져 곡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곡은 고도로 치밀하게 계획된 합리적 과정이다. 그렇다면 감상자들 또한 감정에 치우친 듣기를 넘어서서 -비록 전공자가 아니라거나 악보에 밝지 않다는 한계를 지닌 경우에라도 - 음악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요소를 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합리적인 듣기에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또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품을 방대하게 해설하면서 고전주의 음악의 핵심 장르를 소개한다. 하이든은 교향곡, 현악사중주, 피아노삼중주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냈다. 작은 동기에서 전체 구조를 만들어내는 작법을 고심한 끝에 이룬 성취다. 교향곡, 현악사중주 등은 각 동기 간의 연관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전주의의 대표적 장르다. 그러나 하이든은 고도로 논리적인 작품을 쓰면서도 결코 논리 자체에 갇히는 법이 없었다. 악보를 벗어나 실제로 들리는 효과를 예민하게 파악했기 때문이다.

한편 모차르트를 다루면서 로젠은 그가 오페라 부파에서 이룬 성취를 강조한다. 오페라 부파는 고전적 양식의 여러 원칙들을 이끌어낸 장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음악 장르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회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통찰이다. 곧 즐거움, 아름다움, 인간다움을 더 잘 다루려고 애쓰다 보니 이전의 관습을 벗어나 더 많은 자유, 표현력을 갖추는 비법을 찾아내게 됐다는 것이 그 골자다.

오페라 부파는 통상 희가극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 희극이란 그저 우스꽝스러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로부터 벗어난 자유분방함을 의미하는 바가 더 크다. 모차르트는 연극이라는 음악 외적 조건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부파의 분위기가 주는 다채로운 감정과 표현적 자유를 탁월하게 표현해내는데 성공했다.

베토벤의 핵심 장르는 교향곡, 피아노소나타, 현악사중주다. 로젠은 ‘모차르트의 혼을 하이든의 손에서 넘겨받은’ 베토벤의 발전 과정을 주요 작품들을 통해 상세하게 분석한다. 베토벤은 특히 그의 말년 양식을 통해 미답지의 땅에 도달한다.

로젠은 이렇게 지적한다. “조각가들은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돌 안에 숨겨진 형태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아마도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미켈란젤로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베토벤은 음악 언어 안에 파묻혀 있는 의미와 감정들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은 형식을 이용하면서 형식 너머의 의미를 가리켰다. 고전주의 음악 언어를 하나의 심오한 철학적 사유로 심화시킨 것이다.

물론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술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무려 840쪽이다. 하드커버 표지까지 합하면 책의 두께가 5cm다. 음악가, 전문연주자, 음악학자들을 염두에 둔 책이어서 방대한 악보 예시가 있고 분석도 치밀하다. 그러나 도전 못할 책은 결코 아니다. 여러 음반과 음원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읽고 누릴 거리가 많은 책이다. 더욱이 명료하고 깔끔한 문장, 재기발랄한 비유가 가득해 우리가 익히 듣고 있던 음악 속의 비밀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밝혀준다.

차근차근 음반 곁에 두고 읽을 책이다. 괴테는 한때 클레멘스 브렌타노와 아힘 폰 아르님이 편찬한 민요 모음집 ‘소년의 마술 뿔나팔’을 두고 “작곡가와 음악 애호가의 피아노 위에 올려두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의 글을 쓴 바 있다. 이 책 또한 비슷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한 번에 독파하는 것보다는 내게 익숙한 작품을 들을 때 해당 부분을 찾아 읽으면 좋다. 그렇다면 굳이 전공자가 아니라도 음악 듣기가 보다 체계적이 되고 깊어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 책을 독파하면 로젠이 공들여 논증하는 ‘음악 언어’의 위대성에 감탄한다. 음악이 감정만이 아니라 논리와 일관성을 갖춰 모종의 의미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는 설명은 우리의 음악 이해와 감상의 폭을 넓혀준다. 말하자면 고전적 양식은 ‘합리’와 ‘정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음악 언어였다. 이 언어는 변화하고 역동하는 시민 사회에 적합하게 음악을 탈바꿈시켜 이후의 예술과 문화를 몰라보게 바꾸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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