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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 ‘시인’ ‘사진작가’ ‘수필가’ 되다...‘이슬의 소리를 들어라’ 출간
  • 기자민병무 기자 min66@hankooki.com 승인시간승인 2021.11.22 10:43
나성인 번역 풍월당서 펴내...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예술 진솔하게 담아
  •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가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예술을 진솔하게 담아낸 책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를 출간했다. 사진=풍월당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율리우스 베르거(Julius Berger)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비발디의 ‘첼로 소나타’,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녹음으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유명 레이블의 재킷을 장식하는 스타 첼리스트는 아니지만, 오래도록 존경을 받는 이유는 언제나 본질을 연구하는 구도자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첼로의 기원을 탐구하고,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특히 현대음악의 작곡을 후원해 왔다. 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유독 세계 최초 녹음이 많은데, 아마도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를 제외하면 그만큼 작품을 많이 찾아낸 사람도 드물다.

1954년 독일 아욱스부르크에서 태어난 베르거는 지난 40여년 동안 음악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전설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밑에서 한동안 공부했고 이후 수많은 콘서트에서 함께 연주하며 각별한 관계를 쌓았다. 어디 이뿐인가. 레너드 번스타인, 올리비에 메시앙,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와의 예술적 협업이나 오스트리아 로켄하우스 페스티벌로 그를 자주 불러들인 기돈 크레머와의 교류는 음악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영감을 주었다.

베르거에게는 역사적 고전이나 동시대 작품 사이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승이자 친구인 로스트로포비치와 마찬가지로 현재 활동 중인 우리 시대의 작곡가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작품의 탄생을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자처했다. 작품을 위촉하거나 초연 혹은 최초공개연주 등으로 후원한 것은 실로 커다란 공헌이다.

예를 들어 2014년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베르거는 아내이자 첼리스트인 성현정과 함께 구바이둘리나의 두 대의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두 개의 길’을 성공적으로 세계 초연했고, 이듬해인 2015년에는 독일 본의 베토벤 페스티벌에서 유럽 초연하기도 했다.

  • 율리우스 베르거는 지난 2014년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아내이자 첼리스트인 성현정과 함께 구바이둘리나의 두 대의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두 개의 길’을 세계 초연했다. 사진=데일리한국 DB
베르거가 잠시 첼로를 내려놓고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다. ‘시’ ‘글’ ‘사진’을 섞은 음악 에세이를 출간했다. 제목은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나성인 옮김·풍월당·200쪽·1만4000원)다. 이 책은 인생과 만남, 그리고 음악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시집이다. 또한 필름당 서른여섯 컷 밖에 찍을 수 없는 아날로그 카메라로 촬영한 이슬들의 이미지를 담은 사진집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음악 인생을 담담하고 소박하게 풀어낸 수필집이기도 하다. 첼리스트가 시인, 사진작가, 수필가가 된 것이다.

베르거의 어투는 진솔하고 담백해 마치 듬직한 독일 나무 한 그루가 말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본질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깊은 울림을 되어 자연히 그의 첼로 소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독일 빵처럼 건강한 글이다.

책에는 베르거가 직접 촬영한 여러 편의 사진 작품이 들어 있다. 작품의 주제는 ‘이슬 방울’. 이슬 방울의 둥근 모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곧 깨어져 버릴 아름다운 순간을 상징한다. 그 때문에 이슬 방울은 동시에 음악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든 음악도 울리는 순간에는 존재하다가 곧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베르거의 책은 시와 글을 읽고 또 사진을 보면서 저마다 음악을 상상하게 되는, 책의 제목과 같이 ‘이슬의 소리를 듣는’ 공감각적인 책이 된다.

갖가지 만남에 대한 스토리도 가득하다. 장애인 누나 무쉬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비롯해 가족과 지인들과의 만남이 들어 있다. 피에르 로랑 에마르, 로스트로포비치, 크레머 같은 저명한 음악가 동료들과의 만남도 시와 글에 실려 있다. 바흐와 슈만, 슈베르트, 구바이둘리나 같은 작곡가 및 작품과의 만남도 한 축을 이룬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이처럼 만남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저 무대를 자신을 드러내는 방편으로 여기지 않고 모든 것을 소중한 순간의 만남으로 여기기에 그의 글은 소박하지만 깊다.

베르거가 마음을 기울여 쓴 시들을 읽으면 독자들은 깊고 진솔한 한 인간의 시심(詩心)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시심이 점점 희귀해지는 시대, 자신을 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자기 일에 몰두하되 복된 순간을 공동체와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자고 독려한다. 스타 마케팅의 사회, 불안 마케팅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베르거는 소박함과 진솔함의 미덕을 가만히 일러준다.

베르거의 글은 그의 첼로 소리를 닮았다. 그의 시와 사진도 따뜻한 온기와 울림을 머금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글이며 음악은 결국 그의 삶을 닮았다. 삶과 글, 삶과 음악이 일치하는 이런 진실함을 우리는 그리워한다.

우리는 모두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만, 마음으로나마 가버린 시간을 붙잡고 싶다. 그런데 그것을 실행한 것이 실은 예술이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삶과 얼마나 가까운가. 소박하지만 깊다. 삶과 가까운 예술은 그런 것이다. 이 책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진지하게 읽힐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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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21/11/22 10:43:24 수정시간 : 2021/11/22 10:4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