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당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 출간
추상미술 창시자의 불이익 이유 등 다뤄
  • 추상미술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힐마 아프 클린트의 삶을 다룬 평전이 풍월당에서 출간됐다. 사진=풍월당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1. 1862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 덕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지만, 자연과학이나 인문학 등에도 관심이 많았던 지적인 여성이다. 유럽의 미술 아카데미들 중에서 여성의 입학을 거부하는 곳이 여전히 많았던 때였지만, 스톡홀름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화가가 되어 가장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권위적인 미술계에서 ‘여성이기에’ 늘 차별 당했다. 아카데미 회원 200여명의 그림을 함께 전시하는 행사에서 그의 그림은 전시장의 가장 후미진 구석, 즉 계단참과 비상구 옆에 단 두 점만 걸렸다. 당연히 아무도 작품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2. 부당한 대우 때문에 미술협회를 탈퇴한다. 비록 파워 커뮤니티에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신 혼자서 그렸다. 기존 미술계와 결별하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다. ‘도꼬다이’였고 ‘아웃사이더’였다. 이 시기부터 시대를 초월한 독창적 붓질을 시작했다. 팔기 위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영원히 전시될 것을 확신했다. 다만 동시대에서는 자신의 그림을 알아 줄 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었다.

  • 힐마 아프 클린트의 ‘열 점의 대형그림. 7번. 성인의 연령. 그룹Ⅳ’. 1907년. 종이에 템페라로 그린 것을 화포에 붙였다. 315cmX234cm. 힐마 아프 클린트 작품 보존 재단 소장. 사진=풍월당
#3. 1932년 70세가 되자 자신의 모든 그림을 스스로 정리했다. 많은 기록과 메모를 없애고, 그림은 다시 분류해 정리했다. 그러면서 노트에 연필로 ‘+X’라는 표시를 한다. 그리고 “이 표시가 된 그림은 내가 죽고 나서 20년이 지난 후에야 개봉하라”라고 적어 넣었다. 마치 타임캡슐에 물건을 넣어 우주로 보내거나 지하에 파묻는 것과 똑같았다. 유언에 따라 모든 그림은 스웨덴 해군 중장인 조카에게 상속됐다. 조카는 고모의 유언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그림을 누구의 손도 닿지 않게 안전하게 보관했고, 20년이 지난 후 밀봉했던 상자를 열었다.

#4. 2018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1944년에 숨졌으니 세상을 떠난 지 74년 뒤에 열린 전시회다. 엄청난 화제가 됐다. 미술관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관객인 60만명이 몰려들었다. 교과서에도 미술사책에도 나오지 않은 화가의 전시회인데 빅히트했다. 화집은 미술관 개관 후 가장 많이 팔린 도록이 됐다. 이듬해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열린 순회 전시에는 모두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방문했다.

  • 1890년대 중반에 아틀리에에서 찍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사진. 힐마 아프 클린트 작품 보존 재단 소장. 사진=풍월당
위 네 가지 사례와 관련된 사람은 누구일까? 단박에 알아맞혔다면 엄청난 전문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를 모른다. 혁신적인 천재였지만 그동안 완전히 잊혔던 화가였다. 불과 3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그의 존재와 그림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풍월당·624쪽·3만9000원)은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재발견으로 일컬어지는 그에 관한 일대기다. 율리아 포스가 지었고 조이한과 김정근이 옮겼다.

그는 바실리 칸딘스키보다 앞서서 추상화를 그린 화가다. 그런 그는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단 하나의 이유, 바로 여자였기 때문이다. 유럽이 거듭되는 혁명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혼란을 겪으면서 현대미술의 흐름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대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르의 관점에 따라 세계 미술이 규정되어 버린다. 이는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시야가 좁거나 편견을 가지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잘 보여 준다. 바르는 추상미술을 규정하면서 창시자로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카지미르 말레비치 등을 선포한다. 당시 그들보다도 먼저 혹은 비슷한 시기에 추상화를 그린 여성들이 존재했음에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판단을 내려 팩트를 왜곡했다.

  • 힐마 아프 클린트가 추상적으로 표현한 구노의 음악. 책 삽화. 베전트와 리드비터의 책 ‘사고형식’(1905년)에서 발췌. 사진=풍월당
다윈의 진화론 발표, 원자의 존재 증명, 뢴트겐 X선 발견, 현미경과 백열전구 발명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로써 그동안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됐고, 정신세계나 영혼을 믿었던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강력하게 작동해 인간과 세상을 구성한다고 확신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신지학(神智學·Theosophy)’ 혹은 ‘인지학(人智學·Anthroposophie)’을 만들었다. 20세기 초에 추상 미술을 시작한 현대미술의 인물들은 그 정신을 중요시하는 흐름에 동조했거나 주목했던 사람들이다.

그 흐름의 한가운데 힐마 아프 클린트가 있었다. 그는 독자적인 영성주의 이론을 발전시켰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과 소양이 높은 예술가였다. 영성주의와 과학지식을 조화시키려 했으며, 그 우주관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존재할 수도 있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의 작품은 대상이나 경계선 안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향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가 넘겨 준 바통은 이제 우리 손에 쥐어졌다. 작품을 잘 감상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 낸 개인과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의 삶은 아주 오랫동안 대화의 주제가 아니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여성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없다고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은 광범위한 조사를 기반으로 미술가의 이례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예술가의 판에 박힌 모습과 신화를 파괴한다. 이 책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생애로 들어서는 열쇠다. 배제된 역사로 시선을 돌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

기자소개 민병무 기자 다른기사보기
데일리한국 뉴스스탠드
본 기사의 저작권은 한국미디어네트워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21/11/19 16:02:54 수정시간 : 2021/11/22 09:29:00